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라디오스타' 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 31일 다음 아고라 '청원'란에 올라온 '김구라 라스 퇴출을 위한 서명운동' 참가자가 목표인 2만 명을 훌쩍 넘기며 3만 명을 향해 가고 있다. 이후 김구라 퇴출을 요구하는 또 다른 청원이 잇따르고 있으며, '김구라 퇴출 반대한다' '김구라 응원한다' 등의 청원도 올라오면서 사태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이번 퇴출 요구가 불거진 곳은 지난 30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였다. 당시 게스트로 출연한 리포터 김생민의 절약이 몸에 밴 경제관념이 이슈로 소개됐고, 이를 접한 대다수 MC들과 게스트들은 '소금' '짠돌이' 등의 표현으로 웃음을 유발했다.
이날 방송에서 "절약을 위해서 사람을 멀리하고 후배를 안 본다" "등에 업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바쁘면 돈을 안 쓰게 된다"는 김생민의 말에 출연진은 폭소를 터뜨렸지만, 이를 지켜보던 다수의 시청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돼 버린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씁쓸해 했으리라.
하지만 이 과정에서 출연진은 김생민의 경제관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제작진은 그들의 이러한 표정과 몸짓을 클로즈업하는 식으로 강조했다. 물론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조치였겠지만, 해당 프로그램을 보는 많은 시청자들이 김생민과 같은 경제관념을 지녔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비판은 평소 상대를 깎아내리는 독설로 이름을 알린 김구라에게 집중되는 흐름을 보였고, 그에 대한 퇴출 운동으로 번졌다.
◇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김구라에게 덧씌워진 '갑질' 이미지김구라 퇴출의 이유로 따라붙는 단어들을 보면 시청자들이 이번 일을 받아들이는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수만 명이 참여한 김구라 퇴출 서명운동에는 '안하무인 MC 김구라의 라스 퇴출을 위한 서명 운동'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알다시피 '안하무인'은 눈 아래에 보이는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사람을 업신여기는 이들을 비판할 때 활용되는 표현이다.
한 서명 참여자는 "기본이 된 사람은 강한 자에 강하고, 약한 자에 약하다"며 "김구라는 강한 자에게 한없이 약하다"고 적었다. 또 다른 참여자는 "강자에는 비굴한 사람,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네요"라고 전했다. "서민 무시하지 마세요, 신흥귀족연예인들" "김생민뿐만 아니라 근검절약하는 서민들한테 막말한 거나 마찬가지" 등의 의견도 눈에 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현재 김구라의 이미지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병폐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는 '갑질' 이미지가 그에게 덧씌워진 셈이다.
트위터 사용자 '@K*****'는 "게스트들한테 급수 매겨가며 인지도 낮으면 무시하고, 자기보다 학벌·재력·인기가 높은 사람 앞에서는 짝 찌그러지잖아"라고 지적했다. '@k*******'는 "방송 살짝 봤는데 김구라는 머릿속에 게스트와의 서열을 미리 정해놓고 반말 내뱉는 거 정말 듣기싫죠"라고 비판했다.
사실 지난 10여 년간 김구라의 이러한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해 온 것은 방송사들이다. 개그 프로그램 등에서 권력에 대한 풍자가 사라지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와 조롱, 비하가 판치게 된 시기와도 맞물린다.
그 사이 갈수록 양극화 돼 온 한국 사회는, 절대 소수의 권력자에게 절대 다수의 힘과 돈이 쏠리면서 '헬조선'으로 전락했다. 결국 이러한 흐름을 절감해 온 많은 국민들은 지난 겨우내 추운 광장에 나가 촛불을 밝혔고, 선순환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김구라는 논란이 커지자 지난 31일 연예·스포츠 매체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MC로서 분위기를 띄어주려는 의도였는데 본의 아니게 그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신 것 같다"며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시청자들께 불편함을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앞으로 더 사려 깊은 방송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사과에도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치인·재벌가 등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익히 해 온 '본의 아니게'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이라는 전제가 사과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만드는 탓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김구라를 비롯한 출연진과 제작진은 뒤돌아볼 일이 있어 보인다. 그간 사회적 약자·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을 간과해 온 것은 아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