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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불혹들이여, KBO의 위대한 40대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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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의 불혹들이여, KBO의 위대한 40대를 보라

    [임종률의 스포츠레터]'40대 전성시대' KBO 리그 주름잡는 불혹들

    '40대의 그윽한 응시와 원숙한 스윙' NC 이호준(위)이 30일 KIA전에서 7회 역전 결승 만루 홈런을 날린 뒤 타구를 바라보는 모습과 삼성 이승엽이 같은 날 LG전에서 역시 7회 결승 솔로포를 터뜨리는 모습.(자료사진=NC, 삼성)

     

    흔히 40살을 불혹(不惑)으로 표현합니다. 중국 성인 공자의 뜻을 담은 '논어'에 나오는 말로 마흔 살을 뜻합니다. 공자가 이때부터 세상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한 데서 유래된 한자성어입니다.

    사실 40살은 스포츠계에서는 환갑이나 다름 없습니다. 정신은 무르익었을지 모르나 신체는 그만큼 노쇠해지기 마련인 까닭입니다. 약관(20살)의 패기와 절정에 이른 이립(30살) 안팎의 선수들에게 밀리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올해 프로야구는 다릅니다. 40대들이 KBO 리그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불혹의 나이에 찾아온 '제 2의 전성기'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나이를 잊은 40대들의 활약을 조명해봤습니다.

    ▲공룡군단 이끄는 회춘의 '빠른 듀오'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는 NC의 중심에는 40대 기수들이 있습니다. 주포 이호준(39)과 손민한(40) 등 우리 나이로 마흔을 넘긴 선수들입니다.

    이호준은 NC를 넘어 올해 40대 기수론의 선두 주자입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된 이호준은 사실 이른바 '빠른'입니다. 1976년 2월 8일생으로 다른 76년생들보다 1년 빨리 입학했고, 1994년 해태(현 KIA) 고졸 신인으로 입단했습니다. 삶의 궤적과 경험은 75년생, 만 나이 40살과 같습니다.

    '다시 고등학교 가도 되겠네' 지난해 야구대제전에서 이호준이 모교인 광주일고 대표로 천안 북일고와 경기에 나선 모습.(자료사진=NC)

     

    하지만 그의 퍼포먼스는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것 같습니다. 30일까지 타점 1위의 괴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호준은 30일 KIA와 광주 원정에서 7회 역전 결승 만루 홈런 포함, 3안타 5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올해 47경기에서 62타점, 경기당 1.32개 꼴인데 2위인 팀 동료 에릭 테임즈보다 2경기를 덜 치렀지만 타점은 8개나 더 많습니다. 144경기로 환산하면 180개에 이르는 가공할 페이스입니다.

    40살이 된 요즘이 10여 년 전 20대 후반 전성기를 능가합니다. 이호준은 SK 시절이던 2003, 04시즌 야구 인생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03년 133경기 타율 2할9푼 137안타 36홈런 102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팀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이듬해도 이호준은 133경기 전 경기에 나서 타율 2할8푼 139안타 30홈런 112타점을 올렸는데 안타와 홈런, 타점 등 주요 지표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은 두 시즌이었습니다. 올해는 그런 두 시즌을 넘어서는 괴력을 보이는 겁니다.

    공룡군단 마운드의 맏형 손민한 역시 '빠른 75년생'입니다. 이호준과 마찬가지로 1년 먼저 사회적 삶을 시작했습니다. 2년 전 이미 동기들과 함께 불혹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NC 손민한이 28일 두산과 경기에서 힘차게 공을 뿌리는 모습.(자료사진=NC)

     

    하지만 손민한의 시계 역시 거꾸로 갑니다. 올해 9경기 6승(3패)으로 다승 공동 3위에 올라 있습니다. 평균자책점(ERA)도 7위(3.58)입니다. 15살 어린 후배 이재학(25)의 공백을 차고 넘치게 메운 토종 에이스의 활약입니다.

    특히 이닝당 최소 투구수(14.41개)의 경제 야구의 대명사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베테랑의 연륜과 노하우가 제대로 묻어나는 대목입니다. 최근 4연승의 상승세, 이쯤 되면 정규리그 MVP에 올랐던 10년 전 18승7패 ERA 2.46 활약을 떠올려 볼 만합니다.

    ▲40대 없으면 어쩔 뻔했니

    '통합 5연패'를 노리는 최강 삼성의 숨은 힘 역시 40대에서 나옵니다. 주전 경쟁이 가장 치열하고 두터운 전력을 자랑하는 삼성이지만 베테랑들의 존재감은 여전합니다.

    '사자 군단'의 상징이라면 역시 '라이언킹' 이승엽(39)입니다. 올해 타율 2할8푼1리 9홈런(13위) 33타점(16위)으로 여전히 타선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타율 3할8리에 역대 최고령 30홈런(32개)-100타점(101개) 기록을 세운 지난해에는 조금 못 미치나 여름에 강한 이승엽인 만큼 페이스 상승이 기대됩니다.

    2년 전 6월 19일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3회초 1사 1, 3루에서 삼성 이승엽이 SK 윤희상을 상대로 통산 최다홈런 352호 홈런을 쏘아올린 뒤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모습.(자료사진=삼성)

     

    무엇보다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새 이정표를 눈앞에 두고 있죠. 전인미답의 통산 400홈런입니다. 30일 잠실 LG전에서 결승 솔로포로 399홈런째를 날린 이승엽은 대기록에 꼭 1개만을 남겼습니다.

    통산 2위는 양준혁 해설위원의 351개, 3위는 장종훈 롯데 코치의 340개입니다. 현역 중에는 이호준이 299개로 역대 8위입니다. 이승엽과는 꼭 100개 차이. 일본에서 보낸 8시즌을 빼고도 독보적입니다. 이승엽의 400홈런은 1982년 출범한 KBO 리그 역사에 아마도 전무후무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갑내기 임창용 역시 뱀직구를 씽씽 뿌려대며 삼성의 뒷문을 단단히 잠그고 있습니다. 13세이브(2패)로 구원 단독 1위를 달립니다.

    올해 KBO 리그 최고령 선수 진갑용(41)도 역대 최고령 포수 출장과 최고령 홈런 기록 행진을 잇고 있습니다. 주전 마스크를 후배들에게 내줬지만 올해 타율 3할3푼8리 3홈런 10타점, 요긴한 대타 자원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뱀직구와 갑돌이' 삼성 베테랑 투포수 임창용(왼쪽)과 진갑용.(자료사진=삼성)

     

    올해 최고 화제의 팀 한화의 선전도 40대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필승 불펜 박정진(39)과 포수 조인성(40), 베테랑 유격수 권용관(39) 등이 노장의 힘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박정진은 3승1패 1세이브 9홀드 ERA 2.53의 빼어난 성적으로 권혁(32)과 함께 독수리 군단 필승조의 쌍두마차입니다. 조인성과 권용관은 공격은 물론 특히 수비에서 든든하게 팀을 받치고 있습니다. 없는 살림의 한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원들입니다.

    이외도 KIA 최영필(41) 역시 올해 2승1패 2홀드로 여전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제물포고를 졸업한 아들 최종현이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해 사상 첫 부자 동시 출전의 꿈은 미뤄졌지만 도전은 계속됩니다.

    공자는 40살부터 삶에 미혹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올해 KBO 리그를 주름잡고 있는 불혹의 선수들은 인생뿐만 아니라 야구에서도 미혹이 사라진 것이겠지요. 패기와 안정을 넘어 보다 원숙한 야구 인생의 진국을 우려내고 있는 이들의 활약이 꾸준하게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이들에게는 야구와 인생의 혼돈 속에 또 다른 불혹의 경지를 준비하는 다른 후배들의 귀감이 돼야 하는 책임감도 있을 겁니다.(하긴 일본 독립리그에서 3할 타율을 때리고 있는 훌리오 프랑코(57)가 삼성에서 타율 3할2푼7리, 22홈런, 110타점을 올렸던 2000년은 이미 불혹을 넘겼을 때였습니다.)

    '힘들어도 웃지요' 한화 베테랑 3인방 박정진(왼쪽부터)-조인성-권용관과 올해 KBO 리그 최고령 투수 최영필.(자료사진=한화, KIA)

     

    p.s-이들의 활약이 더 반갑고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저 역시 올해로 마흔 줄에 접어들어서일 겁니다. 동병상련의 위로가 아니라 유유상종의 힐링과 동질감을 얻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는 것을 넘어 제가 즐기는 스포츠는 농구입니다. 올해 들어 부쩍 뛰는 게 힘들고 회복이 늦어지는가 하면 부상까지 더러 당하는 이유가 '역시 40살이 돼서인가 보다' '나이는 속일 수 없네' '이제 그만 해야 하나' 등의 생각이 자주 들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40대의 나이에도 꿋꿋하게 리그 정상급 기량을 펼치는 선수들을 보면서 저 역시 힘을 얻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치이고 후배들에게 밀리는 낀 세대, 더욱 무거워지는 아버지의 어깨까지, 이 땅의 40대들 역시 KBO 리그의 동지들을 보면서 인생의 미혹을 날려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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