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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만나는게 속편해…김영란법 첫날은 대혼란

사회 일반

    "안 만나는게 속편해…김영란법 첫날은 대혼란

    최대 히트작은 '영란세트'…'더치페이' '고가의 눈물'

     

    "김 기자님, 연락하고 오셨죠? 3만3000원입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첫날인 28일 낮.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정세균 국회의장 초청 외신기자클럽간담회에서 기자들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

    모두가 점심값 3만3000원을 내기 위해 지갑에서 신용카드나 현금을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카드결제기 조작에 서툰 간담회 관계자들은 결제 오류로 연신 '취소' 버튼을 눌러댔다.

    주최 측은 "한국기자 15명 중 오찬모임에 온 기자 9명과 외신기자들은 모두 점심값을 지불했고 나머지는 각자 따로 식사를 하고 참석했다"고 밝혔다.

    ◇ 외신기자 "한국, 김영란법으로 선진국 반열 올라"

     

    외신기자들은 한국에서는 처음 보는 '더치페이' 풍속도에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방송 서울특파원 브라이언 패든(Brian Padden)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한국이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인들로부터 선물을 받지 않는 행위는 미국에서 일상적인 일"이라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취재원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에서 김영란법을 직접 취재한 적이 있다는 캐나다인 기자 A씨는 '3만원'은 너무 엄격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캐나다에서도 뇌물을 받으면 처벌받지만 금액을 수치화하지는 않았다"면서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기자와 친구 사이이면 사회상규상 서로 밥을 사줄 수 있다"고 전했다.

    ◇ 줄서는 국회의원과 장관

    국회의원과 장관도 더치페이에서 예외는 아니다.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 소속 의원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은 이날 경기도 용인에서 쌀값 안정 대책 마련을 위한 현장 설명회를 가졌다.

    이후 용인 중앙시장으로 이동해 순대국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는데 장관과 공무원들, 의원과 수행원 등 90여 명이 각자 점심값을 계산하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장관이 현장방문 때 지역 농민들과 식사하는 자리가 많은데 앞으로도 수십명씩 각자 계산해야 한다면 장관 일정 자체를 다시 한번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고급식당, 하루 만에 '급반전'

     

    고급 음식점의 처지는 단 하룻밤만에 역대급 반전을 보였다.

    김영란법 시행 전야인 전날 밤까지만 해도 평소보다 비싼 메뉴를 시킨 손님들로 넘쳐났던 광화문의 한 고급 중식당은 반나절 만에 초상집으로 변했다. 이날 점심 매출이 절반으로 줄며 김영란법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여의도의 한 한정식집도 최근 모든 메뉴를 '3만원 이하'로 낮췄지만 김영란법 시행 첫날 예약과 매출 모두 정확히 반토막이 났다.

    식당 관계자는 "국회와 기업인들이 지갑을 닫아 가게 문도 닫게 생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는 B씨는 향후 두 달간 저녁 약속을 잡지 않기로 했다

    B씨는 "당장 '직접적 직무관련성'과 '간접적 직무관련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아예 사람들을 피하게 된다"면서 "심지어 회사마다 김영란법을 해석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 '영란세트'는 여전히 대박…구내식당도 가세

     

    영란법이 낳은 최대 히트작 '영란세트'가 있는 곳은 이날도 북적거렸다.

    사원증을 맨 여성 3명은 광화문의 한 불고기식당 입구에서 메뉴를 훑어보다가 '김영란세트' 표시를 손가락으로 찍더니 곧장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서 그런지 오늘 저녁 영란세트로 예약한 사람이 평소보다 더 늘었다"면서 "주변 가게는 단가가 비싸 어제보다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

    일터 근처에서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을 찾는 사람들도 부쩍 눈에 띄었다.

    광화문의 한 건물 구내식당에는 손님들이3 한꺼번에 몰리면서 식판까지 동이 나 식판을 회수하는 즉시 닦아 내보내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건물 앞 벤치에서 직장후배를 기다리던 하모(37·여) 씨는 "요새 사람을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나와의 직무관련성부터 따지게 된다"면서 "누가됐든 맘 편히 구내식당에 가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 김영란법 문의전화 폭주…첫 신고

    김영란법 시행 첫날부터 경찰에 모두 5건(오후 9시 기준)의 신고가 접수됐다.

    신연희 서울 강남구청장이 지역 내 경로당 회장 160명을 문화예술프로그램에 초청해 교통편과 식사를 제공했다는 신고가 서면으로 접수됐다. 강원지역의 한 경찰서 수사관은 고소인이 떡 한 상자를 배달해 즉시 돌려보내고 청문감사관실에 서면으로 자진 신고했다.{RELNEWS:right}

    112전화로는 이날 오후 12시4분에 대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줬다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첫 신고를 비롯해 3건의 신고가 들어왔지만 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해 민원인을 안내하는 선에서 종결됐다.

    국민권익위원회에도 이날 오후 1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이날 권익위에는 김영란법 관련 문의전화가 폭주했으나 권익위 관계자들이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려주지 못해 시민들이 답답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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