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박재홍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박재홍의>
(사진=JTBC 뉴스룸 방송 캡쳐)
고 성완종 씨 인터뷰의 육성 방송과 관련된 경향신문과 JTBC사이의 쟁점이 이슈가 되고 있다. 사건의 줄거리는 경향신문이 성완종 씨 자살 직전에 인터뷰를 했고 검찰이 수사협조를 요청해 검찰에 인터뷰 녹음파일을 넘기는 과정에서 녹음파일이 JTBC로 빠져 나간 것. 검찰 제출 이후 녹음파일이 변조되지 않도록 보안처리를 해 준 전문가 김모 씨가 인터뷰 녹음파일을 빼내 JTBC에 전달했고, 경향신문과 자신의 입장을 고려해 경향이 전문을 보도한 이후에 사용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JTBC가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며 경향신문이 보도하기 전인 15일 뉴스룸 시간에 육성녹음을 방송에 내보냄으로써 논란이 시작됐다. 경향신문은 유족이 육성이 공개되는 건 피해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유족의 의사를 존중해 기사로만 내고 육성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던 것.
쟁점과 문제제기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보안 전문가 김 씨의 행위는 분명 절취이다. 그것도 보안을 도와주겠다고 해놓고 자신이 몰래 빼내간 행위는 부도덕하다. 이 절취된 파일을 범죄의 장물로 볼 건지는 법적으로 더 검토할 문제.
2. 파일을 빼내 JTBC에게 넘겨준 김 소장의 행위가 과연 '공익과 공공의 가치를 위한 것이었나? 아니면 JTBC를 배려한 행동이었나?'의 문제. 이 문제는 경향이 인터뷰 음성파일에 담긴 내용을 곧 국민에게 알리고자 전문공개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과 김 씨도 이를 알고 있었으리라는 점에서 김 씨의 행위가 순수히 공공과 국민 알 권리를 위해 행해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3. JTBC로서는 절취한 녹음파일이니 경향 보도 이후로 해 달라 요청받았다면 김 씨의 의사를 존중해 그렇게 사용하든지, 언론의 속성상 그럴 수는 없다고 우선 김 씨부터 설득 하고 유족과 경향신문의 양해를 구하든지, 안 받겠다고 돌려주든지, 일단 방송하고 보든지 이 4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을 것이고 이 중 마지막을 택한 것인데 과연 적절한걸까?
4. 보도 여부에 대한 유족의 요구는 저널리즘의 입장에서 존중할 대상이지 결정적 요소가 아니다. 고인과 가족의 명예나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이면 유족의 입장이 심각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번처럼 고인이 세상에 알려달라고 부탁한 사실이거나 공공질서를 어지럽힌 범죄에 관한 내용일 경우는 유족의 의사는 그 비중이 현저히 떨어진다. 경향신문은 내용을 모두 내보내되 육성만 삼가 달라고 하니 존중하기로 결정했던 것.
5. JTBC는 국민의 알 권리를 생각해 생생한 육성을 통해 내용이 전달되도록 인터뷰 녹음파일을 열어 공개했다는 것인데 '다른 경로를 통해 입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절취한 파일이고 과정이 적절치 못했다하더라도 국민의 알 권리라는 분명한 명분이 있다면 경향신문과 유족에게 통보하고 방송에서도 원소유자인 경향신문과 유족이 반대하나 우리는 내는 것이 옳다는 확신 아래 방송한다고 공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도 있다.
6. 여기서 문제는 경향신문이 침묵을 지키거나 일부만 보도할 개연성이 전혀 없고 전문을 내보내겠다고 예고를 한 상태여서 JTBC의 결정이 과연 순수히 공익과 공공의 가치를 위해 이뤄진 것이냐는 의문이 따라 붙는다는 것.
보도의 질을 따져도 경향신문은 검찰에 녹음파일을 넘긴 뒤 A4 용지 10장 분량의 인터뷰 전문을 준비했다. JTBC의 방송분량은 경향신문의 절반인 5장 분량이라고 한다. 경향신문이 공개하겠다고 밝힌 시점보다 10시간 정도 앞서 경향 10장의 절반인 5장을 보도하는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뭔가를 무릅쓰고 하는 것처럼 내세우는 건 속이 보이지 않느냐는 문제제기가 설득력을 갖는 부분.
7. 이 밖에도 언론계에서 쟁점으로 토의해 볼 사항들은 여럿이다.
가장 우선해 따질 것이 성 회장은 불법한 정치자금, 뇌물의 공여 등 부적절한 정경유착 행위의 당사자인데 그의 주장을 확인 없이 대부분을 그대로 전달하는 건 과연 옳은 보도인가? 만약 고인이 자기변명을 섞어 왜곡되게 진술하거나 기억의 착오로 잘못 진술한 내용이 그대로 나갈 경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전문 보도이기보다 범죄 피의자에 의한 국민 여론 호도일 수도 있지 않은가?
경향기자가 직접 인터뷰 녹음한 파일이면 정보자료인가? 아니면 완성된 뉴스기사로 보는 것이 옳은가? 이 판단에 따라 정보를 입수해 공개한 것이냐 아니면 사실상 남이 써 놓은 기사를 도용한 거냐를 논할 수 있다.
정보 제공자가 사망한 경우 고인은 보도해 달라고 했는데 유족이 반대한다면 언론은 어느 기준으로 양측의 비중을 판단해 보도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옳은가?
경향이 절취당한 게 아니고 실수로 잃어버렸다면 점유이탈인데 이것을 습득해 먼저 기사화하면 점유이탈물 횡령일까, 도덕적인 문제일 뿐인가, 아니면 언론의 특성 상 타당한 일일까?
만약 기자가 검찰에서 훔쳐내 육성파일을 보도했다면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 경향도 JTBC도 아닌 국민의 입장에 서면…
이 같은 쟁점은 언론계의 차후 토론의제로 넘기고 이번 사건을 언론계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국민은 전문도 읽고 육성으로도 직접 듣고 정보의 양과 질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았다. 그렇다면 된 것일까?
언론이 뉴스보도를 하는 행위와 과정에 대해서 사회는 강요나 강제의 규칙이 최소화되어 있다. 그건 언론 스스로 떳떳하도록 최선을 다해 주리라는 신뢰와 기대가 바탕이 되어 있어 그렇다고 본다. 그래서 언론의 보도행위는 대중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 대중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만큼이 그 언론보도에 대한 평가이고 질책인 것이다.
JTBC의 녹음파일 보도도 법적으로 책임 질 사안이 아니라 해도 시청자인 국민의 일부가 의아해 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그 뉴스의 공신력은 이미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JTBC가 뉴스 이후 별도의 해명을 한다는 것도 그 자체가 책임을 지는 행위이고 대가를 치루는 과정인 셈이다. 뉴스보도의 공신력은 뉴스 보도의 전 과정과 내용이 진실에 얼마나 가까우냐의 총합에 의해 결정되고 이 기준에서 멀면 멀수록 논란과 비난이 커진다.
다시 국민의 입장으로 돌아가보자. 정말 중요한 건 지금부터이다. 인터뷰 전문은 공개됐다. 모든 언론은 그 안에 담긴 내용과 관련해 관련자 진술이나 정황증거들을 취재해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진상 규명에 의혹과 미진함이 없도록 검찰 수사를 압박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 지점에서 모든 언론의 선의의 경쟁이 더 없이 치열해지기를 바란다. 육성녹음의 방송 여부는 국민의 절박한 요청으로 따지면 한참 후순위이다.
이것은 검찰 수사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몫만도 아니다. 정치부 기자도 논평 담당자도 마찬가지다. 검찰 수사에 대한 촉구와 국정을 바로 잡기 위한 책임의 촉구, 도대체 이런 상황에 대통령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어야 올바른 태도인지에 대한 각성 촉구 등 언론의 시급한 과제가 널려 있다. 국가기강이 뿌리 채 흔들리고 국정이 방향을 잃은 이 상황에 언론으로서 마땅한 책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