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 스타 설기현(36, 인천 유나이티드)이 4일 오전 서울 신무로 축구회관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설기현은 은퇴한 뒤 성균관대 지휘봉을 잡는다 (사진=CBS노컷뉴스 박종민 기자 esky0830@cbs.co.kr)
설기현(36)은 강릉제일고(구 강릉상고) 3학년 시절 자기 소개서의 장래희망란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모든 선수가 국가대표를 꿈꾸지만 과연 내가 자신있게 적을 수 있을까?"
설기현은 그렇게 30분 정도 생각에 잠겼다.
설기현은 16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됐지만 그저 행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축구를 그리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팀은 주요 대회에서 예선 탈락할 때가 많았다. 설기현이 고민에 잠겼던 이유다.
결국 썼다. 나의 희망은 국가대표라고.
찬란했던 2002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설기현은 모교를 방문했다. 고교 시절 설기현을 지도했던 스승은 설기현에게 잊지 못할 한마디를 건넸다.
"그때 장래희망란에 국가대표라고 적은 애는 너 밖에 없었어"
꿈은 이루어졌다. 설기현이 느낀 뿌듯함은 헤아릴 수 없을만큼 컸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후반 막판에 터진 짜릿한 동점골,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의 주역, 벨기에 리그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유럽 무대의 중심에서 태극전사의 위용을 알렸던 설기현이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설기현은 4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축구사에 영원히 회자될 2002년 월드컵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내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이고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아왔는지를 자자손손 일깨워주게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설기현은 오는 7일 개막하는 현대오일뱅크 2015 K리그 클래식에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성균관대 감독직 제안을 받고 마음을 바꿨다. 은퇴를 결심한 것이다.
설기현은 "나의 경험을 펼쳐보이고 싶은 생각이 늘 있었다. 또한 지도자를 시작하면 항상 감독으로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많은 분들을 통해 배우면서 나만의 지도 철학이 정리가 되어 있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감독으로 시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나에게 감독직을 맡길 팀이 어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대학 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때마침 기회가 왔다. 선수로서는 체력의 한계가 온 것 같아 올해를 끝으로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설기현의 축구 인생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시작은 미약해도 끝은 창대할 때가 많았다. 장래희망란에 국가대표를 적었던 청년의 자신감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끌어낸 것처럼 말이다.
월드컵 4강 신화는 설기현의 축구 인생을 바꿔놓았다.
설기현은 "벨기에 리그에서 두 번째 시즌에 좋은 활약을 펼쳤는데 당시 감독님께서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월드컵 이전의 나는 말 없이 책만 보는 독서광이었다고. 그런데 월드컵 이후의 나는 자신감이 넘쳤고 설기현이 저런 선수였나? 생각이 들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어 있었다고. 그만큼 월드컵은 선수로서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설기현은 이제 지도자로서 첫 발을 내딛는다. 자신의 축구 철학을 실현하겠다는 새로운 꿈과 도전 앞에 서있다.
{RELNEWS:right}설기현은 "선수로서 많은 것을 누렸다. 지도자로서 선수 때 이상으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현역 때는 선수들이 유럽으로 진출하기가 힘들고 어려웠다. 지금은 다들 나가서 열심히 하지 않나. 감독으로서 유럽에 나갈 수는 없겠지만 해외에 진출해 그곳에서 좋은 팀, 그 나라의 대표팀을 하고 싶다는 큰 꿈이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