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방송된 SBS '웃찾사-살점' (사진='웃찾사' 캡처)
가히 '해학과 풍자'의 수요일 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 씨 일가의 국정농단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석 달 가까이 되고 있지만, 의혹은 끝없고 정국은 여전히 뜨겁다. 예능 프로그램들도 물을 만났다. 우직하게 시사 풍자를 고집해 오고 있는 SBS '웃찾사'와 시국을 소재로 한 버스킹을 선보이고 있는 JTBC '말하는대로'가 이번 주에도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웃음을 전했다.
◇ 최태민-박근혜 나오는 '제3공화국'이 추천 드라마?
웃찾사에서 '시사'를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코너는 총 3개다. JTBC 리뷰 토크쇼 '썰전'을 패러디한 '살점', 현직 대통령과 그의 친구 이야기를 다룬 '내 친구는 대통령', 이전부터 풍자 개그로 주목받았던 '기가 찬 LTE 뉴스'가 그 주인공이다. 각 코너 모두 분명한 컨셉을 갖고 있어, 점차 '믿고 보는 코너'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7일 방송된 '살점'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드라마 100편을 주제로 현 시국을 총정리했다. '살점'은 뉴스도 안 보고 정치를 '1도 모른다'고 거듭 주장하는 '정알못' 김정환과 할 말은 하는 '시사 개그맨'을 자처하는 황현희, 중간에서 추임새를 넣어주며 부드럽게 진행하는 박종욱의 어우러짐이 인상적인 코너다.
황현희는 이날 드라마 제목과 명대사를 요즘 시류에 맞게 바꿔야 한다면서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미안하다 특검이야'로,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웬만하면 촛불을 막을 수 없다'로 고쳤다. 황현희는 "국회의원이 뭐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진다고 했지만 바람이 불면 불은 옮겨붙어서 횃불이 된다"며 "제대로 얘기해야 될 거 아냐"라고 해 박수를 받았다.
또,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명대사인 '너 나랑 밥 먹을래, 나랑 살래'는 '너 나랑 밥 먹을래, 곰탕 먹을래'로, '너 나랑 살래'는 '너 나랑 살래 구라다 신발이나 살래'로 바뀌었다.
7일 방송된 SBS '웃찾사-살점' (사진='웃찾사' 캡처)
황현희는 '불새'의 명대사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를 '어디서 탄핵 냄새 안 나요?'로 바꾸고는 "(탄핵) 냄새가 나잖아, 스물스물 올라오잖아. 다들 맡고 있는데 왜 그분만 못 맡고 있냐고?"라고 반문했다. 이어, '천국의 계단'의 명대사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는 '선거는 돌아오는 거야'로 고친 뒤 "5년에 한 번씩 돌아오지 않나. 이번만큼은 정확하게 똑바로 생각 차려서 정확한 투표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현재 최 씨 일가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향후 특검까지 바라볼 수 있는 현실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매주 주말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를 수놓는 촛불 물결을 언급하고, 이를 폄하하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발언을 비틀었다. 최순실 씨가 검찰 조사 당시 처음 먹은 끼니, 그가 신고 있었던 신발 브랜드, 국회의 탄핵안 의결 처리, 내년으로 예정된 대선까지 짧은 꽁트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박종욱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현희야 너 이민 가는 거야?"라거나 "야 너 그러다 특검 받아. 책임질 수 있겠니?"라고 묻자 "이민 갈 돈이 없"고, "사실 몸이 좀 안 좋다"고 몸을 낮추는 모습으로 재차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저 대본에 써 있을 뿐이라고 하고, 자신을 '한낱 개그맨'이라면서 낮추고, 대본을 쥔 손을 떨어보이지만 "어쨌든 할 말은 해야겠다"며 '사이다' 발언을 이어가는 점이 '황현희 식 개그'의 포인트다.
그에 반해 김정환은 '뉴스도 안 보고 집에 TV도 없으며 정치를 1도 모른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해맑은 얼굴로 '독한' 개그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김정환은 "드라마 얘기하는데 정치 얘기 안 했으면 좋겠다"면서 "최고의 여자를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 우주의 기운으로 도와주는 얘기"라며 '별에서 온 그대'를 추천하는 식이다.
다음으로 소개한 드라마는 더 가관이었다. 아빠들이 정말 좋아하던 드라마라면서 '제3공화국'을 언급한 뒤 박정희 대통령이 주인공이라는 점을 굳이 강조했다. 그 뒤에 나온 드라마는 '제4공화국'이었고, 김정환은 최태민 목사와 당시 영애였던 박근혜 씨의 모습 캡처를 들고 설명을 시작했다.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은 '명성황후'였다. 김정환은 "난 조선의 국모다, 이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겠다"를 명대사로 소개한다. 하야 등 조기 퇴진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보다 '국회에 진퇴 여부를 맡기겠다'고 몸을 사리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대사다. 박종욱과 황현희가 "미쳤다"며 판넬을 치우고 손사래를 쳐도, 김정환은 끄떡없이 자기 할 말을 하는 '뚝심'으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코너를 마무리하는 '한 줄 논평'은 김정환과 황현희가 준비한 '직격탄'에 가까웠다. 김정환은 "좋은 드라마는 좋은 주제가로 기억된다고 알고 있다"며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OST를 불렀다. "길라임씨, 왜 내 눈 앞에 나타나~ 왜 니가 자꾸 나타나~" 길라임은 박 대통령이 차움 병원을 이용할 때 쓰는 가명으로 알려졌다.
황현희는 "한 나라의 대통령을 국가원수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상이다"라고 짧게 정리했다. '국제법상 외국에 대하여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자격을 갖는 사람'이라는 원래 뜻으로 말한 것인지, 끓어오르는 민심을 계속 외면만 하고 있어 '원수'라는 의미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 "마무리 잘해서 깔끔하게 보내야 될 것 같습니다"'기가 찬 LTE뉴스' 역시 지난 한 주를 돌아볼 수 있는 시사 소재를 꼼꼼히 다뤘다.
7일 방송된 SBS '웃찾사-기가 찬 LTE뉴스' (사진='웃찾사' 캡처)
강성범은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면서 "이 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내용은…"이라고 말끝을 흐리고는 바로 다음 소식으로 넘어가 버려 웃음을 선사했다. 김일희가 왜 중요한 얘기를 안 하냐고 따지자,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라고 받아치며 김일희의 질문도 무시해 버렸다. '사심이 없었고 국가를 위해 한 일'이라고 자기변명으로 일관했던 내용뿐 아니라 '무거운 얘기를 했으니 질문은 다음에 받겠다'고 한 황당한 상황까지 한 번에 비판한 셈이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에 들어서면 북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는 강성범의 전망에 김일희는 "우리나라 핵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무슨 핵이 있냐고 묻자 "그거 말고 딴 핵 있잖아요, 딴핵!"이라며 '탄핵'을 연상케 했다.
김일희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작가만의 놀라운 상상력을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아주 흥분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최고의 소설'을 '국정교과서'라고 답하고, 견과류의 효능을 얘기하며 많이 씹으면 씹을수록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다는 소리에 "대한민국 엄청 젊어지겠네. 사방에 씹을거리가 널렸잖아요?"라고 박수를 받았다.
압권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답변을 소재로 한 '말장난 개그'였다.
"청와대 전 비서실장에 대한 의혹이 날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최순실 씨를 아느냐는 질문에 '모릅니다', 지금도 국정에 개입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관여한 바 없습니다', 현 시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불행한 일입니다, 국가적으로'
요즘에 이런 분들이 많으시죠. 이런 분들은 거짓말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걸 '모릅니다', 이분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관여한 바 없습니다', 이런 분들이 대한민국의 높은 자리에 있었다는 건 '불행한 일입니다, 국가적으로'"
마지막 인사도 예사롭지 않았다. 강성범은 "여러분 이제 곧 끝날 것 같다.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마무리 잘해서 깔끔하게 보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일희는 "어, 아직 결정 안났는데"라고 하자 강성범은 "2016년 얼마 안 남았다"고 눙쳤지만, '탄핵 여부'를 돌려 말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7일 방송된 '웃찾사-내 친구는 대통령' (사진='웃찾사' 캡처)
'내 친구는 대통령'은 센스 있는 선곡으로 시청자들을 빵 터지게 했다. 옛 친구들과 노래방에 온 현직 대통령 역의 최국은 요즘 이런 노래가 꽂히더라며 김광진의 '편지'를 불렀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이번주 토요일에 고등학교 은사가 올라오시니 서울구경 시켜드리면 되겠다는 친구 김진곤의 말에 최국은 당황하며 "이번주 주말? 토요일? 어, 나 못 나가지 밖으로"라고 말해 매주 열리는 '촛불집회'를 간접 언급했다. 또, 태어나서 자란 곳을 방송사에서 촬영하겠다고 해 기뻐하는 최국에게 김진곤이 무슨 프로그램이냐고 묻자 '그것이 알고 싶다'라고 하는 장면 역시 '깨알 웃음'을 주었다.
'웃찾사'에서 매주 시사 개그를 선보일 수 있는 동력은 "코미디에서 가장 중요한 건 풍자와 해학"이라는제작진의 전폭적인 지지 덕이다. '살점', '기가 찬 LTE뉴스', '내 친구는 대통령'에 나오는 개그맨들은 매일 신문을 읽으며 핵심 소재를 고르고, 웃음과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키워드를 찾아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 시국 버스킹은 계속된다'말할 거리'를 가지고 말할 거리(길)에 선 사람들이 하는 버스킹을 추구하는 JTBC 예능 '말하는대로'는 시의적절한(?) 섭외로 풍자 코미디 대열에 함께 하고 있다. 방송인 유병재는 지난달 강남역 앞 버스킹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면 연설문을 직접 안 써도 된다"는 재치 있는 발언을 했고, 해당 동영상은 조회수 150만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7일 방송에서 유병재는 '한 걸음 더 들어간' 독한 시국 버스킹을 선보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를 소재로 한 개그를 하다 보니 아예 공부를 해 보자는 생각에 진보주의, 보수주의를 사전에서 찾아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수주의를 "집회가 끝나면 보수를 받는 형태"라고 해 일부 보수단체들의 관제 집회를 꼬집었다.
7일 방송된 JTBC '말하는대로' (사진='말하는대로' 캡처)
등산 중 길을 잃은 일화를 얘기하며 휴대폰 배터리가 5% 남았는데도 굳이 정상을 찍고 오겠다고 주장하는 매니저에게 "5%면 내려와! 고집피우지 말고"라고 일갈하는 장면에서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져 국정지지도 5%(한국갤럽, 11월 3주 동안)를 기록한 박 대통령의 곤란한 처지를 풍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병재는 "질의응답을 받는데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드린 거 같아서 자세한 질의응답은 오늘 받지 않기로 하겠다. 나중에 질문의 답을 소상히 밝히도록 하겠다"며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를 깜짝 패러디하기도 했다.
퇴장을 번복하고 다시 시민들 앞에 선 유병재는 앞으로도 시국 버스킹을 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지금 상황이 코미디언으로서 보면 소재가 너무 좋아서 흡사 뷔페에 온 기분이다. 어떤 걸 얘기해도 다 재밌으니까"라면서도 "요런 걸로 (개그를) 안 하는 세상이 오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