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선규. (사진='청룡영화상' SBS 방송화면 캡처)
올해 청룡영화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상자를 꼽으라면 명실 공히 배우 진선규일 것이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출신 폭력배 위성락 역으로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인 그는, 지난 25일 열린 제38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이름은 수상 소식 이후부터 다음 날까지 종일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맴돈다. 남우주연상이나 여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와 나문희보다 진선규의 이름이 더 위에 있다. 덩달아 그가 수상소감 중 밝힌 아내이자 동료 배우인 박보경까지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그저 여러 수상 중 하나로 치부해도 될 그의 수상 소식에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 걸까.
◇ 심사위원마저 전원 ‘몰표’, 진선규의 연기력일단 영화 범죄도시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연기력을 꼽아야 할 것이다. 받을 자격이 충분한 배우가 받았다는 의미이다. 그가 수상소감에서 “저 조선족 아닙니다”라고 밝힐 정도로, 그는 ‘조선족’(?)스런 연기를 너무도 완벽하게 펼쳐,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 후보는 진선규 외에도 김대명(해빙), 배성우(더킹), 김희원(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유해진(택시운전사) 등이 있었다. 사실 이 중 누가 받아도 부족함이 없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 이들이다. 그럼에도 심사위원 8명은 전원 김선규에게 줬다.
영화 '범죄도시' 스틸컷. (제공 사진)
청룡영화상 주최사인 <스포츠조선>이 올린 심사평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심사위원들은 "진선규가 없었다면 '범죄도시'는 안 됐다. 윤계상의 악역도 진선규가 옆에서 균형을 맞췄기 때문에 완성될 수 있었다. 주연급 조연이라 평해도 좋을 만큼 싱크로율 높은 열연을 펼쳤다. 압도적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렸던 후보로 '범죄도시' 영화를 불편하게 본 관객마저도 진선규의 열연을 부정하지 못했다. '범죄도시'를 보고 진선규에 대해 궁금해져 필모그래피를 찾아봤는데 영화는 물론 드라마까지 자신의 스펙트럼을 극대화한 배우더라. 진선규는 올해 최고의 발견이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작품이 아쉬웠지만 김대명의 연기도 인상적이었고 설경구와 임시완의 관계를 더 살아나게 만든 김희원도 뛰어났다. 주인공도 아닌데 중심을 잡은 배성우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올해 청룡영화상 조연상은 심사위원 전원에게 8표를 받은 진선규에게 돌아가 이변 아닌 이변의 수상 결과가 펼쳐지게 됐다. (관련기사 : [38회 청룡] '이유있는 선택' 청룡 심사표를 공개합니다 中 / 스포츠조선, 2017.11.26)
◇ 무명생활 12년…한편의 영화 같은 배우 인생하지만 그저 ‘연기력’만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호응이 뒤따르지는 않았다. 그가 수상자로 호명되면서부터 소감을 마칠 때까지 보인 ‘폭풍 눈물’, 그리고 그 눈물이 이해될 수밖에 없는 ‘배우 인생’, 즉 ‘진선규’라는 인물의 스토리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그가 이름을 알린 것은 올해 개봉한 ‘범죄도시’이지만, 그의 연기 인생은 12년 전부터 시작했다. 그는 2004년 졸업과 함께 함께 놀던 친구들과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를 창단했다.
이후 10년간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했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늘근도둑 이야기’, ‘올모스트 메인’, ‘아가사’, ‘난쟁이들’ 등에 출연했고, 이를 바탕으로 탄탄한 연기력의 소유자라는 평을 받았다.
배우 진선규. (사진=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 제공)
경제적으로 힘든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진선규뿐만 아니라 연극을 주 무대로 하는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진선규는 연기를 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고백한다.
"힘든 순간이 다 있었겠죠. 하지만 제가 좋고 즐거웠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거든요. (웃음) 현실적(경제적)으로 힘든 건 조금 있을 수 있지만 충분히 버티면서 즐겁게 살았다. 어떤 배역을 맡았을 때의 고민은 당연히 힘들지만, 결과물이 나온 걸 보면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 결국 만들어냈다는 희열도 있고. 그래서 막 부대끼거나 힘든 건 없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웃음)” (관련기사 : '범죄도시' 진선규 "제가 씬 스틸러라고? 잘 모르겠다" 中 / CBS노컷뉴스, 2017.11.9)
그는 약 10년간 연극, 뮤지컬 무대에 서다가 활동 영역을 스크린과 안방극장으로 옮겼다. 드마라 '무신', '오만과 편견', '육룡이 나르샤', '여자를 울려' '닥터스'에 출연했다. 올해는 영화에 얼굴을 더 비쳤다. '불한당'에서 부패한 보안계장 역으로, '남한산성'에서는 충직한 장수 이두갑 역으로 열연했다.
"연극을 주로 하다 영화를 하니 제 친구들도 '이제 잘됐네!' 그런다. (웃음) 누구나 그럴 거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연극하는 분들은 다 갖고 계시니까. 그래도 저는 너무 즐겁게 걸어왔고, 살면서 받았던 걸 베풀면서 또 즐겁게 가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앞으로 20년, 30년 더 연기를 할 거고 (힘듦도) 과정의 일부니까 괜찮다. 좋아서 한다는 마음이 크다." (관련기사 : '범죄도시' 진선규 "제가 씬 스틸러라고? 잘 모르겠다" 中 / CBS노컷뉴스, 2017.11.9)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그저 ‘힘들었다’로 추억하지 않는다.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좋아서 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그는 늘 "좋았다"고 답했다.
청룡영화상에서 진선규가 흘린 눈물은 그저 운 좋게, ‘좋은 영화’와 ‘좋은 캐릭터’를 만나 '상'을 받았다는 데 있지 않다. 10년 넘는 무명배우의 생활, 그로 인해 찾아온 경제적.육체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연기에 대한 진심과 애정, 그 뒤를 받쳐준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 등.
그가 걸어온 길을, 그래서 그가 흘린 눈물의 무게를 알기에, 윤계상은 진선규가 남우조연상을 받은 뒤 다음과 같은 글을 자신의 SNS에 남겼다. “진심, 진정성. 그동안의 노력. 선규 형, 진심으로 축하해. 난 정말 눈물 난다.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다”. 실제로 윤계상은 진선규가 상을 받자 엉엉 울면서 '너무 고생했다'며 응원했다고 한다. {RELNEWS:right}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