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주 금메달이예요."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이준호(오른쪽부터), 모지수, 송재근, 김기훈. (자료사진=대한체육회)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지난 15일이었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201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습니다. 여고생 최민정이 한 살 언니인 심석희를 제치고 종합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아시다시피 한국은 쇼트트랙 강국입니다. 물론 최근 그 입지가 조금은 줄어들었지만요.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까지, 총 42개의 메달을 쇼트트랙이 따냈습니다. 그 중 금메달만 21개였으니 쇼트트랙의 힘을 알 수 있겠죠. 김기훈부터 채지훈, 김동성, 지금은 빅토르 안이 된 안현수, 이정수, 그리고 여자부 전이경, 진선유, 박승희까지 숱한 쇼트트랙 스타들이 탄생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쇼트트랙은 언제부터 세계 무대에서 그 기량을 뽐냈을까요.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0년 3월19일에는 한국 쇼트트랙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이 배출된 날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준호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입니다.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는 1976년 처음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에서 정상을 나눠가졌습니다. 1989년 대회까지 남자부에서는 캐나다가 7회, 일본이 4회 우승을 차지했고, 여자부에서는 캐나다와 일본이 5회씩 정상에 올랐습니다. 한국은 1989년 대회에서 김기훈이 2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습니다.
1990년 세계선수권대회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는데요. 당시 이준호는 500m에서 순위권 밖으로 밀렸고, 1500m는 실격됐습니다. 5000m 계주 역시 송재근이 넘어지면서 입상에 실패했습니다.
당시 세계선수권에서는 종목별로 1위 5점, 2위 3점, 3위 2점, 4위 1점의 포인트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준호는 짜릿한 역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000m에서 1분33초46으로 3위에 오르면서 랭킹포인트 2점을 얻었고, 주종목이었던 3000m에서는 5분30초43의 기록으로 당당히 1위에 올랐습니다. 랭킹포인트 5점을 추가한 이준호는 총 7점으로 6점의 아카사카 유이치(일본), 윌 오레일리(영국)을 제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우리가 한국 쇼트트랙의 대표 주자입니다." 남자 쇼트트랙 천재 계보에 이름을 올린 김기훈(위 가운데), 채지훈(위 오른쪽), 김동성(아래 왼쪽), 안현수(아래 오른쪽). (자료사진=대한체육회)
한국 쇼트트랙 역사상 세계선수권대회 최초 종합우승이었습니다.
역시 3000m 우승이 결정적이었는데요. 당시 김기훈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었지만, 3000m는 이준호가 최고였습니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도 비록 시범경기였지만, 3000m 정상에 올랐습니다. 1990년 2월에는 국내 대회에서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죠. 1985년 세워진 5분04초24를 넘어 전 세계 최초로 5분대가 아닌 4분58초91의 기록을 작성했습니다.
이후 스포트라이트는 김기훈이 가져갔습니다. 쇼트트랙이 처음 정식 종목이 된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김기훈이 1000m, 5000m 계주 2관왕에 오른 반면 이준호는 1000m에서 동메달을 땄기 때문이죠. 물론 5000m 계주 금메달은 있습니다. 하지만 김기훈은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도 1000m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한국 쇼트트랙의 천재 계보를 만들게 됩니다. 이후 채지훈-김동성-안현수 등으로 그 계보가 쭉 이어졌습니다. 이준호의 이름은 그 계보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올림픽 금메달만 기억하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