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LA 다저스 류현진.(사진=노컷뉴스DB)
류현진(LA 다저스)은 역시 승부사였다. 힘겹게 얻은 선발 등판 기회에서 2017시즌 들어 가장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타자와 승부를 펼친 패턴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류현진은 1일(한국시간) 미국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동안 탈삼진 4개를 기록하며 3피안타 1볼넷 1실점 호투를 펼쳤다.
6회가 끝날 때까지 류현진의 투구수는 77개에 불과했다. 다저스가 7회초 류현진의 타석을 앞두고 2사 2루 득점권 기회를 만들자 대타를 기용하면서 류현진은 호투에도 비교적 일찍 투구를 마쳐야 했다.
제구력이 좋았다. 77개 중 51개가 스트라이크였다. 류현진의 허용한 볼넷 1개도 투수와의 승부를 위해 일부러 주자를 내보낸 고의볼넷이었다.
무엇보다 볼배합이 인상적이었다. 어깨 수술 이후 직구 구속이 다소 줄어든 류현진은 시즌 첫 3경기에서 부진을 겪은 이후 직구의 비율을 줄이고 변화구의 비율을 높였다. 특히 커브를 더 자주 던지기 시작했다.
류현진이 던진 77개의 공 가운데 직구는 20개에 불과했다. 체인지업 23개, 슬라이더 21개, 커브 13개를 각각 던졌다.
직구의 평균 구속은 90.8마일(시속 약 146.1km). 앞선 8경기의 평균 구속보다 시속 2km 정도 빨라지긴 했지만 직구만으로는 세인트루이스 타선을 압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류현진은 제구력이 뒷받침된 변화구를 앞세워 볼카운트 싸움을 펼쳤고 오히려 중요한 순간 위주로 직구를 구사해 위력을 끌어올렸다.
2회말 투구 내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소 불안한 수비로 인해 1점을 내줬지만 류현진이 2회에 던진 13개의 공 가운데 직구는 1개도 없었다.
류현진은 2회말에 '슬라이더 - 커브 - 체인지업 - 슬라이더 - 커브 - 커브 - 체인지업 - 체인지업 - 체인지업 - 체인지업 - 체인지업 - 커브 - 체인지업'을 순서대로 던졌다.
류현진이 3회말 2번타자 맷 카펜터와 4회말 4번타자 제드 저코를 삼진으로 처리할 때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과감하게 직구 승부를 펼쳐 효과를 봤다.
아무리 빠르고 위력적인 직구라 해도 타자가 계속 공을 보고 익숙해지면 충분히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류현진은 변화구를 많이 섞었고 제구력이 뒷받침된 좌우 코너워크까지 가미해 직구의 변별력을 유지했다.
직구의 구속도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류현진은 3회말 덱스터 파울러와 승부할 때 시속 148km의 강속구를 연거푸 뿌리기도 했다.
2회말 실점 장면은 다소 아쉬웠다. 수비에서 작은 실수가 실점으로 연결됐다. 1사 1루에서 피스코티를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했으나 중견수와 우익수가 서로 공을 잡으려다가 부딪힌 사이 1루주자가 2루로 진루했다. 이후 데용의 적시타가 나왔다.
2회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위기가 없었다. 4회말 2사 후 피스코티에게 2루타를 맞았지만 데용을 투수 앞 땅볼로 처리하고 가볍게 불을 껐다.
류현진은 1-1로 팽팽하던 7회초 타석 때 교체돼 승패없이 경기를 마쳤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3.91로 낮아졌다.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로서 손색이 없는 숫자다. 경기는 세인트루이스의 2-1 승리로 끝났다. 8회말 덱스터 파울러가 결승 솔로포를 때렸고 오승환이 9회 등판해 세인트루이스의 1점차 승리를 지켰다. 시즌 12호 세이브.
비록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류현진은 올시즌 가장 눈부신 호투를 펼쳐 선발 경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잠시 불펜으로 보직이 변경됐지만 선발투수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어깨 수술 이후 자신의 몸 상태와 밸런스에 적응해나가면서 장점을 극대화하는 패턴 변화에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여전히 선발 경쟁은 험난하지만 희망을 품기에 부족함이 없는 투구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