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랫폼 전쟁의 막이 올랐다. 첫 격전지는 영화의 본토 프랑스에서 치러지는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다.
전쟁은 프랑스 극장 연합회가 비극장 상영 영화들의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을 반대하는 성명을 내면서부터 발발했다. 이 비극장 상영 영화 두 편은 모두 미국 온라인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가 투자·배급을 맡은 작품들이다.
여기에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포함돼 있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옥자'는 5일 뒤 열리는 제70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칸영화제 사무국은 이후 경쟁 부문에서는 프랑스 극장에 배급돼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넷플릭스'처럼 극장이 아닌 다른 플랫폼으로 배급하는 영화의 경우, 이번 칸영화제 진출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셈이다. 유사 업체 중 아직 '넷플릭스'만한 자본과 경쟁력을 가진 곳이 없으므로 사실상 넷플리스와 극장 산업의 대결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넷플릭스' 리드 헤이스팅스 대표는 사안을 접하자마자 자신의 SNS에 "기득권 세력이
우리를 반대하고 있지만 6월 28일 '옥자'를 확인하라. 극장 체인이 막기를 원한 대단한 작품"이라고 자신감 넘치는 반박에 나섰다.
극장 산업이 전통적인 산업인 것은 맞지만 이 사안을 단순히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대결이나 프랑스의 일방적인 견제로 보기란 어렵다. 여기에는 프랑스 영화 산업 만의 복잡한 셈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제70회 칸국제영화제 포스터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포스터. (사진=칸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캡처, 넷플릭스 제공)
◇ 극장 문화 위에 꽃핀 프랑스 영화 산업프랑스에서 영화 산업은 자국 문화 산업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한다. 영상 산업 전체가 영화 산업을 중심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영화 산업의 초점은 1차 산업인 극장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극장일까. 극장하면 멀티플렉스 극장과 대기업만을 떠올리는 우리와 프랑스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홈시네마' 문화가 발달한 미국과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극장 문화는 한국이나 미국보다 훨씬 서민 친화적이며 보편적이다. 이제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관들이 즐비하고, 사람들은 '집'보다 '극장'에서 영화 보기를 선호한다. 굳이 영상미가 뛰어난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라도 그렇다. 극장 이용이 생활화돼 있는 것이다.
프랑스 영화계에 정통한 노철환 인하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는 "프랑스 영상·영화 산업체들, 즉 영화로 돈을 버는 모든 산업체들은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와 유사한 기구인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와 준법률적인 영향력을 갖는 계약을 맺는다. 이에 따라 자국 영화 제작을 위해 업체마다 수익의 10.72%만큼 지원금을 분담한다. 프랑스 영화 지원 정책의 근간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프랑스 내부에는 극장에서 흥행한 영화가 2차 시장에서 더 큰 경제효과를 낸다는 산업 질서가 존재한다. 산업 생태계에 이미 '선극장'이 확립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프랑스 영화 산업 자체가 탄탄한 극장 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넷플릭스'의 출현은 상당히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문화를 지키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한 순간이다.
노 교수는 "만약에 '넷플릭스'가 프랑스에 들어와서 프랑스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고, 최신 영화나 드라마를 빨리 개봉한다면 현재 프랑스에 존재하는 영화전문채널은
문을 닫아야 한다. '넷플릭스'가 훨씬 값싸고 콘텐츠를 많이, 빨리 제공하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자국 채널이 버는 돈은 고스란히 프랑스 영화계로 돌아가지만 넷플릭스는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이런 문화가 자리잡게 되면 결과적으로 프랑스 극장 산업은 몰락하게 돼있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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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자국 영화제를 통해 프랑스가 '넷플릭스'의 유입을 규제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 셈이다.
◇ 넷플릭스 VS 전세계 극장산업프랑스에서 끝이 아니다. 거대한 자본을 가진 '넷플릭스'와 전세계 극장 산업 간의 본격적인 줄다리기는 이제부터다.
노철환 교수는 칸영화제로 시작한 프랑스의 '방어'보다는 넷플릭스의 전세계 확장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넷플릭스의 플랫폼 자체가 선진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프랑스에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넷플릭스를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 견해는 상당히 위험하다. 미국의 '홈시네마'에 맞는 산업임에도 넷플릭스는 끊임없이 전세계적으로 미국 문화의 장악력을 높이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