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향후 한국배구의 100년을 지탱할 유망주 발굴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장학금을 만든다.(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최태웅 배구상’
한국 배구 꿈나무들의 성장을 위한 소중한 씨앗이 뿌려진다. 국내 배구 역사상 처음으로 선수출신 배구인의 이름을 내건 상이 설립된다. 주인공은 바로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이다. 한국 배구의 새로운 100년을 위한 가치있는 ‘첫 걸음’이라는 평가다.
대한민국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은 모두 1916년 3월 25일을 배구가 한국에 처음 전파된 때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배구는 이 땅에서 100년간 사랑을 받으며 겨울을 대표하는 프로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지난 100년 동안 그 누구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나서 하는 이가 없었다. 최태웅 감독은 그 누구보다 먼저 ‘위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최태웅 감독은 최근 CBS노컷뉴스와 만나 ‘최태웅 배구상’ 설립의 뜻을 밝혔다. 지난 4일에도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면서 “배구에 받은 사랑을 배구에 돌려주고 싶다. 배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최태웅 배구상’ 설립 취지에 대해 소개했다.
‘최태웅 배구상’은 현대캐피탈의 연고지 천안 지역 배구 유망주를 대상으로 출발한다. V-리그가 지역 연고제를 도입한 만큼 연고지 팬들에 받은 사랑을 되돌려준다는 의미다. 하지만 머지않아 수혜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 배구의 ‘미래’를 발굴해 육성한다는 의미를 오롯이 담기 위해서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어린 유망주에게 ‘희망’을 나누기 위함이다.
사실 최태웅 감독이 ‘한국 배구’를 위해 사재를 출연한 것은 ‘최태웅 배구상’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대한민국배구협회가 ‘V-퓨처펀드’라는 이름으로 시행한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모금사업에 100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최태웅 감독의 선행에 소속팀 현대캐피탈도 5000만원을 보탰다.
하지만 최태웅 감독은 한국 배구의 새로운 100년을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최태웅 배구상’은 대표팀이 아닌, 유망주를 위한 장학금이다. 한국 배구의 ‘꽃’이 아닌 ‘뿌리’를 단단하게 하려는 분명한 시도다.
2017년 현재 전국의 중고교 배구팀은 선수 부족으로 고민이 크다. 실제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CBS배 전국 남녀중고배구대회에 출전하는 전국 각지의 중고교 배구팀 중에는 10명도 되지 않는 선수가 전부인 학교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장에서 만나는 중고교 지도자들은 “배구를 하려는 어린 학생들의 수가 줄고 있다”는 고충을 털어 놓았다.
중고교 배구대회 현장을 자주 찾는 최태웅 감독 역시 이 점을 우려했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장학금을 설립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그는 “(장학금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 (장학금이) 어린 꿈나무들에게는 분명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자부심을 느끼고 더 적극적으로 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태웅 배구상의) 목표”라고 말했다.
최태웅 감독은 과거 자신이 선수 시절부터 꿈꿨던 후진양성을 위해 지난해에도 대한민국배구협회가 모금했던 'V-퓨처펀드'에 1000만원을 흔쾌히 맡겼다.(사진=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제공)
◇ 이영민·차범근·홍명보·김현준, 그리고 최태웅배구는 4대 프로스포츠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유망주를 위한 대표적인 장학금 제도가 없다. 야구는 대한야구협회가 ‘이영민 타격상’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망주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축구 역시 과거 한국 축구를 대표했던 슈퍼스타 차범근과 홍명보가 직접 이름을 내건 장학사업을 통해 어려운 환경의 유망주를 돕고 있다. 농구 역시 삼성 썬더스가 과거 간판 스타로 활약했던 故 김현준 코치의 이름으로 농구 꿈나무를 지원한다.
야구의 ‘이영민 타격상’은 한국 야구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故 이영민 선생을 기념하는 상으로 1958년부터 시상해 60년에 가까운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역대 수상자는 백인천(1959년), 이만수(1977년), 김경기(1985년), 김건덕(1994년), 최정(2004년), 김현수(2005년), 하주석(2009년), 박민우(2011년) 등이 대표적이다.
축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장학금은 바로 ‘차범근 축구상’이다. 지난 1988년 차범근과 일간스포츠, 소년한국일보가 매년 전국의 초등학생 축구선수를 대상으로 차세대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발굴했다. 특이하게도 ‘차범근 축구상’은 어린 선수를 발굴하는 지도자도 수상한다. 2010년부터는 대한축구협회의 지원으로 장학금이 두 배로 증가했다.
이동국(4회)과 박지성(5회), 하대성(10회), 기성용(13회), 황희찬(21회) 등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가 ‘차범근 축구상’을 빛냈고, 백승호(22회)와 이승우(23회) 등 향후 한국 축구를 대표할 것으로 기대되는 유망주들이 수상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홍명보 장학재단도 축구계를 대표하는 유망주 발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로 당시 얻은 포상금과 후원금, CF 출연 등으로 얻은 수익을 모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지금까지 총 15년째 355명의 남녀 초중고 축구 유망주에 장학금을 지급했다. 역대 장학생 가운데 지소연(4회)과 김민우(6회), 김진수(8회) 등이 현재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했다.
농구는 삼성 썬더스가 故 김현준 코치의 이름을 딴 유망주 장학금을 운영한다. 과거 삼성에서 선수로, 또 코치로 활약했던 김현준 코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고인의 농구 열정을 기리는 의미로 지난 2000년부터 중고교 유망주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삼성은 매 시즌 팀 성적(1승당 30만원)을 기반으로 장학금을 마련한다.
김현준 농구장학금 역시 1회 장학생인 양희종(안양 KGC)을 비롯해 이관희(삼성 썬더스), 박찬희(인천 전자랜드), 이승현(고양 오리온), 이동엽, 천기범(이상 삼성 썬더스), 최준용(서울 SK), 송교창(전주 KCC) 등 많은 유망주가 현재 프로무대에서 맹활약 중이다.
최태웅 감독은 자신이 시작한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위한 투자'의 진정한 의미를 후배들도 분명 알아볼 것이라고 자신했다.(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 후진 양성, ‘배구인’ 최태웅의 오랜 꿈사실 최태웅 감독은 오래 전부터 ‘최태웅 배구상’을 구상했다. 그리고 2010년말 백혈병과 유사한 림프암이 발병해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당당히 코트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치며 더욱 확고해졌다.
동료들에 피해를 주기 싫어 매일 새벽 병원을 찾아 방사선 치료를 받고, 훈련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펼친 끝에 결국 최태웅 감독은 병마를 떨쳤다. 최태웅 감독은 이를 겪으며 자신의 사고 방식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으로 하며 어려운 환경에 있는 배구 유망주를 돕고 싶다는 자신의 오랜 꿈의 싹을 틔웠다.
최태웅 감독은 “꿈나무를 위해 재능기부 등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생각했다. (장학금은) 감독이 되며 할 수 있는 능력이 됐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지금 당장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재능기부는 여유가 없지만 금전적인 부분은 능력이 닿는 만큼 오래 유지하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사실 최태웅 감독은 현대캐피탈 감독이 되고 나서 자신이 꿈꿨던 일을 하나 둘씩 실현하고 있다. 더욱 상세하게 배구를 보고 분석하기 위해 모니터가 6개나 달린 1000만원짜리 컴퓨터를 구입하고, 천안 유관순체육관에는 선수단이 더 나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도록 다양한 음료를 준비하는 전용 냉장고를 선물했다. 이 모두는 구단에서도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최태웅 감독은 ‘자신의 꿈’이었다는 이유로 직접 해결했다.
‘최태웅 배구상’도 꿈의 연장선에 있다. 언젠가는 V-리그, 그리고 대표팀에 ‘최태웅 배구상’ 출신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최태웅 감독은 “사실 그렇게 큰 그림까지는 그리지 못했는데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면서 “장학금을 받을 꿈나무들이 나를 뛰어넘는 슈퍼스타가 되어서 배구를 위해 분명한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제2, 제3의 ‘최태웅 배구상’의 출범도 내심 기대했다. 최근 현대캐피탈의 간판 선수 문성민이 2016년 한국 배구 최고의 선수로 선정돼 받은 상금 500만원을 연고지 배구 발전을 위해 쾌척한 사례를 언급하며 “내가 (후배들에)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운동에 전념해야겠지만 은퇴 후에도 배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