(자료사진)
검찰이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과거사위 관련 사건을 수임한 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민변 변호사들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관련 사건을 맡으며 상당한 수임료를 챙겨 온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지만, 검찰이 이번 사건을 민변에 대한 표적 수사의 계기로 삼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보다 넓게는 국가 송무를 맡고 있는 검찰이 국가를 상대로 힘겨운 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과거사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들을 강제 수사로 압박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 檢 특수부 배당하며 법조비리로 수사 확대…관련 사건 전수조사 방침 검찰이 '과거사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의문사위'(의문사진상위원회) 출신 변호사들의 수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 10월쯤이다.
과거사위 위원이자 현재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으로 활동하는 박상훈 변호사가 임기중 파생 사건의 변론을 맡은 것이 알려지자 서울고검 공판부가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사건 검토 과정에서 민변 출신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이와 유사한 위반 사례가 많다는 점을 발견하고, 법조비리를 전담하는 특수부에 사건을 재배당했다.
특수4부(배종혁 부장검사)로 넘어가면서 수사 규모는 심상치 않게 커지고 있다. 검찰은 과거사위와 의문사위에서 파생된 국가상대 손해배상 사건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변호사법 위반 정황을 다수 발견했으며,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계속 전수조사를 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유사한 케이스들을 계속해서 살펴 볼 것이다. 단기간에 끝낼 건은 아니고 '법조비리' 차원에서 큰 규모로 수사가 이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명춘 변호사 등 민변 변호사 7명에게 21일까지 출석을 통보했다. 민변 변호사들이 출석에 불응할 것으로 알려지자, 검찰은 이들이 계속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등의 강경 대응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주장은 과거사위와 의문사위에서 위원으로 활동한 변호사들이 관련 손해배상 사건들을 맡아 이득을 취해 왔다는 것이다. 보통 과거사 피해자들의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소송 규모가 수십~수백 억대에 달한다는 측면에서 산술적으로 보면 상당한 수임료를 올렸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무료 변론으로 실비만을 받고 소송을 도와준 경우는 처벌하기 어렵지만, 억대 수임료를 받은 경우에는 공무원으로서 취급한 사건 수임을 제한하는 변호사법(31조 3항)을 위반한 혐의로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 과거사 배상 많아지면서 시장 형성…檢 민변 때리기용 의구심도 여전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과거사위 파생 사건들을 수임하는 것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일부 있었다. 초창기에는 과거사위 시절 맺은 인연을 토대로 피해자들을 도와주는 측면에서 자연스레 사건을 맡았지만 소송 건수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그 자체로 상당한 시장이 형성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과거사 피해자들과 민변 변호사들의 관계 속에서 수년 간 이어져 왔던 사건 수임 관행을 검찰이 이 시점에서 특수부 검사들을 동원해 파헤치는 것은 의도성이 엿보인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검찰과 민변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계기로 날선 대립각을 세워 왔다. 지난해부터는 잇따른 공안사건 무죄 판결로 민변에 대한 검찰의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급기야 검찰은 전례없이 기소도 되지 않은 민변 변호사들을 무더기로 징계 신청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검찰의 이번 수사가 단순한 법조 비리가 아닌, '민변 때리기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통상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대대적인 분석 작업에 나서는 것은 민변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는 것과 동시에 추후 변호사들의 징계 신청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것이다.
◇ 국가 소송 법률대리인인 檢, 피해자측 대리인 강제수사로 압박…중립성 논란국가 송무를 맡고 있는 검찰이 국가 상대 소송을 벌이는 과거사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을 수사 명목으로 과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가측 법률 대리인이기도 한 검찰이 수사권을 통해 소송 상대측에 간접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
특히, 최근 몇 년간 과거사 피해자와 가족들의 소송 여건이 갈수록 척박해지는 추세여서 이번 검찰의 수사는 소송에 또다른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지난 2011년 과거사 배상 때 지연(遲延) 이자를 대폭 줄이라고 판단했으며, 이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가족들에게 거액의 이자 반환 소송을 제기해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과거사위 보고서만으로는 손해배상을 내릴 수 없다"며 진도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유족 7명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파기환송하기도 했다. 과거사위 보고서의 효력을 그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따로 심리를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거사법의 취지는 과거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늦게나마 보상한다는 차원이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국가가 이들을 상대로 피튀는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최악의 경우 검찰이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과거사 피해자들을 참고인으로 조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과거사 관련 소송으로 지급해야하는 손해배상액이 연간 1300억원에 이르면서 현 정부에서 재정적으로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와도 맞물려 있다.
때문에 검찰의 이번 수사가 과거사 피해자들의 소송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악용되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NEWS:right}
이상경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법무부장관이 국가의 법률 대리인으로, 검찰이 국가 소송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소송 상대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을 수사하는 부분은 민감할 수 밖에 없다"며 "가뜩이나 이번 수사가 민변 길들이기 차원의 목적성을 띄고 있다는 의심도 일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검찰은 수사 중립성을 더욱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