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정과 아이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고려대 2학년 주희정(39, 삼성)은 좀처럼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가정 형편도 좋지 않았다. 결국 대학을 중퇴한 뒤 프로행을 결정했다. 첫 시즌은 수련선수였다. 당시에는 나이 제한도 있어서 경기에는 나설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다음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다. 그렇게 주희정의 KBL 최초 1000경기 출전은 시작됐다.
주희정은 23일 KGC전에서 1000경기 출전을 달성한 뒤 "운이 좋았던 것 같다"면서 "돌이켜보면 첫 단추를 너무 잘 낀 것 같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군대를 안 간 것도 나에게는 장점이었다. KBL 나이 제한 제도도 행운이었다. 덕분에 최초 신인상도 받았다"고 프로 20년을 돌아봤다.
프로는 주희정에게 낯설었다. 형들과 나이 차도 꽤 났다. 하지만 주전 가드의 부상과 함께 최명룡 감독은 주희정에게 코트의 사령탑 역할을 맡겼다. 1000경기 출전의 시작점이었다.
주희정은 "나래 시절 형들과 나이 차가 엄청 많이 났다"면서도 "최명룡 감독님, 구단이 나에게 모든 걸 맞춰줬다. 주전 형이 부상을 당했는데 그 이후 나에게 사령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맡겼다. 어린 나이에도 형들을 코트에서 리드하다보니 자신감이 붙었다. 이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1000경기 출전. 그렇다면 주희정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일까. 주희정은 어느 한 경기가 아닌 2000-2001시즌 삼성 통합 우승을 꼽았다.
주희정은 "고대 시절 이규섭 코치와 1년 차이였다. 경기도 못 나가고, 연습경기만 했다. 중퇴하고 프로에 오면서 규섭이랑 '운이 닿으면 프로에서 만나 대학 때 서러움을 씻고 우승하자'고 했다"면서 "나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고, 삼성도 운이 좋아 1순위로 규섭이를 뽑았다. 그래서 더 뜻 깊은 시즌이고, 재미있었던 시즌"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1년 후배지만, 공식 직함은 이규섭 코치다. 하지만 주희정과 이규섭 코치는 서로의 버팀목이다.
주희정은 "선수들과 같이 있을 때는 이코치라고 한다"면서 "야간에 간혹 규섭이랑 1대1도 한다. 서로 재미있어 한다. 규섭이는 원래 현역 대도 몸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냥 3점만 쏘고, 그런 식으로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1000경기까지 달려온 것은 가족의 힘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란 주희정에게 가족은 그야말로 쉼 터다.
주희정은 "어렵게 자라다보니 항상 아이들에게 겸손하라고 이야기를 해준다"면서 "우리 아이들은 좀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나는 어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 매일을 사는 것 같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태아나고, 그렇게 1000경기까지 달려왔다"고 웃었다. 이날 인터뷰장에는 주희정의 둘째딸과 셋째딸, 그리고 아들도 함께 들어왔다.
우리나이로 마흔. 이제 서서히 마지막을 생각할 시기다. 하지만 주희정은 아직까지 은퇴 생각은 없다. 단 삼성에서 경력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