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배우 김명민이 연기하는 정도전(사진=SBS 제공)
"정치란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단순한 것이오. 정치란 나눔이요 분배이오!"
여말선초의 과도기를 다룬 SBS 사극 '육룡이 나르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삼봉 정도전(김명민 분)의 일갈이다.
지난 19일 방송된 이 드라마의 32회 말미에는 역성혁명을 꿈꾸는 정도전이 권문세족 등 고려의 기득권층을 견제하고자 벌이는 토지개혁 에피소드가 그려졌다.
이 장면에서 정도전이 5분여에 걸쳐 펼쳐낸 연설은, 고단한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다는 힘있는 소수를 챙기는 데 급급한 국내 정치권의 일그러진 풍경과 맞물리면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줬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 장터에 쌓아둔 문서 다발 앞에 선 정도전은 "나 정도전이오. 나 정도전은 스승님과 동문들을, 선배들을 탄핵하고 유배를 보냈소이다. 바로 이것들 때문이었소. 여기 있는 것들은 이 고려 전체의 토지대장이오. 다시 말해 이것은 이 나라 온 백성이 빼앗긴 땅의 목록이자 되찾아야 할 땅의 전부란 말이오"라고 운을 뗐다.
당대 경제활동의 축은 농업이었으니, 농사 지을 땅의 소유권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는 곧 경제권력을 손보겠다는 뜻과 다름없었으리라.
정도전은 이어 "이 토지대장에 적힌 단지 몇 십 자의 글자로 여러분은 일평생을 일군 땅을 잃었고, 고향에서 쫓겨나 낯선 땅을 헤매고 있는 것이오. 자, 여기에 가렴주구(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와 토지겸병으로 얽힌 고려의 토지대장이 있소. 또 도화전에 이만큼의 새로운 양전자료가 있소. 60만 결의 양전자료요. 이것이 다가 아니나, 우리는 힘겹게 여기까지 왔소. 그 양전자료들을 바탕으로 토지개혁에 착수한다면 빼앗긴 토지의 대부분을 되찾을 수 있고, 조세는 단지 10분지 1만 내면 될 것이외다"라고 민초들을 향해 외쳤다.
(사진=SBS 제공)
특히 "허나 여러분들이 장터에서 보았듯이 땅을 겸병하고 수탈한 자들이 복잡한 정치논리를 내세워 이를 반대하고 있소. 정치, 정치가 무엇이오. 정치란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단순한 것이오. 정치란 나눔이요 분배이오. 정치의 문제란 결국 누구에게 거둬서 누구에게 주는가, 누구에게 빼앗아 누구를 채워 주는가요"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득권층을 가리키며 "당신들은 누구에게 빼앗아 왔고, 누구에게 폐해를 주었소이까"라고 호통을 친 정도전은 "밀직부사(정삼품에 해당하는 고려시대 벼슬)인 나 정도전, 지금부터 정치를 하겠소"라고 선언한다.
그 뒤로 등장하는 장면은 정도전이 꿈꾸는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상징성을 품고 있다. 횃불을 들어 주변 민초들과 불꽃을 나눈 삼봉은 "이 나라의 땅은 500년간의 가렴주구와 겸병과 수탈로 썩어 문드러진 땅이오. 여러분은 썩은 땅을 어떻게 개간하시오? 응당 불을 질러 화전을 함이 옳지 않겠는가"라며 참여를 독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