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종석. (웰메이드이엔티 제공)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청춘 배우는 고민이 많았다. 더 사랑받고, 인기를 얻고 싶은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비행기 안에서 광활한 하늘을 보면 제 존재가 보잘것 없는 점처럼 느껴져요".
뒤늦은 사춘기는 열병처럼 그를 떠돌았다. 생각이 많고, 깊었다. 민들레 씨앗처럼 흩날리는 분위기와 섬세한 감성 역시 그랬다. 그러다가도 20대 청년답지 않게 금방 초연해졌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7세의 봄을 앞두고, 배우 이종석은 그 해답을 찾고 있었다.
다음은 이종석과의 1문 1답이다.
-SBS '피노키오', 끝나고 나니 어때요?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마냥 재밌어서 했던, 그런 마음이었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온전히 즐기면서 연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요. 어느 일이든 3년 정도 하면 회의감이 들고 약간 슬럼프가 오잖아요. 연기에 흥미가 조금 떨어졌달까…. '시크릿 가든' 이후 오랜만에 연기 선생님을 찾아가서 신인배우들과 같이 공부도 했어요. 그런데 '피노키오'하면서 다시 한번 '이 느낌이지. 그래 맞아 이거야!'했죠. 아무래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좋았던 스태프들과 함께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최달포이자 기하명인 인물의 매력은 뭔가요?
"저랑은 되게 다른 사람이에요. 지극히 동화같은 인물이잖아요.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원수를 스스로 무너지게 하고…. 제가 기자였다면 박로사 역 맡으신 김혜숙 선배님께 공익을 위한 질문을 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인간이니까 당연히 개인을 위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와 다르다는 점이 제가 하명이를 사랑한 이유예요".
배우 이종석. (웰메이드이엔티 제공)
-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저는 불가능하다고 봐요. 어떤 게 어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들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연기를 하면 할수록 (어린 모습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기는 해요. 한 작품 끝내고 나면 제가 보낸 3개월보다 (삶에 대한) 경험치가 훨씬 많이 쌓이거든요. 정신적으로 자라고 있다는 걸 느끼죠. 감정 소모를 하니까 늙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어떤 순간에 그렇다고 느껴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하고 '피노키오'가 불과 1년 사인데 모니터를 하면서 얼굴이 되게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PD님은 아시더라고요. 남자 느낌이 난다고 하셨어요".
-이전에 기자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 중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나요?
"가끔 기사에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제는 그게 기자들의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전에는 인터뷰하면서도 고민도 털어놓고 그랬는데 조심하게 돼요. 대중들이 저를 알아갈수록 더 조심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 같아요".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할 말, 못할 말을 다 가리지를 못했죠.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줄 수도 있으니 그런 점은 조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에 자신에 대한 평가나 이야기에 신경쓰는 편인가요?
"긁어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생각은 해요.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테니까요. '그냥 나는 연기만 해야겠다'. 다른 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어요. 저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이) 제게도 들리면 정말 속상하죠.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요즘은 댓글 잘 안봐요. 드라마 리뷰 기사를 많이 보는데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정말 재밌어요".
배우 이종석. (웰메이드이엔티 제공)
-데뷔 이후 쉬지 않고 달려오신 이유가 궁금해요.
"'닥터 이방인'이 끝났을 때 전부 소진해서 방전됐었거든요. 만약에 거기서 공백기를 가지고 쉬었으면 되게 오래 쉬었을 것 같아요. 제대로 마음 놓고 쉬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쉬는지도 몰라요. 저도 생각을 좀 해봤어요. 나는 왜 계속 일을 할까. 그냥 현실이 싫은 것 같아요. 특별하게 즐기면서 사는 것도 없고, 집에서 드라마 보면서 주인공에 이입해서 따라가고…. 가상의 세계죠. 저는 그 속에 사는 것이 더 의미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속의 제가 비로소 사람같거든요. 연기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좋잖아요".
-소속사에서 시키는 건 아니고요?
"작품은 100% 제 의지에요. 하기 싫으면 안해도 그만이고요. 쉴새 없이 일하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좋을 것 같아요. 가성비가 정말 짱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제가 너무 불쌍한 사람같네요. (웃음)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한창 젊은 나인데, 쉴 때 왜 집에만 있어요?
"그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저는 진짜 좋아하는 게 집에서 리모콘을 쥐고 있는 것밖에 없는 거죠. 뭔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쉴 시간이 없기도 없었고요".
-자취 생활 오래했죠. 외롭지는 않나요?
"이제는 이게 익숙해요. 처음에는 외롭고 괴롭기도 했는데 살다보니까 찬바람도 돌면서 정말 좋더라고요. 12~2시 사이가 되면 감성이 폭발해요. 노랫말이 들리기 시작하고, 대본을 보면 정말 몰입해서 연기 연습을 하게 되고…. 그걸 좀 지나고 나면 허망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요즘은 집에서 뭐해요?
"뭐할까 고민하다가 집에 쌓여있는 시나리오 보기 시작했어요. PD님과 이야기 많이 했어요. '우리는 한달 이상 못 쉬잖아'. 못 견디는 거죠".
배우 이종석. (웰메이드이엔티 제공)
-생각해보니 굴곡있는 주인공 역을 많이 맡아온 것 같아요.
"제가 사연이 있고 트라우마가 있는 캐릭터를 재밌어 하는 것 같아요. '피노키오'에서도 과거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인물의 감정변화를 연기하는 게 재밌었어요. 생각해보니까 맡은 배역 중 양가 부모님이 모두 계셨던 적이 없었네요. 한번쯤 저도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재벌 역할을 해볼 날이 오겠죠?"
-박신혜 씨가 자신을 능가할 정도로 애교가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애교 많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어요. 세상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애교를 익힌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그렇게 지내는데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같이 작품한 배우들이 저보고 애교 많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 속을 다 터놓는 존재가 있나요? 동갑내기인 박신혜 씨와는 어땠어요?
"그런 존재는 없는 것 같아요. 신혜라는 친구와는 잘 사귄 것 같아요. 참 똑똑한 친구죠. 신혜에게는 어느 정도 이야기하게 된 것 같아요. 신혜와 스킨십을 자주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저는 예쁘다고 느끼면 예쁘다고 말하고 얼굴이 부었으면 부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성별 따지지 않고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느끼면 만지고 싶고, 보게 되더라고요. 사람이 좋으면 그런 것뿐이에요".
-주목공포증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요즘은 어때요?
"더 심해졌어요. 그런데 연기를 할 때는 괜찮아요".
배우 이종석. (웰메이드이엔티 제공)
-한류 스타이기도 하고, 팬들이 많아요. 팬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나요?
"한명 한명 고맙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좋아해주시는 거니까요. 팬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개별적으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기억을 못해요. 그러면 다음 번에 편지를 받아서 읽었을 때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게 되게 딜레마에요".
-만약에 배우가 아니라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PC방에 있거나 그러지 않았을까요? 예전에 소속사를 들어갔는데 일을 받지 못해서 친구와 함께 살기 시작했어요. 정말 할게 없어서 PC방을 갔는데 게임을 하면서도 재미는 없었어요. 그냥 이 시간을 보내버려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발전적인 것을 할 생각도 안했어요. 그 때 연기연습을 했으면 더 나은 배우가 돼있을지도 몰라요. 그 시간이 아까워요".
-예전과 연기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더 나아져야죠. 그런데 역할마다 갑자기 없던 연기력 논란이 생기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저는 모르겠어요. 사람이니까 더 나아지겠죠. 뭐든지 하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도 일상적이고 가볍고 간단한 연기가 어려워져요. 감정 연기는 따라가다가 집중해서 하면 되거든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연애는 생각 없나요?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