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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님, 왜 하필 윤동주와 송몽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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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익 감독님, 왜 하필 윤동주와 송몽규인가요?

    [노컷 인터뷰] "부끄러운 역사 직면할 용기, 윤동주·송몽규가 가리키는 달을 보라"

    영화 '동주'의 메가폰을 잡은 이준익 감독.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흑백에 5억 짜리 저예산 영화. 그럼에도 영화 '동주'에는 그것을 뛰어 넘는 어떤 가치가 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곳에서 청년들은 처절하게 투쟁한다. 결과적으로 무엇인가 이뤄내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그 발걸음만으로도 반짝인다.

    '사도'에 이어 '동주'까지, 메가폰을 잡은 이준익 감독은 전혀 다른 역사적 인물에 다른 색을 입혀 내놓았다. '동주'는 흥행을 바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렇지만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잘 나가는 이준익 감독의 '일탈'이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예산 영화가 더 좋은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순수 회화를 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돈을 받게 되면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오히려 본질로부터 덧씌워지는 것이 있어요. 이번에는 어떤 상업적인 가면도 쓰지 않으려고 일부러 스타 캐스팅도 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강하늘 씨가 떴더라고요. 개봉을 지금해서 그렇지 '동주' 캐스팅은 '미생'보다도 전이거든요."

    영화 내내 내레이션이 나오지만 '동주'는 윤동주의 시를 위한 영화는 아니다.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윤동주'라는 인물을 통해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는 역사를 짚어 내고 있다.

    "시를 읽기 위해 찍은 영화는 아닙니다. 유럽은 독일의 나치즘, 군국주의, 파시즘 등에 대해 끊임없이 분석하고 추궁하고 책임을 물었어요. 아시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죠. 그러나 가해자가 내세운 부도덕한 군국주의와 그 모순적 논리에 대한 정확한 지적과 책임 묻기, 추궁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영화 '동주' 스틸컷.

     

    그는 윤동주가 써 내려 간 시들이 '처참하다'고 이야기했다. 그 '처참함'은 영화 속 이준익 감독이 의도한 연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느 왕조의 못난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라는 '참회록' 내레이션이 흐를 때는 '경복환'이라는 이름의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다. 일본은 당시 조선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경복궁', '창덕궁' 등의 이름을 온갖 동물들과 사람들이 올라 타는 연락선에 붙였다.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이었다.

    "부끄러운 역사를 가리고 숨기는 것보다는 정확히 알고 그런 역사를 재현하지 않는 것이 낫지 않나요? 저 역시도 그런 역사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과거를 통렬하게 반성하고 인정한다면 절대 부끄러운 역사는 재현되지 않아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윤동주 시인의 시는 익숙할 것이다. 서정적이면서도 부끄러움 가득한 정서를 좋아하는 이들도 많다. 기자 역시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한 구절 정도는 외우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윤동주의 시'가 아닌 '윤동주'를 알고 있을까. 행동하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면서도 끝내 조국의 말로 시를 써내려 갔던 그 용기를. 감옥에서 정체 모를 주사를 맞고 스러져 간 20대 조선인 청년을. 이준익 감독은 '동주'를 통해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윤동주 시인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과연 우리가 윤동주의 삶과 죽음도 그만큼 알고 있을까요? 제 말은 식민지 말에 순혈한 영혼을 가졌던 청년들이 생체실험 대상으로 희생당한 것에 대해 분노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윤동주 시인을 비롯, 1,8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에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링거를 맞고 있는 겁니다. 부족한 혈액 대체재, 즉 식염수를 개발하기 위해 시행된 실험이었으니까요."

    영화 '동주' 촬영 현장에서의 이준익 감독. (사진=자료사진)

     

    그 시절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도 변명은 있다. '영원히 일본이 조선을 지배할 줄 알았다'. 그들의 예상은 틀렸고, 우리는 '광복'을 맞았다. 이준익 감독은 '현실에 입각한 사람들'을 쉽게 비난하거나 욕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순응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인정하지 않아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에 순응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가치를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일'을 했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일본이 영원하고 조선은 없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국제 정세에 어두웠고, 정보 부족으로 인한 오판이었습니다. 역사의 비밀은 절대 역사가 예측대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죠."

    '동주'에 나오는 일본인들은 무조건 조선인들을 무시하고 짓밟지 않는다. 윤동주에게 끊임없이 도움을 주는 교수가 있는가 하면, 허구이지만 그의 시를 출판하기 위해 발로 뛰는 여성도 있다. 윤동주와 설전을 벌이는 형사조차 결국 윤동주가 내뱉는 마지막 일갈에 눈빛이 흔들린다.

    "일본 사람이라고 다 나쁘게 그리려고 한 의도는 없었습니다. 형사는 윤동주와 송몽규 두 사람에게 계속 정당성과 논리를 들이대면서 추궁하지만 그 역시 군국주의의 하수인일 뿐입니다. 근대화를 먼저 이룬 나라가 현대로 돌입하면서 맞게 되는 파행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 대한 고발이죠. 그가 마지막에 윤동주의 고백을 들으면서 멍해지는 순간, 일종의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너희가 19세기와 20세기에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지, 일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역을 맡은 강하늘과 송몽규 역을 맡은 박정민. (사진=자료사진)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일본'이라는 공간이 다른 어떤 독립 운동의 공간보다 의미가 있다고 봤다. 가장 엄혹하던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말로 시를 썼던 그는 감옥 속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동주는 일본인들도 사랑하는 시인 중의 한 명이다.

    "사실과 진실이 있어요. 사실은 진실을 포함하지 않고, 진실은 사실을 포함하죠. 영화라는 허구를 통해 윤동주에 대한 진실에 도달하려 노력했어요. 물론 이 허구는 고증과 연장선상에서 확장된 허구입니다. 식민지 후반기를 다룬 영화들 중 보통 일본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없어요. 우리들의 청년은 아름다운 시를 남기고 그 땅에서 죽어갔습니다.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시인을 그 국가가 어떻게 죽였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동주'는 결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윤동주와 송몽규 모두 독립을 바라보고 나아갔던 청년들이지만, 역사에 남을 만한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윤동주를 '시인'으로, 송몽규를 '윤동주의 친척' 정도로 기억해왔다.

    "'동주' 배우들이 인터뷰할 때 '과정이 아름다운 삶'을 꼭 이야기해요. 우리는 지금까지 '성장주의'로 일관해 왔어요. 성장주의의 특징은 과정이 무시당하고 결과만이 우선된다는 거죠. 성장이 둔화되니 동력을 찾는다고 하는데 제대로 찾은 게 없습니다. 성장 다음은 성숙이니까 그래요. 성숙의 가치는 결과보다 부도덕한 자본의 정당성을 개선하는 과정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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