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영화 '러브레터'(1995) 등으로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한 일본의 이와이 슌지 감독. 1963년생으로서 올해 우리 나이로 53세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려 애쓰는 청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주로 멜로 장르에 특화된 감독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세계관을 관객들과 나누려 애써 온 인물이다.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마련된 내한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이와이 슌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을 찾아내려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그 세계가 화려하지는 않다. 사사로운 골목길이라 해도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을 포착해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해 왔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이러한 생각이 사라진다. 내 영화에 소년, 소녀, 죽은 사람이 자주 나오는 것은 잊어 버린 시선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는 "작품의 주인공이 아이든 어른이든 똑같은 안경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는 말로 자신의 연출관을 피력했다.
"주인공이 아이일 경우 아이의 눈으로, 어른이면 어른의 눈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특별히 장르에 구애 받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만드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독특하고 비틀린 데는 어른의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이날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것은 다음달 4일까지 서울 신사동에 있는 CGV 청담씨네시티점에서 열리는 제4회 마리끌레르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제에서는 그의 전작 '뱀파이어'(2011), '하나와 앨리스'(2004),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11)까지 세 편을 소개하는 '이와이 슌지 특별전'이 열린다.
뱀파이어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영화 뱀파이어에 대해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타겟으로 한 살인을 다루는데, 기존 공식을 벗어난 뱀파이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창시절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면서 연구·조사를 많이 한 적이 있다"며 "프로 감독이 된 뒤 꼭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살인사건에 관한 시나리오를 쓰다가 뱀파이어 이야기와 합치면 좋겠다는 생각에 구상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현재 일본에서는 그의 첫 애니메이션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이 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영화는 전작 '하나와 앨리스'의 프리퀄(전편보다 시간상 앞선 이야기)로 실사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아오이 유우, 스즈키 안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실사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지금은 나이가 들어 프리퀄을 찍을 수 없지만 목소리 연기는 가능했기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며 "언젠가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꿈과 두 배우와 다시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을 모둔 이룬 셈"이라고 했다.
그는 "내 시간의 80%는 영화를 구상하고 만드는 데 쓴다"고 말하면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드러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일본의 영화 제작 풍토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현재 일본에서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도 투자받기 힘들다. TV 드라마 역시 미국의 영향으로 형사물만 만들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5분짜리 기획이더라도 장소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이든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