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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한방 먹인 북풍(北風) 속 여풍(女風)…'미국과 맞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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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한방 먹인 북풍(北風) 속 여풍(女風)…'미국과 맞짱'

    [이사람의 키워드] 北 최선희 외무성 부국장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미국이 어떤 핵전쟁을 강요해도 당당히 상대해줄 수 있게 됐다."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 성공으로 전세계가 혀를 찼던 23일,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국장은 자신을 향한 우려스런 표정에 오히려 어퍼컷을 날렸다.

    미사일 발사 전날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6차 동북아협력대화(NEACD)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그다.

    미니 6자회담으로 불린 테이블이었고, 6자회담 북한측 차석대표였던 최선희 부국장이었기에 사실상 북한 대변인인 셈이었다.

    미사일 발사 관련, 북한 고위급 관계자로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발언한 것인데 그 수위는 높았다.

    "미국을 당당히 상대할 수 있게 됐다"고 언급한 물론, 기자들을 향해 "우리의 (핵탄두) 운반수단이 명백히 성공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대단히 기쁘다"고 밝히면서 "조선의 비핵화를 논의하는 회담은 지금으로서는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변의 심각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옅은 미소도 보였다.

    대화 테이블에서는 "6자회담은 죽었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부국장급 외교관에 어울리지 않는 단정적 표현도 가능한 것은 그가 사실상의 외무성 실세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올해 52세인 최선희 부국장은 북한 내각 총리를 지낸 최영림의 수양딸이다.

    최영림은 김일성 주석 책임서기, 정무원 부총리, 중앙검찰소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과 평양시당 책임비서 등을 두루 지낸 뒤 북한 권력서열 3위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

    아이를 낳지 못한 최영림은 다른 아들과 함께 최선희를 딸로 입양했는데, 어려서는 김정일의 배려로 오스트리아와 중국 등에 특별유학했다.

    유창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97년부터 한미북중간 4자회담 전담 통역원으로 얼굴을 알렸고, 2000년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과 2009년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때도 통역을 맡았다.

    2010년엔 외무성 연구원에서 과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부국장으로 발탁 승진되면서 무게감을 높였다.

    권력을 대물림하는 북한에서 최고 실세의 가계를 이어받은 점이 탄탄한 출세가도를 달리게 했고, 거침없는 행보도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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