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관계가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빠르게 복원되면서 한반도 외교안보 지형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중국은 권력서열 5위의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을 축하 사절로 보내고 시진핑 주석의 친서까지 전달하며 ‘전통적 우의’를 강조했고 북한도 이에 화답했다.
심지어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데는 나름의 사정도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12일자 사설에서 “계속되는 한미연합훈련에 북한이 얼마나 초조해하는지도 이해해야 한다”며 “외부 세계는 북한이 안심하고 국가 전략을 바꿀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지난달 한중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 때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당시 시 주석은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거나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어떠한 행동도 반대한다”는 강경 발언으로 한미일 3국의 대북 제재․압박에 동참했다.
일견 대북공조의 균열로 볼 수 있는 중국의 ‘변심’은 미국과 일본의 신(新) 밀월관계 형성에 대한 경각심으로 보인다.
일본의 안보법제 처리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 등이 대중국 포위 전략으로 읽히면서 지정학적 완충지대로서의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는 “미일동맹이 강화되고 한미일 지역안보 체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중국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북한과 일정 수준의 관계 개선과 전략적 협력이 필요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북중관계 진전이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新) 냉전 구도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여러 시험 끝에 아직은 미국을 넘어설 수 없다고 보고 전면 대결구도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 전략에선 남북한에 대한 균형 접근이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중국의 이런 현상유지 전략이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맞물려 북핵 문제를 장기간 방치할 가능성이다.
한국은 중국을 지렛대 삼아 북핵 문제 해결에 주력해왔다. 원유 및 식량 지원 같은 압박 수단을 이용해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 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이번에 오히려 관계 정상화 카드를 대북 지렛대로 사용하며 자기 방식의 ‘건설적 역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우려했던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등은 유예, 동결됐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다.
하지만 어찌됐든 중국의 노력으로 불안한 ‘안정’을 유지하게 된 가운데 공은 한미 정상의 테이블로 넘어왔다.
한미 양국이 오는 16일(현지 시간) 보다 전향적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북핵 해결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최악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북핵 불용’ 원칙 못지않게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는 중국의 선택은 예단이 쉽지 않다.
{RELNEWS:right}성공회대 이남주 교수는 “중국으로서도 실질적으로 택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고 본다”며 “중국을 통해 북한의 행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은 남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중관계 접근을 통한 일시적 안정 국면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이다.
비핵화 원칙엔 이견이 없지만 방법론의 차이 때문에 교착 상태인 북핵 문제의 돌파구는 결국 한국의 몫일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측의 이해를 조율하는 연결고리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김한권 교수는 “지금의 북중관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외교력을 발휘한다면 북핵 해결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지만, 제대로 못한다면 도리어 북핵과 통일의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며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