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서울 삼성 감독(사진 왼쪽)이 11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고양 오리온과의 1차전에서 리카르도 라틀리프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사진=KBL)
이상민 감독의 용병술이 '디펜딩 챔피언' 고양 오리온을 흔들어놨다.
서울 삼성의 이상민 감독은 11일 오후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오리온과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2가지 핵심 전술을 준비했다.
먼저 오리온의 외국인 가드 오데리언 바셋이 마음껏 외곽슛을 던지도록 하는 수비를 준비했다. 새깅(sagging) 수비 혹은 팩 라인(Pack Line) 수비라고도 한다. 외곽슛에 약점이 있는 선수를 멀리 떨어져 막는 수비 방식이다.
바셋은 올시즌 삼성에 강했다. 정규리그 평균보다 3.6점이 높은 16.8점을 올렸고 야투성공률과 3점슛성공률 모두 좋았다. 포인트가드 포지션의 수비가 약한 삼성의 아킬레스건을 잘 공략했다.
그러나 이상민 감독은 승부수를 걸었다.
이상민 감독은 경기 전 "김태술과 주희정은 100% 몸 상태가 아니다. 천기범은 발목을 다쳐 출전이 어렵다. 바셋은 우리를 만나면 득점이 많았지만 상대 선수 중 슈팅 능력은 가장 떨어진다"고 말했다.
1쿼터 막판 바셋이 등장하자 삼성은 지역방어로 전환했다. 바셋이 정면에 서있을 때 가운데 외곽 수비를 맡은 주희정은 자유투 라인 부근까지 내려와 수비를 했다. 바셋은 도발에 응했다. 그러나 슛은 계속 림을 외면했다.
결국 오리온은 2쿼터 시작 2분40초만에 바셋을 벤치로 불러들여야 했다. 바셋은 2쿼터 중반 이후 다시 코트를 밟았으나 슛이 터지지 않았다. 바셋은 전반까지 외곽슛 5개를 던져 다 놓쳤고 무득점에 그쳤다.
또 삼성은 리카르도 라틀리프에 대한 오리온의 도움수비에 완벽하게 대응했다.
이상민 감독은 "오리온은 트랩(trap) 수비, 도움수비가 강하다. 신장 2미터의 장신 선수들이 라틀리프를 둘러싸고 헤인즈는 영리하게 움직인다. 그렇게 해도 외곽슛 허용률이 낮은 팀"이라며 "그러나 라틀리프는 시즌 내내 그런 수비를 당했고 지금은 본인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오리온의 수비는 강했다.
오리온은 삼성이 라틀리프에게 골밑 패스를 하려는 순간 도움수비를 준비했다. 라틀리프가 공을 잡고 전방을 바라보면 이미 베이스라인 방향에서 도움수비가 붙었다. 트랩수비, 함정수비라고도 부른다.
삼성의 대응은 한수위였다.
2쿼터 중반 라틀리프가 수비수 2명에 둘러싸이자 외곽에 위치한 마이클 크레익에게 패스했다. 크레익은 주저하지 않았다. 패스를 받자마자 정면에 위치한 주희정에게 공을 건넸다. 노마크 외곽슛 기회를 막기 위해 오리온 수비 2명이 달려들자 주희정을 노련하게 돌파한 뒤 골밑으로 접근한 문태영에게 패스했다. 오리온 골밑 수비가 문태영을 바라보자 문태영은 다시 라틀리프에게 패스했고 라틀리프는 덩크를 터트렸다.
트랩수비, 골밑 도움수비를 이겨내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모두 담긴 장면이었다.
라틀리프는 상대의 도움수비에 당황하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고 빠르게 외곽으로 볼을 넘겼다. 주희정이 외곽으로 나온 볼 처리를 잘했다.
크레익의 플레이도 좋았다. 크레익은 정규리그 중반 이후부터 문제가 됐던 약점에서 벗어났다. 공을 끌지 않았다. 패스를 해야 할 때 망설임 없이 패스했다. 그러자 삼성의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가 살아났다. 오리온의 도움수비는 그렇게 무너졌다.
결국 오리온은 2쿼터 막판 라틀리프를 막기 위해 준비했던 도움수비를 포기했다.
바셋의 무력화, 도움수비의 대응 등 삼성이 바라는 시나리오대로 경기가 진행됐다. 삼성은 43-24로 전반전을 마쳐 승기를 잡았다.
오리온은 3쿼터 들어 바셋을 기용하지 않았다. 기용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오리온은 애런 헤인즈를 앞세워 반격에 나섰으나 고비 때마다 라틀리프가 골밑 득점을 넣어 흐름을 끊었다. 라틀리프는 3쿼터에만 14점 7리바운드를 올렸고 3쿼터 종료 스코어는 61-36이었다.
삼성은 6강 플레이오프에서 인천 전자랜드와 5차전 승부를 벌였다. 이틀을 쉬고 오리온에 맞섰다. 체력적 열세가 분명했다. 그러나 짧은 준비 기간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1차전 승리는 삼성의 몫이었다. 삼성은 오리온을 78-61로 누르고 5전3선승제 시리즈의 첫판을 가져갔다.
라틀리프는 33점 19리바운드를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상대의 트랩수비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 돋보였다. 삼성은 이날 2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삼성은 올해 승리를 거둔 포스트시즌 3경기에서 모두 20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올렸다. 승리 공식이 무엇인지가 보다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