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드라마 '귓속말'에서 강정일 역을 열연한 배우 권율. (사진=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매 순간 끝을 생각하는 배우. 권율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는 길었던 무명 시절에서 기인했다. 한창 꽃필 20대가 아닌 30대에 그는 비로소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좌절이 지금의 권율을 만들었다.
"돌아보면 당시에는 왜 나는 안될까 원망했었어요. 그런데 가면 갈수록 당시에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느꼈죠. 그래서 기회를 잡았을 때는 항상 소중하게, 절실히,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심정이 생겼나봐요. 매 순간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말이죠. 언젠가 한 번의 기회는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고요."
그는 한 번에 많은 것이 달라지는 배우는 아니다. 선하고 바른 이미지의 그가 '귓속말'에서 악역을 맡게 된 것도 전작인 영화 '사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한 때는 다양한 역할에 욕심을 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자신의 얼굴을 쌓아가는 행위에 의미를 두고 있다. 만약 차기작을 한다면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고된 작품을 원한다고.
"나도 다른 역할을 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시기는 있었어요. 이런 모습을 한 번 보여주고 싶으니까 선택했던 적이 있죠. 대본이나 작품이 좋아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냥 이제는 다양한 얼굴이 종이처럼 쌓여서 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당장은 머리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하루 종일 뛰는 액션 장르가 하고 싶어요. 상처가 너무 아파서 평범한 살을 만져보고 싶네요."
SBS 수목드라마 '귓속말'에서 강정일 역을 열연한 배우 권율. (사진=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작품이 없을 때도 마냥 편하게 노는 것은 아니다. 6월 개봉하는 영화 '박열'의 홍보 일정이 끝나면 권율은 본격적으로 체력 관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체력을 비축해 놓지 않으면 다음 작품에서 에너지가 빨리 소진되기 때문이다.
"쉬면서 열심히 운동하려고요. 이번에도 체력적으로 좀 힘들었어요. 드라마는 특히 체력싸움이에요. 포커 선수들이 경기 시즌이 아닐 때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그렇게 한대요. 사실 포커는 24시간을 치고, 나머지 6시간에서 승부가 갈리는 정신력 싸움이거든요. 지탱할 건 결국 체력밖에 없는 거죠. 드라마는 후반부로 가면 음식 관리도 못하고 쪽잠을 자는데 많이 신경을 써야 되겠다 싶었어요."
권율의 취미는 가사 노동이다. 청소나 빨래를 하면 쉴 공간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아진단다.
"100단까지는 아니고 한 50단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절대 결벽증은 아니에요. 평소 촬영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데 사실 집에 돌아오면 좀 상쾌하고 깨끗했으면 하거든요. 집안이 잘 정돈돼있고 깨끗하면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아요. 직접 움직여야 좋고요. 집이 엉망이면 피로가 더 풀리지가 않으니까 촬영 다녀와서도 빨래 돌리고, 쓸고 닦아요. 혼자 사는 집에서 해먹으면 지저분하니까 요리는 잘 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