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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두 달 공쳤어"…염전에 불어닥친 보릿고개



사회 일반

    [르포]"두 달 공쳤어"…염전에 불어닥친 보릿고개

    재고 넘치고 소금값 매년 하락…7~8월 집중호우로 추가 생산 '올스톱'

    지난 28일 찾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공생염전. 7~8월 이어진 집중 호우로 천일염 생산이 중단된 채 작업자들을 찾아볼 수 없는 염전에는 잡풀만 무성하다. (사진=신병근 기자)

     

    "소금이 팔리지 않으니, 어디 먹고 살겠어… 이제 집어치워야겠어…."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던 올 여름, 지난 28일 또다시 폭우가 쏟아졌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공생염전'에서 30년을 천일염만 생산해온 이모(62)씨는 잦은 비때문에 '두 달 째 공치고 있다'며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7~8월은 한 해 중 소금 생산이 가장 많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올해 경기지역에 내린 비는 평균 1천167.3㎜로, 지난해 같은 기간 775.7㎜보다 50.5%인 391.6㎜가 더 내렸다.

    염전은 최소 나흘 가량은 계속해서 비가 오지 않아야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씨의 말처럼 지난 두 달은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였다.

    한창 소금꽃이 만발해야 할 염전은 고인 빗물과 잡풀로 뒤덮였고, 손수레와 밀대를 끌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염부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씨는 "1년 수입이 아무리 안 되도 3천만 원은 돼야 하는데 올해는 2천만 원을 조금 넘을 것 같다"며 "인건비도 안 나온다. 며칠에 한 번씩 작업해서 인건비나 나오겠냐"며 고통을 토로했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공생염전에서 30년 간 천일염을 생산해 온 이모(62)씨가 재고염이 가득 쌓여 있는 창고 안에서 소금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 소금값 지속 하락 + 불투명한 판로 + 신규 생산 '제로' = 겨울 보릿고개

    자연스럽게 창고는 '텅' 비었을 거라 생각하고, "창고 안을 한 번 보여달라"는 요청에 이씨는 연신 자물쇠만 만지작 거렸다.

    몇 분여의 간곡한 설득 끝에 마침내 창고 문이 열렸다. 그런데, 텅 비었을 거라 예상했던 창고안은 하얀 소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4~6월 생산한 천일염 140여톤(20㎏들이 7천 포대 분)이 팔리지 않아 그대로 쌓여 있었다.

    이씨는 "(재고염이) 많이 쌓여 있는데 이곳에만 10만 포대 분이 쌓여 있다"며 "작년 수매도 얼마 안 된다. 지난해 수매된 게 880포대 정도인데, 올해는 확정된 게 하나도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소금값은 매년 하락하는데다 판매처를 확보하지 못해 재고염 소진이 더디다는 것. 더욱이 전국 평균 천일염 가격(20㎏들이 1포대 분)은 2015년 5천~6천여 원, 2016년 4천여 원, 올해 2천~4천여 원으로 하락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재고염을 모두 판매한다 해도 올해 7~8월 생산된 천일염이 사실상 전무해 창고를 새롭게 채울 소금이 없게 됐다.

    천일염 생산은 통상 9월쯤 마감된다. 재고염을 모두 팔아도 농가들은 겨울 김장철과 이듬해 설까지 생계를 유지할 7~8월분 소금 생산량이 '제로'라는 얘기다.

    천일염 생산농가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지난 28일 찾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공생염전. 소금들로 가득차 있어야 할 손수레가 텅텅 비어 있다. 이곳 염전의 생산은 7~8월 집중된 호우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사진=신병근 기자)

     

    ◇ 과잉생산에 염전끼린 가격 경쟁…"이대로 가다간 다 때려칠 판"

    국내 천일염은 전남 신안에서 최다인 85%, 영광 10%, 경기도 화성과 안산 등에서 나머지 5% 가량을 생산한다.

    염전 농가는 염전끼리 가격 경쟁이 붙는 탓에 소금값이 떨어지고 있다며 하소연한다.

    폭우가 내린 지난 28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공생염전. 이곳에서 13년 째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는 이모(62)씨가 장대비 속에서 잡풀을 제거하고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공생염전에서 일 하는 또 다른 이모(62)씨는 장대비 속 잡풀을 제거하며 목청을 높였다.

    그는 "소금생산이 많다 보니 농가에서 경쟁을 한다. 가격을 신안과 같게 하면 판로도 제자리로 돌아갈텐데… 중구난방이다"며 "저 집에서 5천 원에 팔면, 여기서 4천500원에 팔고, 그러면 또 저기서 4천 원에 파니까…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명의 이씨는 이구동성으로 "타산이 안 맞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데, 집어치우려 한다. 더 하다간 사람 죽겠다. 다 때려치울 사람들이다, 다…"라며 망연자실했다.

    ◇ 해수부 "소비처 확대에 주력"…수매계획은 '아직'

    정부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대한염업조합은 전국에서 과잉생산되고 있는 천일염은 결국 헐값에 매각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으로,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 수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조합 관계자는 "재고가 쌓이면 유통업체가 요구하는 가격에 어쩔 수 없이 헐값에라도 파는 상황이 온다"며 "평균가 보다 훨씬 떨어지는 가격에 소금을 팔아야 하니 생계 유지가 당연히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해양수산부는 중간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처를 직거래 할 수 있는 체계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천일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원산지표시제'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천일염 생산농가들이 절실히 바라는 정부 차원의 수매계획은 아직 수립되지 않은 실정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수매와 관련해 지난주에 첫 논의를 했다"며 "이번주에 조합과 생산자단체가 만나 회의를 한다고 했으니 그 회의 이후 다음주쯤 다시 날을 잡을까 한다"고 밝혔다.{RELNEWS: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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