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에서 우장훈 검사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 (사진=쇼박스 제공)
그야말로 화려한 귀환이다. 무대를 수놓았던 조승우는 3년 만에 영화 '내부자들'로 스크린에 주인공이 되어 돌아왔다.
청소년 관람불가(이하 청불) 등급인 '내부자들'은 무서운 흥행 속도를 보이며 지난 7일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내부자들'은 2주 앞서 개봉한 영화 '검은 사제들'이 세운 기록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이대로라면 청불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쓸 날이 머지 않았다. 이로써 조승우가 말했던 '500만 관객'의 바람은 이뤄진 셈이다.
'내부자들'은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 내부에 속해 있던 두 남자가 부패한 권력의 민낯을 파헤치고 고발하는 영화다. 조승우를 비롯, 이병헌, 백윤식, 이경영 등 선 굵은 남자 배우들이 빚어낸 결과물은 대단히 파괴적이었다. 치우침도 모자람도 없이 각자의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된 덕이다.
'베테랑'부터 이어진 사회 권력층을 향한 풍자와 비판은 '내부자들'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통쾌함이 배가 된 이유도 있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승우와의 인터뷰는 '제 1차 민중총궐기'가 열린 지난달 14일에 이뤄졌다. 인터뷰 할 카페가 위치한 삼청동 골목길 곳곳에는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사복 경찰에게 소지품을 불심 검문 받으면서까지 어렵게 인터뷰 장소에 들어섰을 때는 문득 극중 깡패 한상구(이병헌 분)의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긴 한가?"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동기야 어쨌든 '내부자들'에서는 그 정의를 '구하고자' 한 이가 있었다. 조승우가 맡은 우장훈 검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다음은 스스로 '고양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곰처럼 우직한 배우 조승우와의 일문일답.
▶ 배우 이병헌, 백윤식 등 카리스마 있는 선배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어떤 작업이었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촬영하고 나서도 제 역할이 잘 살아날 수 있을지, 연기를 소극적으로 한 것이 아닌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정말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상대 배우들의 영향을 받고, 그 분들의 연기를 같이 받아쳤을 뿐이다. 후반 작업에서 감독님과 편집 기사님이 모니터 시사회를 많이 하고, 객관성을 바탕으로 수정·보완해 나가면서 시나리오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된 것 같다. 후반 작업으로 저희 셋뿐만 아니라 다른 굵직한 캐릭터들까지 팽팽하게 균형을 맞췄고, 이 때문에 영화가 잘 살았다.
▶ 오랜만의 스크린 컴백인데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기분은 뿌듯하겠다. - 시사회 이후에 기분이 좋아서 술을 많이 마셨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웃음) 제가 맡은 우장훈 검사라는 캐릭터에게 부장 검사가 '(잘리기 싫으면) 잘 태어나든가'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잘 안 되는 상황을 어쩌란 말인가. 그런 장면들이 가슴을 '팍' 하고 건드리는 것 같다.
▶ 권력 중심에 있는 남성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영화 자체도 선이 굵고 거칠면서 남성적인 드라마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여성 관객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무겁게 했다. 아무래도 남자들이 우글우글 나오는 영화니까. 그런데 꽤 거북스러운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여성 관객들이 통쾌해 하면서 좋아하더라.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 국민으로서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나 메시지가 통하는 것 같다. 비록 허구적인 이야기지만 세상에 대해 느끼는 것은 남녀가 똑같다. 그런 매력이 영화적으로 맛깔나게 나온 듯하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우장훈 검사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 (사진=쇼박스 제공)
▶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의 대사 중 "이런 여우 같은 곰을 봤나"라는 말이 있다. 실제 조승우는 어떤 타입의 사람인지 궁금하다.- 저는 고양이과다. 평소에는 늘어져 있는데 관심이 있으면 딱 일어나서 집중한다. 어떤 한 가지가 재미있으면 그것만 한다든가. 고양이를 키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비하면 외향적으로 변했다. 옛날에는 인터뷰하면 단답형으로 유명했다. (웃음) 그 때도 최선을 다하긴 했다. 말을 잘 못해서 그렇지.
▶ 항간에서는 이 영화와 올 여름에 흥행한 '베테랑'을 비교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베테랑'을 봤는데 저는 전혀 다른 것 같다. 성향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다. '베테랑'은 액션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정말 재밌게 봤다.
▶ 본인이 출연한 영화 흥행 성적에도 신경을 쓰는 타입인지?- 이번에 500만 관객만 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고고70'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흥행이 되지 않았을 때 제작사와 투자사에 너무 미안했었다. 시놉시스나 시나리오도 없을 때부터 제가 하겠다고 결정한 유일한 영화였다. 시나리오 나오는 과정에서도 의견 제시하고 정말 제 자식처럼 공을 많이 들였다. 음악 선곡도 하고, 배우들이 전부 밴드 멤버들이라 연기 레슨도 했었다. 정말 홍대에서 살았다. 문제는 그 당시에 상황이 좋지 않고, 우울한 시기여서…. 흥행은 정말 운인 것 같다. 시기도 잘 타야 될뿐 아니라 많은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 갖춰져야 한다. 그래도 선택은 제가 했고 후회없이 찍었다.
▶ 그 동안 공연하면서 무대에 많이 섰는데, 휴식 시간은 좀 있었나. 단체 생활이라 회식도 자주하고 그랬겠다.- 뮤지컬은 굉장히 규칙적이라 건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정해진 연습시간과 공연시간이 있어서 밥도 항상 제때 먹는다. 제가 오토바이 타는 걸 좋아하는데 1년 반 동안 타지를 못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혹시나 목이 상할까봐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헬멧은 머리만 보호해주지 목은 보호를 못해주니까. 그래서 오토바이도 녹슬어 가고 있고…. 24시간 중에서 자는 시간을 빼면 20시간 정도가 남는데 역시 공연하는 세 시간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회식 같은 경우에 술은 즐길 수 있을 때 적당히 즐기는 편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과음하지 않는다. 담배는 애 낳기 전에는 끊을 생각이고.
▶ 잠을 네 시간만 잔다고? 뮤지컬 공연도 영화나 드라마 못지 않게 힘든가 보다. 스스로 일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그렇다. 저는 한달 이상은 쉬지를 못하겠다. 그렇게 쉬어본 적도 별로 없고. 영화나 드라마도 찍는 순간에는 재미와 고생이 동반이 된다. 촬영이 끝나면 그 뒤에서 느끼는 보람이 있달까. 뮤지컬은 그 행복과 보람이 동시에 가니까 더 좋다. 영화 찍을 때 지방 촬영하러 차 타고 멀리까지 가면 정말 힘들고, 겨울에 촬영하면 얼어 죽을 것 같다. (웃음) 예전에 50부작 드라마 '마의' 찍을 때는 군대에 2년 다녀온 것보다 더 힘들었지만 그만큼 뿌듯하기도 했다.
▶ 가끔은 쉬고 싶다거나, 여행이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할 것 같은데.- 여행은 별로 간 적이 없다. 왜 집을 나가서 사서 고생하나. 제가 원래 '집돌이'다. 일상도 별 게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뉴스 보고, 개 한 마리랑 고양이 두 마리에게 밥 주고, 가끔 산책도 시켜주고, 공연이 있는 날은 억지로라도 4~5시간 정도 자고…. 그게 전부다. 야구 시즌에는 야구를 보기도 한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우장훈 검사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 (사진=쇼박스 제공)
▶ 집에 있다면 아무래도 TV를 많이 보겠다.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궁금하다.- 보니까 'K팝 스타'라는 프로그램에 인재들이 많더라. 미국 드라마는 '왕좌의 게임', '멘탈리스트', '브레이킹 배드' 등을 좋아한다. '썬즈 오브 아나키'(Sons of Anarchy)라는 미국 드라마도 있는데 드라마 수위가 굉장히 강한데 걸러내고 여과시키는 것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저는 드라마가 정말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보여줄 것은 다 보여주고, 현실적으로. 향수를 자극시키는 드라마들도 좋더라. '응답하라 1994'에서 이문세 씨나 장혜진 씨 노래가 나오면 눈물이 났다. 요즘은 케이블 드라마도 신선한 작품들이 많다.
▶ 국내나 해외 드라마 관계없이 드라마를 즐겨보는 열혈 애청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다시 드라마로 돌아올 생각도 있나?
- '신의 선물'을 제가 재밌게 찍어서 계속 시즌2를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 했었다. 이렇게 시리즈로 갈 수 있는 드라마를 한 번 해보고 싶다. 영화 한 편을 3~4개월 열심히 찍는 것도 좋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는 대본도 영화보다 늦고, 잠을 자지 못한 채 생방송처럼 찍기도 한다. '신의 선물' 같은 경우는 대본이 먼저 나왔었다. 당시에 비록 촬영 현장은 영화보다 열악할지라도 두 시간 짜리 영화 대본에서 인물을 표현하는 것과 한 편에 60분 짜리 드라마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 이쯤되면 조승우라는 배우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궁금하다.- 저는 시나리오나 대본을 볼 때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 주관을 많이 섞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단순하다. 이게 재밌다 싶으면 한다. 그렇지만 내가 후회할 것 같으면 하지 않는 거다. 망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으면 선택하고.
▶ 뮤지컬 '베르테르' 공연 중이다. 13년 전에도 베르테르 역할을 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달라진 지점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