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덕희야 나를 뛰어넘어라' 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형택과 차세대 주자 이덕희, 정현(왼쪽부터)이 13일 ATP 투어 르꼬끄 서울오픈 챌린저 대회 기자회견에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사진=임종률 기자)
'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형택(39)이 20년 후배에게 애정어린 충고를 건넸다. 바로 떠오르는 샛별 정현(19 · 삼성증권 후원)에게다.
이형택과 정현은 13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 코트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르꼬끄 서울오픈 챌린저'(총상금 5만 달러) 기자회견에서 진심이 가득한 조언과 당찬 포부를 밝혔다.
정현은 이형택의 뒤를 이을 차세대 에이스로 꼽힌다. 지난주 부산오픈 챌린지 우승으로 11일 발표된 ATP 세계 랭킹이 88위에서 69위로 껑충 뛰었다.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았던 이형택의 36위를 뛰어넘을 기세다.
이날 회견에서 정현은 "생각하지도 못하게 랭킹이 빠르게 올라서 기쁘기도 하고 많이 신기하다"면서 "주니어가 아니고 시니어를 본격적으로 뛰는데 바로 그랜드슬램에 직행하게 돼서 그것도 신기하다"고 고무된 표정이었다. 정현은 11일 랭킹에 따라 6월 메이저 대회 윔블던에 직행한다.
이어 "올해 챌린저와 (상위 대회인) ATP 투어를 뛰면서 잘 하는 선수들과 부딪혀 지면서 부족한 것을 느끼고 보완했다"면서 "정신적으로 지난해보다 성숙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최근 상승세의 비결을 설명했다. 정현은 지난해 8월 방콕오픈에서 첫 챌린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올해 2월 버니 인터내셔널, 지난달 서배너 챌린저, 부산 오픈까지 4번째 정상에 올랐다.
다부진 포부도 밝혔다. 정현은 이날 동석한 대선배 이형택의 랭킹 경신에 대해 "당연히 깨고 싶은 생각은 있다"면서 "그것을 깨고 다른 기록을 생각해봐야죠"라고 강조했다. 그 기록을 묻자 "테니스 하면서 최종 목표는 그랜드슬램 트로피 한번은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내 기록 깨주길…서브, 포핸드 보완해야"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임용규와 함께 출전해 남자 복식 금메달을 따낼 당시 정현의 결승전 경기 모습.(자료사진=윤성호 기자)
정현의 당찬 각오에 대해 이형택은 후배를 격려했다. 이형택은 전성기 시절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인 US오픈 16강에 두 차례나 오른 바 있다. 정현은 이를 넘어 우승까지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형택은 "어렵긴 하지만 못할 것도 없다"고 운을 뗐다. 정현의 신체 조건(186cm)이 좋고 어린 만큼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다. 이어 "예전 정현이 어릴 때 함께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 출전했는데 '꾸준히만 한다면 100위 안에 들 것'이라고 조언했는데 벌써 그렇게 됐다"면서 "멘탈이 확실히 좋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충분히 약점을 보완한 뒤다. 이형택은 "서브가 시속 210km는 나와야 투어 톱10과 그 이상으로 갈 수 있다"면서 "지금도 좋아졌지만 랭킹이 더 높은 선수들과 경쟁하려면 승부처에서 서브 포인트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포핸드도 더 강하게 다듬어야 한다. 이형택은 "정현의 백핸드는 지금 투어 톱 랭커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포핸드는 다소 밀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포핸드를 날리고 뛰어드는 공격적인 부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자신의 기록이 깨질 상황이 서운하진 않을까. 이형택은 "기록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라면서 "그때가 언제가 될지가 중요하다"고 의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정현이 톱 랭커들과 대결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더 가지면 좋겠다"면서 "나도 예전 US오픈에서 피트 샘프러스(미국)와 경기한 뒤 다른 세계의 사람이 아니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강조했다.
한국 테니스 최고의 순간을 이끌었던 전설 이형택. 이제 그를 넘어 새로운 전설을 정현이 써내려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