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국회앞에 나 붙은 누리과정 현수막 전쟁 (사진=박종민 기자)
1대 4의 싸움이었다. 2일 열린 국무회의 때 누리과정을 놓고 벌인 설전 말이다. 아닌건 아니다는 박원순 시장에게 박근혜 대통령, 황교안 총리, 유일호 부총리, 이준식 부총리는 거세게 몰아붙혔다. 대통령 참모는 링에서 내려오는 박원순 시장을 따라가면서까지 잽을 날렸다.
누리과정 논란은 기나긴 세월을 거치면서 모양과 내용, 관련 제도마저 바뀌었기 때문에 어느 격식 차린 회의석상에서 짧은 시간에 시시비비를 논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그냥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싸움처럼 변색되고 있다. 마치 그날 국무회의처럼. 주장이 상반되기 때문에 싸움 과정조차 내부자의 입맛에 맞게 왜곡된 채로 외부로 중계되기도 한다. '박원순 시장이 아무 대꾸를 못했다'는 조선일보 보도가 그 경우다.
박원순 시장은 수적 열세를 극복 못하고 KO패를 당한 걸까? 설사 박원순 시장이 졌어도 진실이 진 것은 아니다. 사실부터 가려보자.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듣고 보면 새누리당이 자신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길거리에 내붙인 누리과정 현수막(사진)에 써놓은 글귀를 떠올린다.
① "도대체 왜 누리과정 예산을 다 내려 보냈는데 교육청은 예산집행을 하지 않느냐?"② "누리과정 예산 편성과 집행은 법적 의무다"③ "받을 돈은 다 받고 이제 와서 또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계속 그러면 앞으로 법을 바꾸겠다"①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다 내려 보냈다'는 표현은 잘못됐다.
정부가 교육청에 내려 보낸 것은 누리과정 예산이 아닌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부금)이다.
교부금은 누리과정 예산이 아니다. 누리과정 예산을 사전에 편성해 내려 보낼 수도 없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그렇게 돼 있다. 그렇다고 교부금 외에 다른 돈을 내려 보낸 것도 아니다.
숙명여대 송기창 교수(교육학)는 "정부가 4조원이 드는 누리과정 사업을 하라고 하면서 돈은 한 푼도 추가로 안주는 것은 초중등교육에 들어가는 돈을 빼서 유아 보육에 집어넣으라는 말이 된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은 ①대신 이렇게 말했어야 옳았다. "도대체 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가운데 일부를 누리과정 예산에 편성하지 않느냐?" 이에 대한 답은 교육감들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면 다른 교육 사업에 돈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청들은 누리과정에 돈을 쏟아 붓느라 다른 '고유'의 목적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누리과정 정책이 시행된 2012년부터 3년간 지방교육재정 변동 추이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누리과정 예산으로 교육 사업이 축소되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래프. (그래프=스마트뉴스팀 제작)
이 시기 누리과정 비용이 1조 6,811억원에서 3조 3,502억원으로 배 이상 치솟은 반면 교육지원사업(영재교육, 특수교육 등), 교육기관시설(환경개선, 급식체육시설 등) 비용은 곤두박질 쳤다.
②역시 잘못이다. 교부금을 교육청 예산으로 편성하는 것은 교육감의 권한이다.
박 대통령의 '법적'이라는 말은 아마도 '법(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이 아닌 '시행령'을 이야기한 듯 하다. 시행령은 교부금에서만 누리과정을 지원하도록 지난해 정부가 개정했다.
하지만 시행령은 정부가 마음대로 개정할 수 있는 것으로 문제의 시행령은 상위법(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과 배치된다는 논란을 빚고 있다. 문제의 시행령은 뿐 만아니라 '교육재정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31조 6항)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신이 바꾼 시행령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박 대통령도 인식하고 있는걸까? ③에서 "그러면 법을 바꾸겠다"고 말한 걸 곱씹어 보면 그런 거 같다.
③에서 '받을 돈은 다 받고 이제 와서 또 달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부분은 일종의 선동이다.
교육청들이 돈이나 더 받겠다고 떼를 쓰는 집단처럼 들린다. 하지만 따져보자. 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0~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래서 박 대통령 취임 이후 5세에 머물던 누리과정 대상이 3~4세로 확대됐다. 22만원으로 오른 지원금 지원 대상도 경제력이 낮은 가정의 어린이 뿐 아니라 모든 어린이로 확대됐다.
당연히 의문이 뒤 따른다. 비용은 어떻게 조달하나? 하지만 정부가 누리과정을 위해 '추가로' 부담한 돈은 없었다. '기존'에 교육청으로 내려 보낸 교부금으로 모두 해결했다. 정의당이 누리과정 현수막(사진)에서 '예산 안줬다고 전해라'고 쓴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정부가 추가 예산을 안주다 보니 교육청에는 돈이 모자라게 됐다. 교육청은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채무현황을 보자. 누리과정이 시행되기 시작한 2012년 9조 2,590억원이던 빚이 2013년 10조를 넘어서더니 2014년 11조 4,223억원, 2015년 17조 1,013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누리과정 시행 4년만에 빚이 배 가까이 뛴 것이다. '받을 돈을 다 받고 이제 와서 또 달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박 대통령은 이런 내용을 알고 그런 말을 했을까?
다음으로 총리와 경제 부총리의 발언을 보자.
이들 두 사람은 "누리과정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으니 서울시도 협력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고? 그 동안 정부는 교육감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한 게 몇 번이나 되나? 그 보다는 연일 유치원, 어린이집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여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가 유치원, 어린이집 관계자들을 만나면 누리과정 문제가 해결되나? 문제 해결 당사자는 유치원, 어린이집 사람들이 아니라 교육감들이다.
끝으로 이준식 교육부총리의 경우를 보자.
이 부총리는 이날 국무회의 설전 소식이 뒤늦게 전해진 4일 이와 관련해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어 박원순 시장을 '확인사살'하려 했다.
그는 "2012년 이미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시행되고 있는 누리과정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 전체회의를 소집해 다시 논의하자는 취지의 발언은 중앙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적절하지 못하다"고 다시 박 시장을 때렸다.
이 부총리가 말한 2012년 사회적 합의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협의가 있었고, 일부 교육감은 환영입장을 밝힌 것을 두고 한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협의와 합의는 명백히 다르다. 교육감협의체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측은 당시 공식 기구를 통한 의견 수렴도 없었다고 반박한다. '누리과정을 환영했다'는 교육감들도 누리과정 도입을 찬성했을 뿐이지 재원을 교육청에 떠넘기는 것에 대해 찬성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긋고 있다.
결론이다.
박근혜 정부는 교육청이 사용하는 교부금에 칼을 대려하고 있다. 박 대통령 그 자신 역시 2015년 1월 2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학생 수가 계속 감소하는 등 교육환경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학교 통폐합과 같은 세출 효율화에 대한 인센티브가 지금 전혀 없다"며 "내국세가 늘면 교육재정 교부금이 자동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현행 제도가 과연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심층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