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안 봐도 넘어갔어' 두산 오재일이 22일 케이티와 홈 경기에서 6회 역전 2점 홈런을 날린 뒤 타구를 응시하고 있다.(잠실=두산 베어스)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두산-케이티의 정규시즌 최종전이 열린 22일 서울 잠실구장. 경기 전 김태형 두산 감독의 표정은 짐짓 긴장감이 엿보이면서도 편안했다.
이날은 두산의 정규리그 우승이 걸린 경기였다. 케이티에 승리하면 두산은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한국시리즈(KS) 직행 티켓을 확보한다. 지난 1995년 OB 시절 이후 무려 21년 만의 우승이다.
사실 두산의 우승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날까지 2위 NC에 11.5경기 차나 앞서 있었다. 남은 8경기에서 1승만 거두면 되는 까닭에 두산의 1위 확정은 시간문제였다.
김 감독은 "감독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우승을 확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KS 대비를 위해 주전들을 쉬게 하고 이용찬, 이원석 등 상무에서 제대한 선수들을 점검해야 하는 일정이다.
올 시즌에 대해 김 감독은 "투수진은 물론 야수들까지 전체 선수들이 정말 잘해줬다"고 공을 돌렸다. 두산은 더스틴 니퍼트-마이클 보우덴-장원준-유희관 등 이른바 '판타스틱4'의 강력한 선발진에 공수까지 탄탄한 실력을 갖춘 우승후보였다.
여기에 두산은 운도 따랐다. 바로 의외의 선수들이 잠재력을 폭발시킨 것. 통산 5시즌 13홈런에 불과했던 김재환은 올해 역대 두산 토종 최다인 36홈런에 119타점의 맹활약을 펼쳤다. 김 감독이 "이렇게까지 잘 해줄 줄 몰랐다"면서 '마음 속의 MVP'로 꼽은 이유다. 여기에 8시즌 통산 30홈런을 날렸던 오재일도 21일까지 25홈런 85타점을 올려줬다.
▲조범현 감독 "두산, 정말 부럽다" 두산의 실력은 상대팀 사령탑도 인정한 부분이다. 조범현 케이티 감독은 "두산과 경기를 하면 정말 부럽다"고 칭찬했다. 올해 두산은 케이티에 12승3패로 앞서 있었다.
구단 운영도 감탄을 자아낸다. 조 감독은 이날 1군에 등록한 이용찬, 이원석을 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군에 보낼 선수에 대한 계획을 세우니 수년 동안 전력에 빈틈이 없다"고 칭찬했다.
'심지어 우리도 있어요' 두산 이용찬(왼쪽)과 이원석이 군 제대한 뒤 1군에 등록한 22일 케이티와 홈 경기를 앞두고 파이팅을 다짐하고 있다.(잠실=노컷뉴스)
실력도 월등한데 운까지 따르니 당할 자가 없다. 조 감독은 "사실 올 시즌에는 경기 외적인 변수도 많았다"고 운을 뗐다. 불법 도박과 외국인 선수 부진 등으로 경쟁팀들이 휘청거려도 두산은 끄덕없었다는 것이다.
조 감독은 KIA 사령탑 시절인 2009년 KS 당시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돕고 있다"는 명언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일단 올해 두산의 정규리그 우승에는 이런 기운이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한 삼성은 도박 스캔들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10월 임창용(현 KIA)과 윤성환, 안지만이 해외 도박 혐의로 KS 명단에서 빠졌고, 정규리그 3위로 KS에 올라온 두산에 우승컵을 내줬다.
그 여파는 올해까지도 이어졌다. 당초 삼성은 두산과 쟁패할 팀으로 꼽혔지만 지난해 임창용에 이어 안지만까지 시즌 중 도박 파문으로 이탈했다. 여기에 삼성은 외국인 농사에 실패해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또 다른 우승후보 NC는 한때 두산을 위협했지만 이태양이 승부 조작 파문에 휩싸이고 이재학도 의혹을 받는 등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역시 행운도 받을 자격이 있어야 한다. 두산은 다른 팀들이 외적인 변수나 혹사 등으로 홍역을 겪는 가운데서도 특유의 팀 워크와 뚝심으로 시즌을 치러나갔다. 이현승의 부진과 정재훈의 이탈로 흔들린 시즌 중반 야수들과 나머지 투수들의 분전으로 위기를 넘겼다. 김 감독은 "윤명준과 김성배 등이 잘 버텨줬고, 야수들이 뭉쳐 고비를 넘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감독의 MVP 김재환-선발 장원준, 대기록 달성 우승 확정이 된 이날 경기는 올 시즌 두산의 축소판이었다. 선발 투수가 책임을 다하자 야수들이 힘을 냈다. 조화를 이룬 팀에는 운까지 저절로 따랐다.
선발 장원준이 6이닝 8탈삼진 1실점 쾌투로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자 0-1로 뒤진 6회 오재일이 역전 2점 홈런을 날리며 승부를 뒤집었다. 이후 두산은 2점을 더 뽑아 승기를 잡았다. 이용찬은 장원준의 뒤를 이어 등판, 2년 만의 복귀전에서 1이닝 무실점 데뷔 첫 홀드를 올렸고, 이원석은 7회 대타로 나와 타점을 추가해 우승에 힘을 보탰다.
'판타스틱4의 완성' 두산 좌완 장원준이 22일 케이티와 홈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이날 장원준은 6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돼 두산은 역대 최초 15승 이상 4명을 배출한 팀이 됐다.(잠실=두산 베어스)
운도 따랐다. 장원준은 2회 1사 1, 2루 득점권에 몰렸다. 그러나 케이티 이해창의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장원준의 글러브에 빨려들어갔고, 더블 아웃으로 위기를 넘겼다. 선실점한 6회 1사 1, 2루에서도 행운의 탈삼진이 나왔다. 케이티 박기혁이 장원준의 몸쪽 바짝 붙는 공을 피하려다 엉겹결에 방망이를 절반 넘게 휘두른 것. 물론 장원준이 호투를 펼쳤지만 의도치 않았던 행운도 분명히 따랐다.
6회 오재일의 홈런 뒤 나온 추가점도 행운이 따랐다. 2사 3루에서 오재원이 3루 쪽 기습번트를 댔고, 케이티 3루수 김연훈이 허둥대며 이를 흘려 3루 주자 김재환이 홈을 밟았다. 김재환은 104득점째로 지난해 김현수(볼티모어)가 세운 역대 한 시즌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8회말 타선이 대폭발한 두산은 결국 9-2 대승으로 우승을 자축했다. 최근 9연승으로 90승 고지(46패1무)에 선착했다. 남은 7경기에서 모두 져도 두산은 승률 6할2푼9리로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한다. 이날 한화를 누른 2위 NC가 남은 14경기를 모두 이겨도 88승53패3무, 6할2푼4리로 두산에 승률에서 뒤진다.
기뻐할 일은 더 있었다. 이날 장원준이 15승째(6패)를 따내면서 두산은 사상 최초로 15승 이상 선발 4명을 보유한 팀이 됐다. 니퍼트(21승), 보우덴(17승), 유희관(15승) 등에 이어 고지를 밟았다.
이제 두산은 남은 7경기에서 지친 심신에 휴식을 주고 새로 합류한 선수들을 시험할 기회를 얻었다. 일찌감치 KS에 대비할 시간을 얻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