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재(사진=케이퍼필름 제공)
지난 16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정재(43)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물음에 답했다.
오는 22일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 ㈜케이퍼필름)의 개봉에 앞서 마련된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암살이 관객들에게 물음을 던지는 영화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고 했다.
'올해 광복 70주년에 맞춰 1930년대 독립군의 싸움을 그린 영화에 출연한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해 고민 끝에 내놓은 답변이었다.
"촬영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말자'는 감독님의 의도에 배우들도 뜻을 같이 했어요. 오히려 많은 물음을 던지는 영화가 됐으면 했죠. 연기에서 들끓는 감정의 과잉을 배제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객들이 생각하실 수 있게끔 여백을 만들자는 뜻이었죠."
이날 이정재는 극중 전지현이 연기한, 친일파 암살에 투입된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의 "알려 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는 대사를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어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몹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죠. 관객들이 영화를 봤을 때 하나라도 더 가져가시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건 영화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느꼈던 부분이죠."
그가 이 영화를 위해 몸무게를 15㎏이나 줄이고, 목소리까지 낮은 톤으로 바꿔가며 배역에 몰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몸무게를 갑작스레 줄인 탓에 생긴 체력적인 부담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까지 이어지더군요. 촬영 내내 그 몸무게를 유지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치열하게 싸웠던 독립군의 고통을 아주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낮게 깔린 염석진의 목소리도 상대를 제압하는,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지닌 그의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였죠."
영화 암살의 이야기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이 점에서 "촬영에 앞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에도 공을 들였다"는 것이 이정재의 설명이다.
"1930년대, 40년대를 기록한 자료를 무척 많이 봤어요.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수많은 사건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다큐멘터리 위주로 접했죠. 자료를 보면서 '물지 못할 거면 짖지도 말아야지'라는 말이 눈에 띄었어요. 몹시 인상적이었죠. '이걸 염석진의 대사로 녹여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감독님께 제안했는데, 한 장면에 절묘하게 집어넣으셨더군요."
그는 자신이 연기한 염석진을 두고 "겉으로는 강하게 여겨지지만, 내면을 보면 겁이 많은 인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배우 이정재(사진=케이퍼필름 제공)
"염석진의 나약함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아편굴 신을 통해 그의 내면을 확실하게 접했어요. 임시정부 요원으로 있으면서 이곳을 지속적으로 들락거렸을 것이라는…. 염석진은 삶에 대한 집요함을 지닌 사람입니다. 극중 그의 대사들을 통해 이러한 인물상이 잘 그려진 것 같아요."
암살에서 염석진은 허구의 영화적 캐릭터이지만, 우리네 굴곡 많은 근현대사를 돌아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