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V-리그가 출범한 이후 대한항공은 꾸준하게 ‘우승후보’라는 기분 좋은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삼성화재-현대캐피탈의 양강에 막혀 V-리그 우승은 생각처럼 쉽게 경험할 수 없었다. 양강의 위세가 잠시 주춤해진 틈을 타 우승 도전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막내’ OK저축은행의 돌풍을 넘지 못했다. ‘우승후보’ 대한항공에게 허락된 우승은 정규리그까지가 전부였다.
V-리그가 출범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한항공은 ‘우승후보’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남자부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선수 가운데 ‘최대어’로 꼽혔던 곽승석은 예상 밖의 잔류를 선택했다. 그가 밝힌 이유는 단 하나. 대한항공에서 이뤄보지 못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위해 친정팀에 남았다.
새 시즌을 앞두고 대한항공은 국가대표팀을 이끌던 박기원 감독을 영입해 다시 한 번 우승 도전에 나섰다. 곽승석의 잔류, 박기원 감독의 선임에 이어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서도 행운이 따랐다. 전체 1순위로 V-리그 경험을 가진 미차 가스파리니를 데려오며 올 시즌도 당당히 ‘우승후보’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V-리그 출범 후 줄곧 '우승 후보'라는 평가를 들었던 대한항공이지만 정작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결국 국가대표팀을 이끌던 박기원 감독을 선임해 어쩌면 마지막이 될 기회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 대한항공의 변화, 작은 것부터 바꾼다박기원 감독은 ‘우승후보’ 대한항공의 지휘봉을 잡은 뒤 가장 민감한 부분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가장 기본적인 부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어려워 시도조차 못 하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우승후보’가 아닌 ‘우승’을 위해서는 변화는 필수였다.
가장 먼저 상대 서브를 리시브하는 방법부터 무릎을 굽혀 허리 아래에서 받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거의 선 자세에서 머리 위에서 받는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이는 박기원 감독이 과거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당시부터 강조했던 부분이다.
박기원 감독은 한국 배구가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피드 배구’를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를 위한 시발점이 오버 핸드 리시브였다. 소집 훈련 시간이 제한적인 대표팀에서는 기대만큼 효과를 볼 수 없었지만 꾸준한 훈련이 가능한 프로팀에서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대한항공은 올스타전 이후 후반기 들어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진단과 함께 선수들의 체력 강화에도 특별히 신경을 썼다. 이를 위해 체력 훈련을 담당하는 트레이너를 교체했고, 체조 선수 출신의 스트레칭 코치도 새로 영입했다. 감독 교체로 인한 작은 변화는 이미 시작된 대한항공이다.
대한항공은 올 시즌 '우승 후보'가 아닌 진짜 우승을 위해 대대적인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다.(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 선수단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구단과 감독의 노력에 선수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박기원 감독은 “이제는 주입식으로 훈련하지 않는다.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라 자율에 맡기고 있다”면서 “선수들이 알아서 하도록 연습도 많이 시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가장 쉬운 예로 시간차 공격의 작은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500개 이상의 공을 때려봐야 감이 온다는 것이 박기원 감독의 해석이다. “보는 사람은 쉬울 것 같지만 무릎이 아플 정도로 연습해야 아주 조금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선수들이 변화를 두려워한다. 감독은 어떻게 해서든 바꿔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과 달리 새 시즌 개막전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고 코트에 나선 곽승석은 달라진 팀 분위기에 대해 “감독님께서 주문하신 부분이 많지만 무엇이 필요한지 확실하게, 직접 지적해주신다”면서 “팀 분위기도 처음부터 밝게 하자고 하셔서 선수들도 재미있게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