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NBA 공식 페이스북)
요즘 미국프로농구(NBA) 무대를 휘젓고 있는 젊은 스타들에게는 마이클 조던과 같은 존재였던 사나이. '제2의 마이클 조던'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NBA에 데뷔했고 샤킬 오닐과 1인자 경쟁을 펼치기도 했으며 5개의 우승 반지를 차지하는 등 팬도 안티도 많았던 슈퍼스타.
20년동안 NBA의 '아이콘'이었던 코비 브라이언트(38)를 코트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48분 밖에 남지 않았다.
브라이언트는 한국시간으로 14일 오전 11시30분 미국 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리는 2015-2016 NBA 정규리그 유타 재즈와의 최종전을 끝으로 코트를 떠난다. 1996년 데뷔한 브라이언트가 NBA에 남긴 발자취를 정리했다.
◇1996-1997시즌(7.6점, 1.9리바운드) - 고졸 신인의 등장
코비 브라이언트가 '가비지 타임의 왕(the king of garbage time)'으로 불리던 시절이다. 샤킬 오닐, 에디 존스, 닉반 엑셀 등 뛰어난 선수들 틈에서 고졸 신인 브라이언트에게 주어진 기회는 많지 않았다.
코비는 유타 재즈와의 서부컨퍼런스 플레이오프 2라운드 마지막 5차전에서 유명한 에어볼 난사로 체면을 구겼다. 그러나 반 엑셀과 브라이언트의 막판 활약이 없었다면 연장전에 갈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1997-1998시즌(15.4점, 3.1리바운드) - 최연소 올스타 주전
코비는 샤킬 오닐, 에디 존스, 닉 반 엑셀과 함께 올스타전 무대에 나섰다. 키 식스맨으로 자리잡은 브라이언트는 뜨거운 인기를 등에 업고 팬 투표를 통해 당당히 서부컨퍼런스 올스타의 주전 가드가 됐다.
코비의 시즌 최다득점은 33점. 시카고 불스 원정에서 기록했다. 매치업 상대는 놀랍게도 마이클 조던이었다. 경기 도중 조던에게 포스트업 스텝을 배워 곧바로 조던을 상대로 활용한 장면은 유명하다. 이때 중계 캐스터는 "NBA의 미래(the future of the nba)"라고 외쳤다.
◇1998-1999시즌(19.9점, 5.3리바운드) - 풀타임 주전
풀타임 주전으로 발돋움한 코비는 개막 후 5경기 연속 10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았다. 당시 ESPN 전문가들은 코비의 리바운드 능력을 분석한 뒤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결론내렸다.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이다.
브라이언트는 데뷔 후 처음으로 ALL-NBA 팀에 뽑혔다. 존 스탁턴, 케빈 가넷, 하킴 올라주원, 안토니오 맥다이스와 함께 써드(third) 팀에 이름을 올렸다.
◇1999-2000시즌(22.5점, 6.3리바운드) - 필 잭슨과의 만남, 첫 우승
필 잭슨 감독이 부임한 LA 레이커스는 67승15패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고 플레이오프에서 포틀랜드, 인디애나 등 강호들을 따돌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코비는 평균 29.7점, 13.6리바운드를 올린 MVP 샤킬 오닐과 함께 강력한 원투펀치를 구성했다.
브라이언트는 파이널 4차전에서 후반에만 22점을 몰아넣어 오닐의 퇴장 공백을 메우고 팀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ALL-NBA 세컨드 팀에 뽑혔고 데뷔 후 처음으로 수비5걸(All-defensive first team)에 포함됐다('더 글러브' 게리 페이튼과 함께 가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2000-2001시즌(28.5점, 5.0어시스트) - 원투펀치의 시작
새크라멘토와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 샤킬 오닐이 1,2차전에서 44, 43점을 퍼붓자 코비는 3,4차전에서 36, 48점을 몰아넣었다. 당대 정상급 슈터 글렌 라이스가 떠난 빈 자리를 브라이언트가 완벽하게 메웠다. 샤크와 코비는 NBA를 대표하는 원투펀치가 됐다.
LA 레이커스는 NBA 파이널에서 앨런 아이버슨이 고군분투한 필라델피아를 꺾고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2001-2002시즌(25.2점, 5.5어시스트) - 대망의 3연패
브라이언트는 23세의 나이로 3개의 우승반지를 거머쥐었다. 역대 최연소 기록. 코비는 샌안토니오와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특히 4쿼터에 맹활약을 펼쳤고 이때부터 그의 클러치 능력이 주목받았다. 새크라멘토와의 서부컨퍼런스 7차전 혈투는 정말 치열했다.
'동 티맥 서 코비'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브라이언트는 트레이시 맥그래디와 함께 나란히 ALL-NBA 퍼스트팀에 이름을 올렸다. 두 선수 모두에게 첫 번째 영예였다.
◇2002-2003시즌(30.0점, 6.9리바운드) - 득점력 대폭발
브라이언트는 2월 한달동안 평균 40.6점을 올렸다. 무려 9경기 연속 40점 이상을 기록했다. 1월 시애틀전에서는 3점슛 12개를 넣어 한 경기 최다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하늘 아래 2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며 샤크와 코비의 공존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LA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에 패해 4연패 도전에 실패했다. 어깨가 좋지 않았던 브라이언트는 사실상 탈락이 결정된 4쿼터 막판 벤치에서 수건을 뒤집어쓰고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듯이 괴로워했다.
◇2003-2004시즌(24.0점, 5.5리바운드) - 성폭행 혐의와 '전당포'
코비는 시즌을 앞두고 성폭행 혐의로 파문을 일으켰다. 무혐의 결론이 났지만 그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나빠졌다. 칼 말론과 게리 페이튼을 영입한 LA 레이커스는 훗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4인방이라고 해서 '전당포'라는 애칭을 얻었다.
LA 레이커스는 결승에서 디트로이트에 5경기 만에 무릎을 꿇었다. 브라이언트는 테이션 프린스의 강력한 수비에 막혀 평균 22.6점, 35.1%의 야투성공률을 올리는 데 그쳤다. 시즌 후 '전당포'는 해체됐다. 필 잭슨과 샤킬 오닐도 팀을 떠났다.
◇2004-2005시즌(27.6점, 6.0어시스트) - 홀로서기의 시작
코비는 옆동네 LA 클리퍼스의 FA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레이커스에 남았다. 필 잭슨의 자서전에 "코비는 지도하기 어려운 선수"라는 내용이 담기면서 그의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
브라이언트는 데뷔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 후 "로터리 지명권 추첨이 무엇인가?"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2005-2006시즌(35.4점, 5.3리바운드) - 전설의 81득점
필 잭슨이 돌아왔다. 한때 잭슨 감독의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싫다던 코비는 결국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았다.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어쨌든 플레이오프 무대에 복귀했다.
코비는 2005년 12월 댈러스전에서 3쿼터까지 62점을 넣었다. 댈러스의 총 득점은 61점이었다. 브라이언트의 놀라운 득점 행진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6년 1월22일 토론토를 상대로 무려 81점을 퍼부었다. 윌트 채임벌린의 100점에 이은 역대 한경기 최다득점 2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2006-2007시즌(31.6점, 5.7리바운드) - '24번'과 50득점
코비는 등번호를 8번에서 24번으로 바꿨다. NBA 데뷔 때부터 24번을 달고 싶어했다고. 폭발적인 득점 행진은 계속 됐다. 현역 시절 마이클 조던도 하지 못했던 4경기 연속 50득점 행진을 달렸다. 윌트 채임벌린에 이어 두 번째로 달성한 기록이다.
홀로서기는 여전히 가시밭길이었다.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섰지만 2년 연속 1라운드에서 피닉스 선즈에 무릎을 꿇었다.
◇2007-2008시즌(28.3점, 6.3리바운드) - MVP
파우 가솔이 코비의 새로운 파트너로 자리를 잡으면서 LA 레이커스는 승승장구했다. 57승25패를 기록해 서부컨퍼런스 1위를 차지했다. 브라이언트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다. 당시 논란이 적잖았다. 뉴올리언스의 크리스 폴이 MVP를 받았어야 했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브라이언트는 오닐과 결별한 뒤 처음으로 NBA 파이널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케빈 가넷, 폴 피어스, 레이 앨런이 의기투합한 보스턴 셀틱스에 2승4패로 졌다.
◇2008-2009시즌(26.8점, 5.2리바운드) - 챔피언
코비는 옛 동료 샤킬 오닐과 함께 나란히 올스타전 공동 MVP로 선정됐다. 2002년, 2007년에 이어 세 번째 수상. LA 레이커스는 65승17패를 올리며 날아올랐다. MVP는 코비가 아닌 르브론 제임스가 차지했다.
코비는 샤크 없이 첫 우승을 차지했다. NBA 파이널에서 올랜도를 4승1패로 누르고 자신의 4번째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다. 지난 세 차례 우승 당시 파이널 MVP는 늘 오닐의 몫이었다.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경력에 드디어 파이널 MVP 수상을 추가했다.
◇2009-2010시즌(27.0점, 5.4리바운드) - 다시 만난 라이벌
집중력과 근성이 정점을 찍은 시즌이다. 코비는 오른손이 불편하면 왼손으로라도 슛을 던졌다. 버저비터를 포함해 게임위닝 슛을 무려 6차례나 성공시켰다.
NBA 파이널에서는 보스턴을 다시 만났다. 7차전 접전 끝에 이번에는 레이커스가 웃었다. 코비는 7경기 평균 28.6점, 8.0리바운드를 기록해 2년 연속 파이널 MVP를 차지했다. 코비는 우승 반지 5개를 모았다.
◇2010-2011시즌(25.3점, 5.1리바운드) - 3연패 도전 그러나
LA 레이커스는 여전히 강했다. 5개의 우승반지를 수확한 브라이언트가 과연 마이클 조던의 6회 우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 시즌이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최전성기를 누리던 더크 노비츠키의 댈러스 매버릭스를 만나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코비는 올스타전에서 37점 14리바운드를 얻어 개인 통산 4번째 MVP를 차지했다. 브라이언트는 밥 페티트와 더불어 올스타전 최다 MVP 수상자로 역사에 남았다.
◇2011-2012시즌(27.9점, 5.4리바운드) - 선수 랭킹 7위
필 잭슨이 떠났다. 브라이언트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샀다. ESPN은 코비를 선수 랭킹 7위에 올려놓았다. 코비는 덴버전에서 48점을 퍼부은 뒤 ESPN 기자에게 "리그 7등 선수 치고는 나쁘지 않았지?"라고 비꼬며 말했다. 코비의 승부욕을 볼 수 있는 유명한 에피소드다.
◇2012-2013시즌(27.3점, 6.0어시스트) - 코비 대 슈퍼맨 : 비극의 시작
드와이트 하워드와 스티브 내쉬가 가세하면서 LA 레이커스는 다시 우승후보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마이크 브라운 감독이 경질되고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원했던 하워드, 슈퍼스타 군단은 쉽게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LA 레이커스는 서부컨퍼런스 플레이오프 진출 마지노선인 8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 처지였다. "무조건 플레이오프에 나가갔다"고 공언한 브라이언트는 막판 7경기에서 평균 45.5분을 뛰었다. 이 기간 팀은 6승1패를 거뒀고 8번시드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때 무리한 코비는 아킬레스건을 다쳐 정작 플레이오프에서는 뛰지 못했다.
◇2013-2014시즌(6경기 13.8점) - 부상의 악몽
아킬레스건 부상에서 회복돼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무릎이 말썽이었다. 결국 브라이언트는 정규리그 6경기만을 뛰고 시즌을 접어야 했다. 레이커스는 27승55패에 그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4-2015시즌(35경기 22.3점) - 통산 득점, 마이클 조던을 넘다
2014년 12월14일 코비는 마이클 조던을 제치고 통산 득점 부문 3위로 올라섰다. 코비보다 정규리그 득점이 많은 선수는 카림 압둘자바, 칼 말론 밖에 없다.
부상의 악몽은 계속 됐다. 아킬레스건, 무릎은 여전히 말썽이었다. 덩크를 하다가 어깨를 다치기도 했다. 결국 브라이언트는 35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5-2016시즌(65경기 16.9점) - 굿바이 코비 브라이언트
코비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코비의 마지막 원정 경기 때마다 그와 작별을 고하는 특별한 행사가 마련됐다. 코비는 레이커스에서만 20시즌을 뛰었다. 한 팀에서 그보다 오래 뛴 선수는 없다.
수많은 동료들 특히 젊은 슈퍼스타들은 코비를 "우리 시대의 마이클 조던"이라며 치켜세웠다. 케빈 듀란트, 크리스 폴 등 수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운동화에 코비의 사인을 받았다. 마이클 조던은 은퇴하는 코비를 위해 자신의 농구화 풀 세트를 선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코비의 경기력은 데뷔 후 최악의 수준이었지만 팬들은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이제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48분 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