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각규 부회장
롯데그룹의 고위급 임원들은 앞으로 업무를 위한 것이든 업무외적인 것이든 골프를 치기 어렵게 됐다.
지난달 신동빈 회장이 구속되자 경영공백을 메우기 위해 들어선 황각규 부회장체제 즉 비상경영위원회가 일종의 골프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황 부회장은 이달초 열린 비상경영위원회에서 '그룹 소속 고위급 임원들은 골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고 부회장급 이상 나머지 회의 참석자 5명도 동의해 사실상 그룹의 방침으로 정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흘러나오는 얘기로 미뤄볼 때 단순한 권고 수준의 안은 아닌 것 같다. 롯데 내부인 끼리 치는 골프, 거래처 사람들과 치는 골프는 안되고 백화점이나 마트 등의 고객과 하는 골프는 된다고 하니 가이드라인까지 서 있는 셈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최근 있는 비상경영위 회의에서, '대표이사나 고위임원들은 회사의 얼굴인데 회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밖에 나가 웃고 떠들고 하는 것은 한국의 정서상 안맞을 수 있다'는 논의가 있었다"며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한 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롯데계열사의 한 직원은 "그룹이 어려운 상황에서 임직원들이 자중하자는 취지인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롯데맨들이 그룹의 결정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미 비상경영위의 지침은 사내에 공유된 것으로 보인다.
골프금지령은 그룹 내부 문화에 관한 한 황 부회장이 비상경영위원장에 취임한 지 처음으로 내린 조치다. 이로인해 롯데그룹은 회장이 구속된 상황에 더해 평소에 없던 행동제한 조치가 더해져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오너가 있는 대기업에서 비상대책위의 역할은 오너의 경영공백을 메우는 것 이상이기 어렵지만, 안팎의 시련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롯데그룹의 현실을 감안할 때 골프금지령은 경영진이 발휘해야할 상상력.인사이트와는 거리가 먼 다소간 생뚱맞은 조치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사드로 중국시장이 초토화됐고 차세대 성장동력인 면세점사업이 흔들리고 있으며 한일간 롯데의 지배구조 개편은 중단된 상황에서 총수가 석방되자 마자 시급히 처리해 나가야할 그룹현안은 그야말로 첩첩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비상경영위가 할 일은 그룹의 활력을 떨어트릴 골프금지령을 내리는 것보다는 '신동빈 석방 이후'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롯데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에 보다 많은 역량을 투입하는 것이 롯데에도 이롭고 신동빈 회장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의 조치는 최고 경영자 공백상황에서 분위기를 다잡아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면서 "과거 권위주의시대 공직자들을 다잡기 위한 방편으로 쓰이던 조치를 가장 트렌디한 유통기업에 취하는게 조금은 어색하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사업의 핵심축은 식음료 제조와 유통으로 'B to B', 'B to C'가 적절히 혼재돼 어떤 대기업보다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경영진의 제한조치로 그룹의 활력을 떨어트릴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