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급 투수는 분명하지만...' FA 좌완 차우찬은 이미 원 소속구단인 삼성에서 4년 100억 원 이상의 최고 대우를 제시하면서 상황에 따라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최고액 선수로 KBO 리그 역사에 남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자료사진=삼성)
롯데 강민호-SK 최정(혹은 KIA 윤석민)-NC 박석민. 최근 3시즌 동안 그해 스토브리그에서 최고액을 찍은 선수들이다.
KBO 리그를 대표할 만한 스타들인 데다 각 포지션별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터였다. 때문에 최고액 선수라는 데 일견 수긍이 가는 면이 있었다. 모두 한번 이상 골든글러브를 차지했고, 나이도 전성기에 접어든 20대 후반, 갓 30대라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몸값이 높았다.
하지만 스토브리그 최고액의 계보는 어쩌면 올 시즌에는 살짝 격이 맞지 않을 가능성도 생겼다. 좌완 차우찬(29)이 이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차우찬은 아직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않았지만 국내에 남는다면 최고액을 예약한 상황이다. 삼성이 5일 LG에서 FA로 풀린 우규민과 4년 65억 원에 계약하면서 차우찬에 제시한 조건을 공개한 까닭이다. 삼성은 "차우찬에게 최형우가 KIA와 맺은 4년 100억 원 이상 카드를 내밀고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차우찬은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 등 해외 무대도 노리고 있다. 그러나 KBO 리그에서 뛴다면 최소 100억 원 이상 몸값이다. 삼성과 함께 LG 등 다른 구단들이 차우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차우찬이 LG와 계약에 합의한 가운데 메이저리그(MLB) 윈터미팅 결과를 기다린다는 말도 들린다.
물론 차우찬도 리그 수준급 선수에 나이로도 전성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경력 면에서 보면 앞선 최고액 선수들에 비해 살짝 밀리는 게 사실이다. KIA 에이스 양현종(28)이 차우찬 이상의 몸값을 받을 만하지만 해외 진출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어쩌면 차우찬이 2016시즌 뒤 스토브리그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적잖은 이유다.
▲8년 만에 깬 60억 최고액, 매년 10억씩 껑충 최근 몇 년 동안 FA 물가는 폭등했다. 2011시즌부터 이상하게 거품이 끼기 시작하더니 2013시즌 대폭발했다.
먼저 강민호가 새 역사를 썼다. 2013시즌 뒤 FA로 풀린 강민호는 롯데와 4년 75억 원에 도장을 찍었다. 2005년 삼성과 계약한 심정수(은퇴)의 4년 60억 원 역대 최고액을 8년 만에 경신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강민호가 '유리천정'을 깨자 대형 계약이 봇물처럼 터졌다. 정근우와 이용규가 한화와 각각 4년 70억, 67억 원에 사인했고, 장원삼도 4년 60억 원 조건으로 삼성에 잔류했다. 60억 원은 더 이상 금단의 영역이 아니었다.
'역대 KBO 최고액의 화려한 면면' 롯데 강민호(왼쪽부터), SK 최정, KIA 윤석민, NC 박석민은 최근 3년 동안 역대 최고 몸값 타이틀을 이어온 선수들이다.(자료사진=이한형 기자, 해당 구단)
2014시즌 뒤에는 80억 원대가 무너졌다. 최정이 4년 86억 원, 윤성환(삼성)이 80억, 장원준(두산)이 84억 원을 찍었다. 물론 2015년 3월 윤석민(KIA)이 4년 90억 원 계약을 맺었지만 MLB로 진출했다가 유턴한 경우로 이른바 해외파 프리미엄이 붙었다. 엄밀히 따져 순수 FA로는 최정이 최고액이라는 게 야구계 정설이었다.
이듬해는 박석민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NC와 4년 최대 96억 원으로 최정, 윤석민을 순식간에 넘어섰다. 33살이던 김태균과 불펜 투수 정우람(이상 한화)이 4년 84억 원을 찍는 등 몸값이 무서운 줄 모르고 올랐다.
이런 가운데 올해 최형우가 드디어 100억 원의 심리적 저지선까지 무너뜨렸다. 최형우는 올해 타격, 타점, 안타 3관왕을 이루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내 일찌감치 예상은 됐다. 물론 진작 100억 원 선수들이 여럿 탄생했다는 말이 돌았지만 어쨌든 이전까지 공식 발표는 그 밑이었다. 차우찬이 내년에도 KBO 리그에서 뛴다면 몸값 100억 원이 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차우찬이 최고액 계보? 민망한 KBO 현실 야구계에서는 미친 FA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차우찬이 그 정도까지 받을 만한 선수냐는 지적과 함께 프로야구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이다.
차우찬은 2006년 데뷔 후 11시즌 통산 70승48패 1세이브 32홀드 평균자책점(ERA) 4.44를 기록했다. 대부분 선발과 불펜을 오갔고, 풀타임 선발은 최근 2년과 2011년 정도였다. 지난해 31경기 13승7패 ERA 4.79 173이닝이 커리어 하이였다.
사실 리그 정상급 투수의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개인 부문 타이틀도 지난해 탈삼진(194개), 2010년 승률(10승2패)뿐이었고, 골든글러브 수상도 없었다. 10년 통산 108승63패 ERA 3.41을 기록하며 MVP와 골든글러브 등을 수집한 국가대표 에이스 김광현(SK)이 4년 85억 원에 계약한 것을 감안하면 거품이 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물론 김광현은 팔꿈치 수술로 내년을 사실상 접기는 했다.)
하지만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이 지배하는 KBO 리그는 현재 투수가 귀하다. 여기에 SK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 잔류를 택한 김광현과 달리 차우찬은 다른 팀에서도 입질이 왔다. 구매자끼리 경쟁이 붙으면 가격은 올라가기 마련. 결국 차우찬은 그 정도 '급'이 아니지만 수급 불균형이 극심한 현 KBO 리그 상황에 따라 높은 가격이 책정된 것이다.
삼성 소속이던 차우찬이 지난 2010년 승률왕에 오른 뒤 수상한 모습(왼쪽)과 지난해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페어플레이상을 받았지만 기초군사훈련 참가로 김평호 당시 코치가 대리 수상한 모습.(자료사진=삼성)
물론 차우찬이 해외로 진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MLB 원터미팅을 통해 미국에서 뛸 수도 있다. 또 양현종이 국내에 남을 경우 역대 최고액을 찍을 가능성이 크다. 친정팀 KIA가 최형우 이상으로 에이스에 대한 예우를 해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차우찬이 국내에 남고, 양현종이 떠난다면? 최고액의 계보는 차우찬이 잇게 된다. 최고액 선수는 해당 리그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갖는다. 차우찬이 뛰어나지 않은 선수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KBO 최고액의 대표 선수라는 데는 의문 부호가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11시즌 뒤 4년 50억 원에 계약한 이택근(넥센)처럼 뒷얘기가 나올 만하다.
리그의 품격과도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냉정히 말해 차우찬은 KBO 간판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는 아닌 것이다. 만약 최고액 계보를 잇는다면 훗날 KBO 리그 역사에는 기량과 장래성보다 우승에 대한 집착과 과열 경쟁이 부른 이상 현상으로 기록될 일이다. 구단에 비해 선수층이 얇은 한국 프로야구의 민낯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만 표면상으로 최형우와 함께 100억 원으로 맞춰지는 경우와 2014시즌 뒤 장원준처럼 원 소속구단 제시액 밑으로 발표가 될 케이스가 나올 수는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차우찬에 대한 호가가 100억 원이라니, KBO 리그의 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