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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하객 동원해 결혼식…수천만원 챙긴 유부남의 사기극

사회 일반

    가짜 하객 동원해 결혼식…수천만원 챙긴 유부남의 사기극

    • 2016-05-27 07:36
    역할대행 부모 고용해 상견례까지…예단비 등 4천만원 가로채
    검찰 자녀 2명 있는 30대 유부남 사기 혐의 구속 기소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180㎝에 가까운 큰 키에 콧날도 오뚝했다.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혼기가 찬 직장인 A(34·여)씨는 2년 전 서울 목동의 한 카페에서 그 남자를 처음 만났다. 한 살 많았다. 고등학교 동창이 다리를 놓아줬다.

    남자는 파일럿이 꿈이어서 항공 관련 대학에 들어갔다고 했다. 이후 파일럿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국내 한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일했고, 지금은 회사를 나와 철도 부품 특허로 벤처기업을 운영 중이라고 했다.

    정부에서 10억원을 지원받아 서울 신사동에 사무실이 있고 별도의 생산 공장도 갖고 있다는 남자였다.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다가 마을 이장을 해보고 싶어 시골로 내려간 아버지에, 영국에서 결혼한 여동생까지 집안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둘은 첫 만남 후 휴대전화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어느새 연인이 됐다.

    1년 3개월가량의 연애 기간 말다툼 한 번 없었다. 모든 게 잘 맞았다. 아니 남자친구가 대부분을 A씨에게 맞춰줬다. 이 남자면 결혼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가자 남자가 A씨의 부모 집으로 인사를 갔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견례 자리가 마련됐다.

    남자는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셔서 못 오시니 어머니끼리만 뵙자"고 했다.

    상견례 후 8개월 뒤. 결혼을 한 두 달 앞둔 지난해 여름이었다. 남자는 예단비로 1천만원을, 아파트 전세자금으로 3천만원을 A씨에게 부탁했다.

    남자는 "회사에서 급히 막을 돈이 필요해 현금이 없다"고 사정했다. 나머지 결혼비용도 사실상 A씨가 모두 부담했다.

    A씨에게 준 4천만원 외 결혼식 뷔페 음식비용 500만원, 신혼여행 비용 100만원, 가전제품 구입비 등 총 2천900여만원이 더 들었다.

    둘은 지난해 9월 수도권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남자는 "어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고모가 아버지와 함께 혼주 석에 앉을 거라고 했다. 생애 가장 좋은 날 A씨는 시어머니가 크게 안 다치셨기만을 기도했다.

    결혼 후 두 달이 흐른 지난해 11월. A씨는 집에서 잠깐 인터넷 검색을 하기 위해 남편의 스마트폰을 열었다가 의심스러운 전화번호 하나를 발견했다.

    자신이 모르는 남성 이름으로 저장된 번호였다. 신기하게도 4자리 뒷번호가 남편 번호와 같았다.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신호음 끝에 들린 것은 낯선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였다.

    "누구세요"라는 A씨의 떨리는 물음에 대답 대신 "우리 남편 휴대폰으로 전화한 당신은 누구냐"는 성난 질문이 되돌아왔다.

    "저 000씨 와이프입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집사람인데…"

    그날 A씨는 남편의 진짜 부인이라는 낯선 여자에게서 심한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 황당했다.

    남편에게 따졌더니 당황해하며 더 황당한 실토를 했다.

    "어떤 여자가 내 아이를 낳았는데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남자가 1년 넘게 벌인 장편 사기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알고 보니 마지막 실토도 거짓이었다. 남자는 7살과 9살짜리 두 자녀를 둔 유부남이었다.

    2007년 결혼한 아내와는 3년 만에 별거 생활을 했지만 4자리 뒷번호가 같은 휴대전화로 자주 연락하고 지냈다. 그 전화번호는 아들 이름으로 저장한 아내 번호였다.

    A씨는 역할대행 아르바이트를 동원해 가짜 부모를 내세워 상견례를 했고, 사전에 대역과 전화통화를 하며 입을 맞췄다.

    결혼식장에 온 아버지와 고모는 물론 친구 5∼6명도 일당을 받고 온 가짜였다. 그의 진짜 친구 4명은 "눈감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결혼식에 참석한 이들이었다.

    남자는 항공 관련 대학교가 아닌 비슷한 성격의 전문대학을 졸업했다. 벤처기업이 아닌 직원 2명인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그가 구한 신혼집은 2억5천만원짜리 전세가 아닌 보증금 3천만원에 매달 90만원을 내는 월세였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보여준 전세계약서도 위조한 거였다.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무너진 하늘을 뒤로하고 지난해 말 인천의 한 경찰서에 남편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A씨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인천지검 형사4부(이정훈 부장검사)는 추가 조사를 한 뒤 사기 혐의로 회사원 B(35)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27일 "피의자는 사기죄로 피해자에게 고소당한 뒤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하겠다는 뉘앙스의 '조만간 선물 하나 줄게. 기대해. 너도 조사받아야지'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위협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기결혼을 반성하기는커녕 적반하장 식으로 파렴치한 행태를 보여 구속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사기결혼 후 대인기피증과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 충동까지 느끼는 등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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