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사진 제공=대한테니스협회)
"또 한번 결승에 올라 기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테니스의 황제'는 매너도 좋았다. 로저 페더러(세계랭킹 2위, 스위스)는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준결승전에서 불의의 기권패를 당한 정현(58위)에게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정현은 2세트 게임스코어 2-5에서 심판에게 다가가 기권을 선언했다. 앞서 정현은 게임스코어 1-4 상황에서 메디컬 타임아웃을 요청하고 왼쪽 발바닥 치료를 받았다.
정현이 이번 대회처럼 이틀에 한번 꼴로 5세트 게임을 연이어 치른 적은 없었다. 정현은 페더러와 4강전을 치르기 전 이미 발바닥에 물집이 많이 잡혀있었다. 일부는 터지고 피멍까지 든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페더러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정현은 첫 세트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몸 상태에 이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2세트 들어 정현이 다소 느려지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됐구나 생각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정현은 메디컬 타임아웃이 끝난 뒤 코트로 돌아와 곧바로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켰다. 다음 게임을 마치고 기권을 선언한 것을 감안하면 통증을 참고 투혼을 발휘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페더러는 "또 한번 결승에 올라 기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고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자신은 결승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뤘지만 부상 때문에 100%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현 (자료사진=노컷뉴스)
이어 페더러는 부상을 안고 뛴 정현의 평정심을 높게 평가하면서 "그는 다음 단계로 성장할 것이다. 언젠가 세계 랭킹 10위 안으로 진입할 것 "이라며 "그는 훗날 대단한, 대단한 선수로 성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페더러는 1세트에서 정현을 6-1로 눌렀다. 정현의 첫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했다. 정현은 0-2에서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켰지만 이후 내리 4게임을 내줬다. 페더러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고전했다. 생애 첫 메이저 4강전에 대한 부담 탓인지 평소보다 실수도 많았다.
하지만 정현은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4강 무대에 올라 한국 테니스의 역사를 다시 썼다. 16강전에서 정현에게 패한 전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와 '황제' 페더러는 정현이 세계 톱10 레벨의 선수가 될 것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얻은 것이 많은 대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