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RM 제공)
뜨거운 태양도, 쏟아지는 빗줄기도 록 음악 마니아들의 열정을 막진 못했다.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페스티벌’과 함께 국내 양대 록 페스티벌로 꼽히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가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펼쳐졌다. 12회째를 맞은 ‘펜타포트’는 누적관객 68만, 출연 아티스트 1,200팀을 기록하며 오랜 시간 사랑받았다. 국내 록 페스티벌 환경이 척박했던 1999년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을 계승한 축제로 2006년부터 ‘펜타포트’라는 이름으로 음악 팬들과 만나고 있다.
◇ ‘천둥번개’도 막지 못한 록 팬들의 ‘열정’
공연 첫째 날인 11일, ‘펜타포트’ 현장을 직접 찾아 뜨거운 열기를 확인했다. 무대는 3개로 나뉘어 있었다. 폭60M. 높이 20M의 국내 최대 규모 야외 상설 무대이자 ‘펜타포트’의 메인 무대인 ‘쉐보레 스테이지’, 가로 15M, 깊이 35M의 크기로 2천 명 이상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상설 돔 스테이지인 ‘KB국민카드 스테이지’, 레게, 록, EDM 등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하이네켄 그린 스테이지’에서 다양한 팀들의 공연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무대는 총 3개로 나뉘어 있었지만, 공연 시간이 겹치지 않고 각 무대 사이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편이라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문제는 오락가락한 날씨였다. 입장이 시작된 오후 3시,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져 관객들의 우려를 샀는데 오후 5시께가 되자 강한 바람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일본 출신 메탈 코어 밴드 허 네임 인 블러드의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다. 다행히 무대를 펼져친 ‘KB국민카드 스테이지’가 돔 형태로 만들어져 공연을 보던 관객들은 비를 피할 수 있었다. 반면, 야외무대인 ‘쉐보레 스테이지’에서 다음 팀을 공연을 미리 기다리거나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던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비에 온몸을 적셔야 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가 열정까지 막진 못했다. 록 팬들은 천둥이 칠 때마다 하늘에 대고 함성을 내지르며 축제의 분위기를 즐겼다. 다행히, 비는 한 시간여 만에 그쳤고, 오히려 바람이 선선한 불면서 공연을 즐기기 좋은 날씨로 변했다. 강산에 특유의 시원시원한 보컬이 달빛축제공원을 가득 메울 때쯤이었다. 비록, 잔디밭이 진흙탕으로 변하고 온몸은 땀과 비에 젖었지만, 생생한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맑게 갠 하늘을 보는 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펜타포트’의 열기는 해가 지고 난 뒤 더욱 고조됐다. 때마침 영국 팝 신의 떠오르는 신예 두아 리파의 무대가 시작됐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펼친 두아 리파는 섹시함과 걸크러시가 어우러진 매력을 내뿜으며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프로젝트 그룹 아이오아이 출신 전소미도 가족들과 함께 현장을 찾아 두아 리파의 무대를 지켜봤다.
첫째 날의 ‘헤드라이너’는 국카스텐이었다. 밤 9시 30분 메인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국카스텐은 ‘변신’, ‘카눌라’, ‘펄스’ 등의 곡을 선곡해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펼쳤다. ‘민물장어의 꿈’, ‘라젠카 세이브 어스’ 등 보컬 하현우가 ‘복면가왕’에서 부른 고(故) 신해철의 곡도 선보였다. 국가스텐의 공연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큰 호응에 감격한 하현우는 “죽을 때까지 오늘 공연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 무더위에 ‘살수차’까지 동원 ‘진풍경’
둘째 날인 12일에는 잠시 주춤했던 폭염의 기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평일이었던 첫째 날과 달리 주말인 둘째 날 공연은 정오쯤 일치감치 시작됐지만, 무더운 시간대를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오후 3시 이전까지는 관객의 수가 많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푹푹 찌는 날씨였지만, ‘록 마니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을 즐겼다. 역사가 깊은 헤비메탈 밴드 바세린을 비롯해 미국 아틀란타 출신 메탈 밴드 이슈스, Y2K 출신 마츠오 유이치와 마츠오 코지가 속한 스완키 덩크 등이 출연한 ‘KB국민카드 스테이지’에서는 웃옷을 벗고 열정적으로 공연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관객들이 원형 대형을 만들고,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 격렬하게 몸을 부딪치는 ‘슬램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반면, 여유로움을 즐기며 공연을 보는 이들도 있었다. 주변에 주택 단지가 밀집해 있어 가족 단위 관객도 많았는데 이들은 잔디밭에 돗자리나 그늘 막을 쳐두고 현장에 마련된 푸드존에서 음식과 맥주를 즐기며 ‘펜타포트’를 만끼했다. 직장인 유모 씨(29)는 “공연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댄스 워크 숍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많아 좋았고, 흡연 부스를 비롯해 각종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이후 관객 수가 확연히 늘어나기 시작했고, 관록의 록밴드 메인무대에 피아가 등장하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보컬 옥요한의 강렬한 샤우팅은 통쾌하고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고, 주최 측은 살수차를 동원, 스탠딩석에 물대포를 쏘아 올리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피아에 이어 한국인 기타리스트인 이진주가 속한 미국 팝록밴드 DNCE가 무대에 올라 유쾌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열기를 이어갔다.
장기하와 얼굴들도 등장했다. 관객들은 ‘풍문으로 들었소’, ‘우리 지금 만나’ 등의 곡을 ‘떼창’하며 호응했고, 보컬 장기하는 무대 아래까지 내려와 팬들과 젖은 몸을 부대꼈다. 둘째 날의 ‘헤드라이너’는 영국 출신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바스틸. 이들은 다채로운 사운드로 여름밤을 적셨고, 관객들은 일제히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분위기를 만끽했다. 보컬 댄 스미스는 한국말로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쳤고, “한국 고마워” “너무 좋아”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 록페에 정형돈이? 엇갈린 반응
한편, 올해 ‘펜타포트’는 록 음악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음악을 선호하는 팬들을 위해 다양한 뮤지션을 라인업에 올렸다. 첫째 날에는 방송인 정형돈과 래퍼 데프콘이 결성한 ‘형준이와 대준이’, 음원 강자로 꼽히는 인기 여성 인디 듀오 볼빨간 사춘기 등이 출연했고, 둘째 날에는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이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들의 출연을 보는 관객 반응은 긍정적이지 만은 않았다. ‘형준이와 대준이’로 출연한 정형돈은 부족한 라이브 실력을 개그로 넘어가려는 안일한 태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악동뮤지션 이찬혁은 커버곡을 부를 때 악보 보면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등 다소 준비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직장인 김모(26) 씨는 “흥미 차원에서는 좋았다”면서도 “페스티벌 취지에 맞게 인지도가 없더라도 더 많은 록밴드들을 출연시켰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직장인 박모(30) 씨는 “레이지본, 브로콜리너마저, 이승열 등 정작 보고 싶었던 뮤지션들의 공연은 자정이나 새벽 시간대에 펼쳐져 아쉬웠다”고 말했다.
총 3일간 열리는 ‘펜타포트’는 13일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마지막 날에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EDM 듀오 저스티스를 비롯해 이디오테입, 5세컨즈오브서머, 자이언티, 솔루션스, 몽니, 문댄서즈 등이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