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뱅크 부자. 사진=CNN 화면 캡처
1991년, 복싱 WBC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 유뱅크 시니어는 무난히 타이틀을 방어해냈다. 하지만 상대 선수는 경기 직후 혼수상태에 빠졌고, 당시 부상의 여파로 여전히 거동이 불편하다.
25년 후, 아들 유뱅크 주니어는 영국 미들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상대 선수는 경기 뒤 뇌출혈을 일으켰다. 1주일 후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지만 은퇴를 선언했다. CNN은 인터뷰를 통해 가혹한 운명에 처한 유뱅크 부자의 속내를 들어봤다.
▷ "그 어떤 선수도 상대가 병원에 실려가는 장면 기대하지 않아"지난 3월 27일 영국 런던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복싱 영국 미들급 타이틀전.
도전자 크리스 유뱅크 주니어(27)는 닉 블랙웰(26)을 10라운드 레프리 스톱 TKO로 물리치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날 일방적으로 밀린 블랙웰은 왼쪽 눈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급기야 경기 직후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고, 혼수상태로 있다가 7일 만에 깨어났다.
블랙웰의 형은 며칠 전 "동생의 상태가 점점 호전되고 있지만 더 이상 링에 서지 않을 것"이라며 동생의 은퇴 소식을 알렸다.
유뱅크 주니어는 최근 CNN과 인터뷰에서 "(블랙웰을 꺾은 후) 반짝반짝 빛나는 챔피언 벨트를 하늘 위로 들어올리고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그런 후 몸을 돌렸는데 블랙웰이 얼굴에 산소마스크를 한 채 누워 있고, 의료진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정말 충격이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어떤 선수도 시합 후 상대 선수가 병원에 실려가는 장면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 "상대 혼수상태 빠진 후 킬러본능 잃어"…"복싱은 상대 다치게 하는 게 목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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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가혹한 운명이다.
유뱅크 주니어의 아버지인 유뱅크 시니어(49)도 경기 후 상대 선수가 혼수 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
1991년 WBC 세계 슈퍼미들급 타이틀전. 유뱅크 시니어는 마이클 왓슨에 승리했지만, 이날 패한 왓슨은 40일간 혼수상태로 누워 있었다. 당시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던 왓슨은 현재 한쪽 눈이 실명됐고, 24시간 내내 보호자의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다.
유뱅크 시니어는 "왓슨과 시합 후 킬러본능을 잃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25년 전 아버지의 슬픈 경험을 도돌이표처럼 되풀이 한 유뱅크 주니어는 "대를 이어 이런 일을 겪다니 한층 가혹하게 느껴진다"며 "나에게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기량을 더 발전시키고 될 수 있는 한 최고가 되겠다"고 했다.
이날 세컨드 자격으로 링 사이드에서 아들의 경기를 지켜 본 유뱅크 시니어는 블랙웰이 심각한 상태임을 직감, 아들에게 "머리 대신 몸통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SNS에는 유뱅크 시니어의 지시 덕분에 블랙웰이 목숨을 구했다는 글이 이어졌다.
유뱅크 시니어는 "왓슨과의 시합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지만, 그날의 경험 덕분에 공격을 멈춰야 할 때를 아는 통찰력을 갖게 됐다"며 "그래서 전속력으로 달리는 아들에게 속도를 조금 늦추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유뱅크 부자가 생각하는 복싱은 무엇일까.
"무사도 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스포츠죠. 복서는 모두 예술가에요." (유뱅크 시니어)
"상대를 다치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독창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서 점수를 쌓는 스포츠죠."(유뱅크 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