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나븐 나라' 스틸컷.
처음에는 무엇이든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년의 투쟁은 절망의 연속이었다. 이미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그것은 애가 끊어지는 고통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평범한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태극기를 가슴에 품지 않는다. 이 나라가 '나쁜 나라'인 것을 깨달은 후부터.
16일 서울 마포구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 안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 나라'의 시사가 끝난 자리에는 잠시 침통한 침묵이 감돌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무대 위에 등장했다. 특별법 제정까지 모진 1년을 견뎌낸 탓일까. 고(故) 이재욱 군의 어머니, 고(故) 최성호 군의 아버지에게는 풍파에 깎여 단단해진 모습으로 취재진 앞에 섰다.
김진열 감독은 지난해 5월 진도에서 유가족들을 처음 만났다. 길고 긴 기록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416 세월호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소속인 그는 정일건, 이수정 감독과 함께 이 영화를 만들었다.
대상화된 유가족들은 대중에게 어떤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영화는 유가족 개개인의 사연과 일상을 담는데 주력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 나라' 스틸컷.
함께 밤을 지새우고 시위를 준비하는 유가족들, 막아 선 경찰 발 밑에서 무릎 꿇고 흘리는 눈물, 거대한 권력과 맞붙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재욱 어머니는 영화에 나온 '나쁜 나라'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쁜'이 나밖에 모른다는 뜻이거든요. 나밖에 모르는 나라인거죠. 여러분들은 지금 빙산의 일각만 본 겁니다. 정말 나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면, 못 살 거예요. 조화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나쁜 나라가 좀 더 제대로 조명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고자 하는 것이 인간 본성인데 그런 기본적인 인간성을 짓밟는 것이 나쁜 나라입니다.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그 실상을 낱낱이 밝혀야 되는데 아직 시작 단계죠. 나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진실은 묻혀 있어요. 언론인들이 제대로 된 진실을 알고도 알리지 않는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알려주세요." (재욱 어머니)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이들이 그저 선하고 평범한 시민들임을, 힘이 없어 뭉칠 수밖에 없었던 자식 잃은 부모임을 실감한다. 국가 앞에서 유가족들은 불법 시위를 하는 죄인이 되고, 이 나라 정부가 아닌 교황에게 희망을 찾고 위로를 받는다. 특별법 제정 이후, 많은 사람들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온전한 세월호 인양이 이뤄져야 하는데 인양에서의 유가족 참여 문제가 남아 있어요. 유실 방지가 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일부 유가족들은 인양 모니터링을 위해 동거차도에 내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순직한 기간제 교사 분들이 기간제라는 이유만으로 순직 처리가 되지 않아 이에 대한 캠페인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교실 문제도 있고요. 아이들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교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의논 중입니다. 존치해서 추모와 교육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있는데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4.16 연대 이태호 상임위원)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 나라' 스틸컷.
해양수산부는 이들이 인양 작업 중인 바지선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유가족들은 그저 애타게 바지선이 보이는 동거차도에서 기다림을 거듭할 뿐이다.
"바지선이 보이는 위치에 진을 치고 카메라를 설치해서 보고 있어요. 해양수산부에서 바지선을 타게 해주지 않고, 과정을 설명해주지 않으니까요. 저번에는 아예 저희가 보지 못하게 등을 돌리더라고요. 보지 말라는 거죠. 바지선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세 가지였습니다. 중국인들이 작업을 하니까 통역이 필요하고 그러면 작업 과정이 힘들어진다.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안 된다. 중국 작업자들이 위축되니까 안 된다. 저희는 7~8개월 동안 더 작은 바지선도 탔습니다. 제 가족이 그곳에 있는데, 그걸 보겠다는데…. (해양수산부는) 그런 취지로 설명해서 작업자들을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겁니다. 수많은 배들이 들러붙고, 무엇을 전달하고, 금속성 소음이 나고…. 멀리서 지켜볼 뿐, 무엇을 하는지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교대해 가면서 있는데 속에서 천불이 나죠. 그런데도 갑니다. 그러고 있습니다." (성호 아버지)
진정한 책임자를 찾기 위해 유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진상규명의 일환인 이 일조차도 좀처럼 쉽지 않다. 정부로부터 지속적인 압박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수많은 책임자와 잘못한 사람이 있음에도 재판 과정을 통해 잘잘못을 묻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죠. 책임자들이 편안하게 발 뻗고 자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배·보상 기준 제시는 저희가 수긍하고 인정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참사를 만든 당사자들에게 재판장에서 묻고 싶어요. 피해자를 만들었던 이유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건 돈도 시간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잖아요. 아이들의 죽음에 영향을 준 사람들이 딱 죄 지은 만큼만 벌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500일 추모제가 끝날 쯤에 해양수산부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배·보상 절차 설명하니까 어디로 오라고 하더군요. 소송 가봤자 소용없다, 유가족이 50명 이상 소송에 참여할 경우 강력 대응을 준비할테니 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유가족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어머니 혹은 아버지 혹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저는 제욱이 엄마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상황에 대한 당연한 반응, 제 양심에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