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호야, 8회가 좋지?' 미네소타 박병호(오른쪽)는 연일 메이저리그에서 8회 승부처 때 홈런과 장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국제대회에서 '8회의 사나이'로 불린 이승엽의 향기를 진하게 풍기고 있다. 왼쪽 사진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일본과 4강전에서 극적인 결승 홈런을 날리고 환호하는 이승엽의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미네소타)
'KBO산 거포' 박병호(30 · 미네소타)의 대포가 또 터졌다. 메이저리그(MLB) 데뷔 첫 연이틀 홈런포를 가동했다. 벌써 시즌 4호째다.
박병호는 20일(한국 시각) 미국 타깃 필드에서 열린 밀워키와 홈 경기에 6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8회 1점 홈런을 터뜨렸다. 2-5로 뒤진 8회 나온 추격의 한방이었다.
1사에서 박병호는 상대 우완 불펜 타일러 손버그의 초구 시속 126km 커브가 몰리자 주저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왼쪽으로 날아간 큼직한 타구는 구장 2층까지 가는 비거리 126m 홈런으로 연결됐다.
박병호의 한방은 추격의 신호탄이 됐다. 미네소타는 이후 대타 에디 로사리오의 중월 2점포로 경기 후반 동점을 만들었다. 다만 9회 수비에서 뼈아픈 1점을 내주며 5-6으로 져 개막 9연패 뒤 연승을 4경기에서 마감했다.
▲'8회의 박뱅' 9연패 끊은 2루타-연승 이은 쐐기포하지만 박병호의 홈런은 값졌다. 패색이 짙던 경기 후반 단숨에 흐름을 바꾼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병호의 홈런 뒤 미네소타는 대반격의 분위기를 탔다.
에두아르도 에스코바의 안타가 나와 기대를 고조시켰고, 대타 에디 로사리오가 극적인 2점 홈런을 날렸다. 5-5 동점으로 승부를 원점을 돌렸다. 박병호의 한방이 가져온 효과였다. 비록 지긴 했지만 박병호의 존재감을 또 한번 확인한 장면이었다.
승부처 박병호의 활약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첫 홈런부터 값졌다. 지난 9일 캔자스시티 원정에서 박병호는 데뷔 첫 홈런을 날렸다. 2-2로 맞선 8회 승부의 추를 가져온 한방이었다. 다만 역시 팀이 지면서 아쉽게 결승타가 되지 못했다.
미네소타 현지 언론은 박병호가 메이저리그 첫 시즌 잇딴 삼진으로 고전하는 데 대해 지적하기도했지만 최근 연이은 장타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고 호평을 내놓고 있다.(자료사진=미네소타 홈페이지 캡처)
팀의 첫 승을 가져온 것도 박병호였다. 지난 16일 박병호는 LA 에인절스와 홈 경기에서 4-4로 맞선 8회 1사 1루에서 1타점 2루타를 뽑아냈다. 5-4 승리를 이끈 결승타이자 팀의 9연패를 끊어낸 천금의 한방이었다.
팀의 연승을 확인한 것도 8회 박병호의 장타였다. 17일 역시 에인절스와 홈 경기에서 박병호는 8회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4-4로 맞선 가운데 터진 오스왈드 아르시아의 홈런 뒤 곧바로 대형 홈런을 날리며 6-4 리드를 안겼다. 특히 10년차 베테랑 불펜 조 스미스에게 생애 첫 백투백 홈런의 쓴맛을 선사했다.
19일 터진 시즌 3호 홈런도 비록 8회는 아니었으나 승부처에서 나왔다. 밀워키와 홈 경기에서 박병호는 3-3으로 맞선 4회말 선두 타자로 나와 통렬한 우월 솔로 아치를 그렸다. 이후 미네소타가 7-4로 앞선 7회 강우콜드게임이 선언돼 박병호의 홈런이 결승타가 됐다.
▲'약속의 8회' 이승엽에서 박병호로?이런 박병호의 승부처 활약은 '국민타자' 이승엽(40 · 삼성)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숱한 국제대회에서 펼친 이승엽의 8회 승부처 존재감과 흡사하다.
이승엽은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국제대회에서 유독 8회 엄청난 활약을 펼쳐 팀 승리를 이끌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일본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괴물'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터뜨린 8회 결승 2루타가 시발점이었다.
이후 이승엽은 2006년 WBC 한일전에서 8회 짜릿한 결승 2점 홈런을 쏘아올렸다. 굳게 다문 입술로 그라운드를 돌며 일본 야구의 심장 도쿄돔을 가득 메운 일본 팬들을 고요하게 만든 한방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잊지 못할 한방을 날렸다. 전승 우승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친 '호시노 재팬'과 운명의 4강전에서 이승엽은 2-2로 맞선 8회 일본 최고 마무리던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통렬한 우월 2점 홈런으로 결승타를 장식했다. 이전까지 타율 1할대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던 이승엽은 대표팀 후배들에게 병역 혜택을 안긴 뒤 눈물을 흘렸다.
'힘들었어요' 이승엽(오른쪽)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과 4강전에서 8회 결승 2점 홈런으로 승리를 이끈 뒤 김경문 당시 대표팀 감독과 포옹하는 모습.(자료사진)
이승엽이 '8회의 사나이' 별명을 얻은 것은 당연했다. 이후 KBO 리그에서도 8회 숱하게 한방을 날리며 명성을 확인했다. 2014년 5월29일 LG전 역전 3점포, 그해 8월8일 롯데전 동점 2점포 등 셀 수 없을 정도.
박병호는 KBO 리그 시절 최고의 거포로 이름을 날렸지만 '클러치 히터'의 면모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 게 사실이다. 2013년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0-3으로 뒤진 9회말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이 대표적이지만 팀이 연장 끝에 지면서 강렬함이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야구 본고장 미국에서 박병호는 클러치 능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팀의 연패를 끊은 소중한 2루타와 연승을 늘린 홈런포들이다. 나머지 홈런 2방도 비록 승리로 이어지진 않았으되 결정적인 순간에 나온 한방이었다.
특히 8회 공교롭게도 강렬한 한방이 터지면서 '8회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이승엽으로부터 물려받을 태세다. 한국에서부터 개인 성적보다 팀 승리를 우선으로 했던 박병호. 승부처 존재감이 강한 타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