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제공)
오랜만에 정치풍자 개그를 선보이고 있는 KBS '개그콘서트'를 보는 시청자들의 눈이 곱지만은 않다. "속이 시원하다"는 목소리의 한편에서 "정치에 대한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은 까닭이다.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인 '1대 1'에는 '기호 0번' 국회의원 입후보자로 개그맨 이상훈이 등장한다. 그는 지난 3일 방송에서 '고춧가루를 뿌려서 만드는 것을 무엇이라고 할까요?'라는 MC 유민상의 질문에 "공천"이라고 답했다. "최소한 나에게 두 번째 자리는 줬어야 한다" "부저를 들고 부산으로 내려가 있겠다"는 발언으로 총선을 앞두고 공천 갈등을 겪어 온 정치계의 민낯도 풍자했다.
또한 '목소리와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예민한 시기는?'이라는 물음에는 "선거 운동기간"이라며 총선만 되면 나타나 국민들을 향해 굽신거리는 정치인들의 태도를 꼬집었다. 그는 "왜 4년에 한 번씩만 나타나냐. 올림픽이냐"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20일 방송된 같은 코너에서 이상훈은 '힘에 의해 갈라져 어긋나는 것'이라는 MC의 질문에 "새누리당" "더 민주당"을 언급하면서 총선을 앞두고 깊어졌던 정치권의 당내 갈등을 지적했다.
그는 이날 "유민상 죽여버려"라는 말로 한 국회의원의 막말 파문을 패러디했다. 또한 "날로 먹는 회=국회" "막회가 막장 국회의 줄임말 아니냐"라고 국회를 비판하면서 "국회가 막장드라마와 다를 게 없다. 드라마는 툭하면 기억상실증 걸린다. 국회는 툭하면 기억 안 난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그동안 개그콘서트가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조롱 섞인 개그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 왔던 만큼, 소위 '강자'로 꼽히는 정치인을 개그 소재로 삼은 데 시청자들은 호평을 내놓고 있다.
게시판과 SNS를 통해 시청자들은 "이상훈 돌직구 풍자 통쾌하다" "TV 시청하다가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앞으로도 속 시원해지는 풍자 많이 부탁한다" "가뭄의 비처럼 내리는 풍자개그. 오랫동안 국민을 위해 개그 해주세요" "오랜만에 속 시원하네. 개그는 역시 풍자개그" 등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통찰에 바탕을 둔 풍자보다는 조롱 섞인 지적에 머물고 있는 코너의 한계를 지적하며 자칫 '정치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개그콘서트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상훈이 하는 코너에서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것 같은데 투표일이 얼마 안 남았다"라며 이러한 흐름을 비판하는 글들이 눈에 띈다.
SNS에서도 "저도 재미있게 보기는 하지만, 언제든 쉽게 정치혐오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늘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희에게 필요하고 노력해야 할 것은 정치의 바른 길이지 정치혐오가 돼 버리면 안 됩니다"와 같은 의견이 눈길을 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는 5일 "선거 국면에서는 세밀하게 정치풍자를 할 경우 특정 정당을 편든다는 논란이 일어날 수 있으니, 무난하게 정치권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식으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렇지 않아도 정치에 대한 혐오·냉소 탓에 젊은층의 투표율이 낮은 현실에서, 이런 식의 정치풍자가 제작진의 뜻과 달리 시청자들의 정치혐오를 부추겨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제대로 된 정치풍자는 정치에 대한 통찰이 밑바탕에 깔려야 하니 공부 등 큰 노력이 필요한 분야"라며 "날카로운 맛 없이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는 식의 조롱 섞인 풍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다, 민주주의의 성숙에 역행하는 마녀사냥이나 혐오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풍자"라고 강조했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