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농구부의 은희석 감독 (자료사진=한국대학농구연맹)
연세대학교 농구부는 지난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고려대학교와의 정기전에서 71-71 무승부를 거뒀다. 한때 16점차까지 앞서가다 고려대의 막판 추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정기전 특성상 연장전이 없어 승패를 결정할 기회가 없었다.
연세대는 비겼지만 패자가 된 기분이었다. 특히 4학년 포워드 최준용의 마음이 무거웠다. 최준용은 경기 막판 결정적인 실책을 기록하는 등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최준용은 정기전이 끝난 다음 날 동료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만큼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때 은희석 연세대 감독이 다가왔다.
은희석 감독은 "선수들이 너만 바라보는데 네가 무너지면 동료들도 무너진다. 괜찮은 척 연기라도 해라"며 최준용을 다독였다.
최준용은 "연기를 하다 보니까 나도 예전 상태로 돌아갔다. 감독님께 감사하다"며 밝게 웃었다.
은희석 감독의 판단은 정확했고 예리했다. 연세대가 고려대와의 2016 남녀대학농구리그 남대부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정기전 무승부의 여파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연세대는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결승 2차전에서 천기범(23점)과 최준용(20점) 등 4학년 원투펀치의 활약을 앞세워 고려대를 84-72로 누르고 2연승으로 정상에 올랐다.
연세대가 2010년 출범한 대학농구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4년 8월 연세대 지휘봉을 잡은 은희석 감독은 지난 2시즌동안 팀을 결승에 올려놓고도 매번 고려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올해는 달랐다. 고려대 센터 이종현이 발등 피로골절 여파로 경기에 거의 뛰지 못했지만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2경기만에 챔프전을 끝내버렸다.
은희석 감독은 "연세대가 라이벌 고려대에 너무 오랫동안 밀려있었다. 동문으로서 선배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우승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게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기전 무승부로 '멘붕(멘탈붕괴)'에 빠진 선수들과 달리 은희석 감독은 오히려 자신감이 커졌다. 그는 "무승부에 미련이 남지만 고려대가 거의 진 경기를 무승부로 만드는 과정에서 체력을 비롯한 소모가 굉장히 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농구 결승에서는 우리가 더 낫지 않겠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은희석 감독이 이날 2차전에서 작전타임 요청을 가급적 자제한 이유다. 작전타임은 작전 지시가 필요할 때도 요청하지만 선수들을 쉬게 해줘야 할 때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연세대가 작전타임을 부르면 고려대 선수들도 쉴 수 있다. 그래서 자제했다.
은희석 감독은 "체력 싸움에서는 자신있었다. 만약 경기가 잘못 됐다면 내게 책임이 돌아갔겠지만 상대보다 낫다고 자신하고 있었다"며 웃었다. 이처럼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가 연세대의 사상 첫 대학리그 우승을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은희석 감독은 "부임하고나서 선수들의 기량보다는 자세를 더 강조했다. 팀원으로서의 자세, 끈끈함, 배려심, 선후배 사이의 존중 등에 집중했다. 서로 신뢰가 생기면서 팀이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