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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 데려올 때 절 이용하려 했나"…판사 증언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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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행정처 데려올 때 절 이용하려 했나"…판사 증언 파장

    조사위 "연구회 견제 목적, 인사권 남용 아니다" 결론냈지만

    (사진=자료사진)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사법부가 압력을 썼다는 의혹이 조사되는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요직을 내걸어 한 판사를 포섭하고 회유하려 한 정황이 담긴 진술이 공개됐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 문제 등을 골자로 전국 법관들을 설문조사 한 결과를 발표하는 학술행사를 연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팀장이자, 행사 직전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받았던 이모 판사가 고위 법관들에게서 들었던 말들을 진상조사 과정에서 밝히면서다.

    고위 법관들은 사실상 부인했고 진상조사위원회도 연구회 견제 목적이거나 인사권 남용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지만, 잠을 못 이뤘다는 이 판사는 사직까지 결심했었다.

    19일 법원 진상조사위원에 따르면, 이 판사는 올해 1월 연구회 운영위원회 당일 연구회 회원이었던 이모 부장판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이 판사는 통화에서 "행정처 높은 분의 이야기라면서 학술대회를 대법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고 학술대회를 안했으면 한다"는 말을 듣게 됐다.

    법원행정처는 그동안 해당 연구회가 우리법연구회와 비슷한 주제를 논의한다는 이유로 주목하고 우려해왔다.

    그러나 학술대회의 상반기 개최가 확정되자 이 판사는 이 부장판사에게 알려줬는데, 이 부장판사는 이때 행정처 높은 분은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상임위원에게 이 판사와 연구회 회원인 다른 판사를 행정처로 데려가라고 추천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며칠 뒤 이 상임위원이 이 판사에게 직접 전화했다. "학술대회가 철저하게 내부행사로 치러지도록 해주고, 특히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면서 심의관 추천 사실을 알리며 "같이 일하게 될 수도 있다"고 이 상임위원이 말했다.

    지난 2월 법관 정기인사에서 실제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겸임 발령이 난 이 판사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축하인사였다.

    다음 날 이 판사는 전‧현직 심의관들을 만나 행정처 생활에 대해 조언을 구했는데, 그들로부터 "차장이 공식 직제대로 일하지 않고 직접 심의관을 불러 비밀리에 일을 시키거나 다른 심의관이 한 일을 몰래 다시 검토 시킨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

    이 판사가 이후 이규진 상임위원의 사무실을 방문해 인사를 하면서는 귀를 의심하게 할 만한 이야기를 직접 듣게 됐다.

    "이 판사님이 기조실(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보면 비밀번호가 걸려있는 파일들이 있다. 거기에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들이 나올 텐데 놀라지 말고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거였다.

    이 상임위원은 진상조사에서 "30분 정도 덕담을 나눴고, 행정처 일도 잘하고 연구회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조화롭게 한다면 별문제 없고 좋을 것 같다"고 했을 뿐이라고 부인했다.

    이 판사는 그러나 이 상임위원의 말에 충격을 받아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판사들의 연구회 중복 가입을 문제 삼은 법원행정처의 조치를 두고도 이 판사는 이 상임위원으로부터 반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이 판사는 전임 심의관으로부터 "중복가입 탈퇴조치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타깃 한 것이고, 이 조치에 대해 처장님은 주저했으나 차장님이 밀어붙였다고 들었다. 너는 역량도 있겠지만, 연구회 때문에 기조실에 온 것"이라는 취지의 말까지 듣게 됐다.

    중복가입 탈퇴조치는 법원행정처의 연구회 견제 조치고,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이 판사를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판사는 인사 1주일 만에 사직 의사를 밝혔고, 임종헌 당시 차장과 통화를 했다. 임 전 차장은 이 판사의 인사 배경은 여러 사람의 추천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 판사의 경위서에 나타난 이후 대화는 이렇다.

    이 판사 : 중복가입 탈퇴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표적으로 한 정책결정이었다고 들었다.
    임 차장 : 그 부분 내 책임 50% 인정한다. (임 전 차장은 ‘50%까지는 안된다’고 했다고 함)
    이 판사 : 이규진 실장님이 국제인권법연구회에 개입하는 지시들을 했다.
    임 차장 : 그건 내 책임 아니다.
    이 판사 : 그럼 독단적으로 했다는 말이냐. 언론보도 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을 차장님 의중 없이 어떻게 하나.
    임 차장 : 꼭 무산시킨다는 것 보다 좀 조용하게 가면 좋잖아. (임 전 차장은 '기억이 없으나, 평소 생각이었다'고 함)
    이 판사 : 저를 데려오실 때부터 연구회 관련 부수적인 목적이 있지 않았냐. 일석이조?
    임 차장 : 그래! (임 전 차장은 '그렇게 말할 리가 없고, 흥분한 이 판사를 달래는 과정에서 '그래, 그래'라고 한 말이 오해될 수 있다고 함)
    이 판사 : 그냥 조용히 사직서 처리해주면 제가 알게 된 내용은 그냥 제가 안고 가겠다.

    이 판사는 당시 임 차장과 통화할 때 자존심이 몹시 상해 흥분했다고 기억했다.

    임 전 차장은 이 판사에게 다른 보직을 제의했지만, 본인이 고사해 원래 소속 법원으로 복귀 인사를 지시했다. 대법원장에게 이때 인사 불가피성을 설명해 결재를 받았다고 한다.

    조사위는 이에 대해 이 판사는 업무역량과 평판이 우수했고 여러 사람이 추천한 게 확인돼 이례적 인사로 보기 어렵다며, 핵심 보직에 보임되는 자리인 만큼 연구회 견제 목적의 인사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이규진 상임위원이 부당한 지시와 간섭을 한 사실은 확인하면서도 임 전 차장이 인사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판사가 심의관으로 부임하면 앞으로도 부당한 업무를 계속 받아야 하고, 전임자 등으로부터 들어 알게 된 법원행정처 실상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고 생각되자, 이를 견디기 어려워 사직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조사위 결과다.

    그러나 한 판사가 법복을 벗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일련의 과정을 볼 때 행정처 요직이 부당한 지시의 ‘지렛대’가 전혀 아니었다는 의문을 선뜻 지우긴 어려워 보인다.

    조사위는 "이 판사의 사직 의사표시는 이규진 상임위원의 부적절한 요구들이 주요한 원인이었다"면서도 "법원행정처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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