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냈다, 해냈어. 마야가 해냈다~' 두산 외국인 투수 마야가 9일 넥센과 홈 경기에서 9회말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며 생애 첫 노히트 노런 대기록을 세운 뒤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잠실=두산 베어스)
두산 외국인 우완 유네스키 마야(34)가 꿈의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생애 첫 노히트 노런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마야는 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넥센과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9회까지 안타와 점수를 1개도 내주지 않고 막아냈습니다. 삼진 8개를 잡아내고 볼넷 3개만 내주며 30명 타자를 틀어막았습니다.
마야의 야구 인생에 첫 노히터. 34년째를 맞은 KBO 리그에서도 12번뿐인 대기록입니다. 두산 구단 역사로도 지난 1988년 장호연(당시 OB) 이후 무려 27년 만입니다. 외국인 선수로는 지난해 찰리 쉬렉(NC) 이후 두 번째입니다.
이날 마야는 9회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낸 뒤 하늘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그리고는 굵은 남자의, 아버지의, 남편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마야의 대기록에는 폭소도 함께 터져나왔습니다. 눈물과 웃음이 교차했던 마야의 노히터 경기를 한번 돌아볼까요?
'(임)마야, 아니 마야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두산 김태형 감독(왼쪽)과 외국인 투수 마야.(자료사진=두산)
이날 경기 전 두산 더그아웃에서는 마야의 늙수그레한(?) 외모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먼저 얘기가 나온 것은 타자 잭 루츠였습니다. 역시 연차가 지긋한 고참 기자 선배가 "루츠가 꽤 나이가 들어보인다"고 운을 뗐습니다.
이에 김태형 두산 감독(48)은 "루츠는 수염이 많아서 그렇지 깎으면 어려 보인다"며 두둔했습니다. 이어 김 감독은 마야를 거론했습니다. "마야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면서 "많이 늙어 보여서 때론 나와 같은 연배인가 생각할 때가 있다"며 취재진과 함께 웃었습니다. 마야와 김 감독은 띠 동갑이 넘습니다.
이방인의 실제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서로 상대의 연륜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해외 출장을 가면 현지인들 사이에서 제 나이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했던 경험이 적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마야의 고향 친구(?) 배구 선수 로버트랜디 시몬(OK저축은행)이 시구를 맡았습니다. 올 시즌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우승 주역인 시몬은 87년생으로 마야와는 6살 차입니다. 그러나 둘은 고국인 쿠바 시절부터 알고 지내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고 합니다. (정말 측량하기 어려운 마야의 나이였습니다.)
'혹시 시몬, 당신이 30대?' V리그 OK저축은행의 우승을 이끈 시몬이 9일 잠실 두산-넥센전에 앞서 시구를 하는 모습을 6살 연상 친구 마야가 뒤에서 지켜보는 장면.(잠실=두산)
경기 전 김 감독과 취재진의 얘기를 들었던 것일까요? 마야는 3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호투를 펼쳤습니다. 지난해 팀 홈런과 득점 1위였던 막강 넥센 타선을 6회까지 볼넷 1개만 내주고 무실점으로 막아냈습니다.
상대 선발은 좌완 앤디 밴 헤켄. 2014년 20승을 거두며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쥔 KBO 리그 최고 투수였습니다. 밴 헤켄도 6회까지 4탈삼진 5피안타 3볼넷 1실점, 선발 투수로는 나무랄 데 없는 투구를 펼쳤습니다. 3회 볼넷 2개에 민병헌의 우전 적시타를 내준 게 옥에 티였습니다.
하지만 마야의 투구는 더 빼어났습니다. 밴 헤켄이 내려간 7회도, 8회도 마운드에 올라 여전히 견고한 피칭을 펼쳤습니다. 이날 마야의 최고 구속은 143km. 상대를 윽박지르는 강속구는 아니었지만 최고 135km에 이르는 날카롭게 휘어지는 컷 패스트볼, 슬라이더와 105km까지 떨어진 낙차 큰 커브로 넥센 타자들의 혼을 뺐습니다.
사실 8회까지만 해도 대기록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습니다. 잠실구장 기자실에서도 '설마'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먼저 투구수가 110개를 넘어가며 한계치에 이르렀고 타구도 중심에 맞아나갔습니다. 특히 8회 무사에서 110개째였던 투구는 박헌도의 스윙에 제대로 걸렸습니다. 다행히 좌익수 정면으로 향했길래 망정이지 하마터면 2루타 이상 장타가 될 뻔했습니다. 게다가 1-0, 살얼음 승부였던 터라 교체가 예상됐습니다.
더군다나 앞서 잠실 라이벌 LG 좌완 임지섭의 예도 있었습니다. 임지섭은 지난 4일 잠실 삼성전에서 7회까지 노히트 노런 경기를 펼쳤지만 8회 교체됐습니다. 7회까지 투구수 103개를 찍어 9회까지 막으려면 130개를 넘겨야 했던 상황. 게다가 시즌 초반, 신인임을 감안해 양상문 LG 감독은 선수 보호와 길게 본 시즌 호흡으로 과감한 결정을 내렸습니다.(염경엽 넥센 감독 역시 "3~4번 로테이션을 돌았으면 모르지만 초반이라 무리를 시키면 탈이 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 감독도 8회 2사 후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투구수 114개를 찍은 뒤였습니다. 마야의 KBO 리그 최다 투구는 115개. 지난해 두 차례 기록했습니다. 모두 8회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잠시 얘기를 나눈 뒤 마야의 목덜미를 주물러주고 다시 더그아웃으로 내려왔습니다. 이후 마야는 김하성을 6구 만에 투수 땅볼로 처리했습니다. 120개째 투구수였습니다.
'나, 마야얌마' 두산 마야가 9일 넥센과 홈 경기에서 힘차게 공을 뿌리는 모습.(잠실=두산)
9회도 마야는 씩씩하게 마운드로 달려왔습니다. 그제야 잠실 구장에도 대기록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었고,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는 넥센의 안간힘까지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넥센은 첫 타자 포수 김재현 대신 대타 임병욱을 내며 첫 안타에 대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쫄깃한 긴장감 때문인지 임병욱은 신인답지 않은 침착함으로 6구 만에 볼넷을 골라 출루했습니다.
마야의 위기. 다음 타자는 지난해 MVP 서건창이었습니다. 안타를 무려 201개나 때려낸 히트 제조기이었습니다. 다행히 서건창은 커브를 던져 1루 땅볼로 처리했습니다. 비디오 판독까지 했지만 병살타로 연결하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이어 넥센 주장 이택근도 유격수 땅볼로 처리했습니다.
2사 2루, 넥센의 득점권 상황. 안타 1개면 노히터 기록이 깨지는 것은 물론 동점이 될 확률이 높아 두산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야의 투구수는 133개. 한계를 한참 넘었습니다.
그러나 마야와 두산은 꿋꿋했습니다. 까다로운 타자 유한준을 맞아서도 물러섬이 없었습니다. 초구부터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던져 파울을 유도했습니다. 포수 양의지가 전력을 다했지만 타구는 뒤쪽 그물을 넘어갔습니다. 2구 커터도 바깥쪽 존을 공략한 절묘한 제구로 파울이 됐습니다. 볼 카운트 노 볼 투 스트라이크의 유리한 상황. 염경엽 감독의 얼굴도 굳어졌습니다.
마야와 양의지의 선택은 직구. 바깥쪽 높은 공으로 유혹했습니다. 볼 카운트가 몰린 유한준은 마법에 홀린 듯 방망이가 끌려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속 141km 직구. 이날 최고 구속이 143km, 136번째 공임을 감안하면 마지막 공임을 직감하고 던진 혼신의 역투였던 겁니다. 서건창에게는 직구가 137km에 그쳤지만 위기에서 맞닥뜨린 이택근, 유한준에게는 141km까지 나왔습니다.
'넌 의지의 쿠바인이야' 두산 마야(가운데)가 9일 넥센전에서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운 뒤 포수 양의지를 끌어안고 기뻐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3루수 최주환.(잠실=두산)
유한준의 헛스윙 삼진으로 대기록이 완성되는 순간 마야는 두 손을 하늘로 번쩍 치켜들며 생애 첫 노히터의 기쁨으로 포효했습니다. 자신의 인생 경기를 온몸으로 도왔던 포수 양의지를 비롯한 두산 야수들도 달려와 감격을 함께 했습니다.
마야는 동료들과 부둥켜 안은 채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관중석에서 간절히 대기록 달성을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는 말을 전하며 환호에 화답했습니다.
사실 마야는 특급 외국인 투수는 아닙니다. 지난해 중반 퇴출된 크리스 볼스테드의 대체 선수였습니다. 7월 한국에 와 11경기에 등판해 2승4패 평균자책점(ERA) 4.86의 평범한 기록. 구단에서도 살짝 재계약을 고민했습니다. 4년 동안 52승을 거둬준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에 비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었습니다. 올해 연봉도 150만 달러의 니퍼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0만 달러였습니다. 올 시즌 김 감독의 구상에도 니퍼트-장원준에 이은 3선발로 분류됐습니다.
하지만 니퍼트가 부상으로 빠져 있는 동안 마야가 에이스 역할을 맡았습니다. 지난달 28일 NC와 개막전 선발의 중책을 맡아 6이닝 8탈삼진 4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된 데 이어 지난 3일 롯데전에도 7이닝 7탈삼진 2실점 쾌투했습니다. 다만 팀 타선이 침묵해 패전을 안았습니다. 그러나 6일 만에 노히터로 아쉬움을 씻어냈습니다. 니퍼트도 해내지 못한 대기록입니다.
경기 후 잠실구장 기자실에 진행된 인터뷰. 흥분을 다소 가라앉힌 마야는 "놀랍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눈물을 흘린 데 대해서는 "기록 달성 순간 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는데 매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눈물밖에 안 나왔다"면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고 나서는 눈물밖에 안 나왔다"고 했습니다.
2006년과 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쿠바 대표였던 마야는 2009년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메이저리그에서는 통산 16경기만 등판해 ERA 5.80을 기록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 마이너리그를 전전했습니다.
'아가야, 보고 있니?' 두산 마야가 9일 생애 첫 노히트 노런 대기록을 세운 뒤 기도를 하는 모습.(자료사진=두산)
또 다른 힘들었던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을 겁니다. 마야는 "지난 시즌은 초반 선수로서 힘들었던 부분이 많았다"면서 "올해 다시 계약해서 감사하고 두산이 원하는 날까지 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첫 한국 무대, 다른 문화에 적응이 쉽지 않았던 마야는 지난해 욕설 논란으로도 홍역을 치른 바 있습니다. 10월 LG와 잠실 라이벌 대결에서 설전을 벌이면서 벤치 클리어링까지 번진 상황에서 상대 양상문 감독은 고함을 질렀던 겁니다. 이후 마야는 양 감독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고국에 있을 가족의 얼굴이 어른거렸을 마야입니다. 마야는 "쿠바에 있는 가족을 못 봐서 매우 그립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면서 "내가 경기하는 것을 TV로 봤을 거라고 믿고 다시금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두산 관계자는 "아내와 갓난아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4월 태어난 아들 케일러는 얼마 전 첫 생일(4일)을 맞았다고 합니다.
아이의 생일을 함께 하지 못했던 아빠, 마야는 없던 힘까지 짜냈습니다. 마야는 "넥센이 매우 공격적인 팀이라 매순간 힘들었는데 마지막 9회는 무슨 힘이 났는지 모를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던졌다"고 털어놨습니다. 마지막 136구째까지 141km를 찍은 이유입니다. 두산 관계자는 "마야의 눈물에는 아들 생각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친구와 동료들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기록입니다. 마야는 "시몬이 온 게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면서 "시구 때 한번 안아주면서 시몬이 '너는 공격적인 투수고 쿠바에서 하던 대로만 하면 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매우 큰 힘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천덕꾸러기, 말썽쟁이에서 올해 영양가 만점의 근면성실 일벌로 돌아온 마야. '꿀벌 마야의 모험'처럼 올해 곰돌이 군단 두산에 달콤한 꿀, 아니 우승의 로얄젤리를 선사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아직도 눈에서 레이저가?' 두산 마야가 9일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운 뒤 잠실구장 기자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마야의 눈동자에 적목 현상이 일었다.(사진=임종률 기자)
p.s-어제 인터뷰 때 사실 김 감독의 동년배 발언에 대한 마야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재미있는 말이 나올 것 같아 몇 개의 문답이 오갔던 인터뷰 중간 다른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지 않는 듯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웬걸, 마야의 답을 듣기도 전에 예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선배의 지청구를 들어야 했습니다. 대기록에 대한 중요한 소감을 묻는데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농반진반, 벌침에 쏘인 듯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인터뷰가 모두 끝나고 살짝 물어봤습니다. 역시나 걸쭉하고 진한 로얄젤리 같은 답변이 나왔습니다. "감독님, 맞아요. 저 노안 맞습니다."
여기에 두산 관계자가 김 감독의 발언을 추가로 전했습니다. "말이 필요 없다. 마야가 최고의 투구를 했다"고 경기 후 코멘트를 남긴 김 감독은 8회 2사에 마운드로 올라간 상황도 들려줬습니다. 김 감독의 발언은 "투수를 바꿀까 싶어 확인하러 올라갔는데 그 간절한 눈빛을 보니 도저히 못 바꾸겠더라"는 겁니다.
오죽했을까요? 생애 단 한번뿐일지도 모를 대기록을 갈구하는 그 눈빛이란, 게다가 마야는 김 감독이 놀랄 만큼 지긋한 얼굴을 갖고 있으니까요. 눈물과 웃음이 화기애애하게 교차했던 마야의 비행이 그려낸 희비 쌍곡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