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외압논란이 누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긴급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이제 개최까지 6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부산시와의 갈등으로 위기에 빠진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에 정녕 해법은 없는 것일까.
부산영화제의 미래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이다. 영화인들이 영화제 불참을 최종 결정하자 최근 침묵을 고수하던 부산시는 전격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과 달리 양측의 갈등 해소는 좀처럼 이뤄지기 힘든 분위기다.
이대로라면 '대종상 영화제'처럼 영화제가 정상 개최된다해도 실질적 파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 배수진을 친 영화인들은 영화제 정상화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지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 '동상이몽' 부산시…좁혀지지 않는 평행선비대위에 몸 담고 있는 한 제작자에 따르면 이번 부산시가 연 기자회견에 대해 영화계 전반의 분위기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부산시가 전혀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짚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 제작자는 "부산시에서는 마치 우리가 보이콧을 해서 문제를 촉발시킨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건 선후관계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부산시가 먼저 영화제에 개입을 했고, 우리는 자율성과 독립성이 훼손된 영화제에는 참석을 해도 그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각 단체에서 투표를 해서 의견을 모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영화인들이 원하는 '정상화'란 지난 2014년 영화 '다이빙벨'로 인해 한 차례 훼손된 자율성과 독립성이 정관 개정을 통해 보장되는 것을 뜻한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해도, 다음 조직위원장 선출 문제는 또 다른 걸림돌이다.
그는 "항상 말로는 영화인들의 입장을 들어주고, 요구를 들어준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뿐이다. 부산시는 영화인들이 이야기하는 '정상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두 가지다. 정관 개정을 통한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그리고 새로운 조직위원장 선출이 총회에서 이뤄질 것. 특히 조직위원장의 경우, 서 시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부산시 쪽에서는 계속 서 시장이 지정한 사람이 조직위원장 자리에 앉는 안을 밀고 있으니 당연히 합의가 어렵다"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영화인들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해명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꾸준히 서병수 부산시장과 소통을 해왔다.
이 제작자는 "우리가 보이콧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논의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서 시장과 직접 이야기까지 했는데 대화의 테이블이 왜 없었겠나"며 "그렇게까지 해도 전혀 부산시에서 양보가 없으니 최후의 배수진을 친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부산시에게서 어떤 노력의 증거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일갈했다.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막바지에 이른 골든타임…부산시 정상화 의지 없어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이 같은 부산시의 '불통'이 당연하다고 봤다. 부산시가 지원금을 받는 영화제에 대해 스스로 '갑'이라고 생각하고, 경제 논리만을 앞세운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영화계 역시 더욱 '강성'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
오 평론가는 "부산시는 돈 받고 하는 사람들이 받는 만큼 해야지 왜 이러느냐는 생각일 것이다. 부산시가 영화계 상황을 알지 못하고 지나치게 버텼기 때문에 영화계를 '강성'으로 만들었고, 지금으로는 정상화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고 예측했다.
그는 영화계에서 일찍 보이콧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문제 발생 초기였다면 조정 여지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 평론가는 "보이콧 선언까지 나온 마당에 지금은 양쪽 다 퇴로가 없다. 초기에 나왔다면 조정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골든타임'의 막바지에 이른 상황이다. 부산시가 영화제와 관련해서 영화인들이 요구하는 핵심 사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타협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0년 동안 애정을 갖고 영화제를 지켜 온 영화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만약 부산영화제의 의미와 가치만 훼손되지 않았다면 영화인들은 규모 축소에는 개의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제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 다들 솔직한 생각이다. 이건 태도의 문제다. 만약 가치는 훼손되지 않고, 규모만 축소됐으면 영화계는 전폭적으로 도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치적 문제로 곪은 상태이니 해결이 되지 않으면 개최하더라도 의미가 없다는 거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부산시에 해결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부산영화제와 시기가 겹치는 한류 축제 '원아시아페스티벌'은 그 방증이다. 오 평론가는 이 상황을 두고 '칸 영화제가 열리는데 거기에서 힙합이나 록 페스티벌이 열리는 격'이라고 평했다.
그는 "영화제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니 그런 것을 가져다 붙인다. 평소에 그렇게 해도 이상한데 지금 이런 시점에 그러는 건 종전이나 휴전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 아닌가"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