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급식비리' 파문 사태를 겪었던 서울 충암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이홍식 전 이사장(명예이사)가 축사에서 '부동산 투기'를 종용하는 강의를 해 물의를 빚은데 이어 서울 용산구 서울디지텍고등학교 곽일천 교장이 지난 7일 졸업식에서 1시간 동안 '대통령 탄핵은 객관적 근거나 법적 절차를 안 지키고 정치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겨레는 12일 이 학교 곽 교장이 학교 졸업식에서 '탄핵 정국에 대한 곽일천 교장선생님과 학생들의 토론회'를 열고 1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과 관련된 자신의 의견을 훈화하면서 "탄핵 사건을 처리하는 우리 사회는 정의로움이 사라졌거나 부족하다. 지극히 법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며 "태플릿PC가 최순실의 것이냐 아니냐 밝혀지지도 않았다. 언론의 주장에 피해를 보고 있는 피고 쪽에서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느냐에 대해 균형있게 따져볼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곽 교장은 "10월 언론보도가 나며 번갯물에 콩 구워먹듯 12월에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엄중한 일을 국회가 처리했다. 아직 재판을 해서 죄가 되는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언론에 나온 주장을 갖고 그대로 탄핵을 밀어붙였다"며 "대통령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운영 시스템인데 적법한 절차나 객관적 근거없이 했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학교 홈페이지에 월간조선 기자가 쓴 13개 헌법조항을 위반했다고 하는 것에 대해 기소한 측과 반박하는 대통령의 주장을 소개해놨다. 적어도 그런 것을 읽어보라"고 특정 글을 권유했다.
곽 교장은 서울디지텍고 홈페이지 게시판에 '법치주의를 훼손한 탄핵의 문제점', '법 위에 군림하는 분노한 민심', '비논리적이고 규정 어긋난 탄핵심판' 등의 정치적 성향의 글을 게재해왔다.
"전전 정권에서 좌파 문화예술인들에게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소위 ‘화이트리스트’라는 것이 정권이 바뀌어 국가정체성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특혜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블랙리스트"라고 재정의한 곽 교장은 "(이에) 저항했던 고위공무원을 '너 그만둬라', '좌천시켜라' 한 것 갖고 탄핵했는데, 1,2급의 공무원들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인사조처할 수 있는 인사권이 있다. 그걸 갖고 권력남용이다, 기회를 제한했다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여러분들이 법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디지텍고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당시 영상을 보면 토론회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훈화에 가까워 보였다. 훈화 말미 질의응답시간이 있었지만 미리 이 시간을 예상하지 못한 학생들은 곽 교장의 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과 의문에 대해 짧게 말 할 기회만 있었을 뿐 대등한 토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학생들은 "(탄핵 과정에서) 법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이 법적인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는지 말씀해 달라", "최순실의 태블릿PC가 나왔을 때, 최순실 것이 아니라면서 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과 일치했는지 말해달라", "교장선생님 말씀이 모순됐다. 저희 보고 '정의롭게 살아라', 진실된 걸 알아라'라고 하시는데 저희는 탄핵되는 것이 정의롭고 진실된 것이라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과 국정농단을 벌이면서 다른 근거와 정황들에 의해 그들의 범죄가 밝혀졌는데, 굳이 태블릿피시에 주목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등의 의견을 내놨다.
동영상 말미에는 곽 교장과 한 여학생과의 설전도 눈길을 끌었다.
촛불집회에 11주차에 걸쳐 참여했다는 이 여학생은 "지금까지 촛불집회에서 나온 이야기는 다 알고 있는데, 태극기 시위에 나온 잘못된 점에 대해서도 (교장 선생님이) 얘기 해달라"고 말했다.
곽 교장이 "그럼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해주면 동의하는지 안하는지 말해주겠다"고 말하자, 여학생은 "태극기 시위를 하는 쪽에서는 JTBC가 태블릿PC 관련 내용을 다 조작을 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옳으냐"고 물었다. 곽 교장은 "그것은(그렇게 주장하는게) 잘못된거에요?"라고 반문하자 여학생은 "그럼 옳습니까?"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곽 교장은 "그것은 따져봐야지"라며 즉답을 피했다. 주변에서는 헛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여학생은 또 "교장선생님이 학교의 장이신데 선생님으로서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거의다 우익적(보수측 입장)으로 가고 계세요. 옳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곽 교장은 이에 "무엇이 진실인지 사실인지 따져보자는 것이고, 이렇게 생각이 다를때, 국민 여론에 따라가는 여론재판이 아니라 법치주의를 지키자는 것이 내 주장이다"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여학생은 "이 전에도 사적으로 들어온 내용을 공적인데서, 지금 이 자리에서도 얘기하시는게 옳다고 생각하냐"고 되물었다.
곽 교장은 "사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여러 의견이 다른 법률가들의 주장을 내가 취사선택을 해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내용의 다른 면을 부각시켜주는거지 내 개인의 의견을 얘기하는게 아니다. 법치주의 주장은 내 주장일 수도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해야 할 주장들을 이야기 한 것이다. 내 주장도 들어 있다. 왜 그것이 정파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느냐"고 항변했다.
해당 동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토론회를 빙자한 일방적인 이념 주입이다", "이게 어떻게 정치적 중립을 가지며 이야기 하는 것이냐", "그냥 일방적인 자기 주장 아니냐" 등 비판적인 의견을 쏟아냈다.
일부 네티즌들은 "교장선생님이 매우 현명하시다", "맞는 말씀 하셨다. 훌륭하고 정의롭다", "뚜렷한 신념이 강직하지만 왜곡된 정보로 지탄받고 있다. 극우 언론 보고 그러는 것 같은데, 가기기만 오류를 범하고 있어 유감"이라는 의견도 보였다.
서울디지텍고는 학교법인 청지학원이 운영하는 특성화고로 설립자의 아들인 곽 교장은 2010년부터 취임해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