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청와대가 국회의원 시절 외유성 해외출장과 후원금 논란 등 각종 의혹으로 곤혹스런 처지로 내몰린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법적 판단을 의뢰하면서 여야 갈등은 2라운드 국면으로 들어섰다.
청와대는 12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로 중앙선관위에 ▲국회의원이 임기 말에 후원금을 기부하거나 보좌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주는 행위 ▲피감기관의 비용부담으로 해외출장을 가는 행위 ▲보좌직원 또는 인턴과 함께 해외출장 가는 행위 ▲해외출장 중 공휴일 관광 등 김 원장에게 제기된 4가지 의혹의 적법성 여부를 물었다.
청와대가 김 원장에 대한 2차 검증까지 마치고 '적격' 판단을 내렸음에도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공세가 꺾이지 않자, 중앙선관위 판단이라는 추가 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적절성 여부가 또다른 논란을 낳을 전망이다.
◇ 정치자금법 판단하는 선관위에 보좌관·관광 적법 물어청와대는 김 원장에 대한 각종 의혹이 쏟아질 때마다 조국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한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공직 수행 자격을 엄밀하게 검증했다며 일주일 가까이 인선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실제로 청와대는 김 원장 임명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수행 적격성을 묻는 200여개의 질문을 던져 철저하게 검증했다고 밝혔다.
임명 직후 한국당 등에서 '갑질 고액 강연료', '외유성 해외 출장' 등의 의혹을 추가로 제기하자, 청와대는 임종석 비서실장 지시로 민정수석실에서 2차 검증을 실시했고 역시 '적격'판단을 내렸다.
당시 청와대는 "국민 눈높이에는 맞지 않지만 불법은 없고 문제 없다"며 재신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앞서 김 원장이 19대 국회 임기 말 남은 후원금을 선관위 유권해석을 받고 처리했다고 밝힌 만큼, 후원금 부분은 선관위에서 불법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하지만 '보좌직원 또는 인턴과 함께 해외출장', '해외출장 중 관광' 적법성을 묻는 질의는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선관위 권한을 넘어서는 분야여서 청와대가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에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또다른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자금법은 '인턴 동행 해외출장', '출장 중 관광'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하고 있지 않아 결국 선관위가 기존 법문을 토대로 '해석'이라는 절차를 거쳐야하는데, 여야가 격돌하는 민감한 사안에 선관위 역시 청와대의 의뢰 의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안 출신 검찰 중간 간부는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청와대 의뢰에 대해 선관위는 법규정을 일일이 찾아 해석을 해야 한다"며 "과연 법규정에 명시하지 않은 부분을 선관위가 불법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검찰 간부는 "청와대 의뢰 사안을 꼼꼼히 읽어봤는데 도대체 왜 선관위에 법적판단을 맡긴 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답정너'(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묻는 요식행위)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선관위가 김 원장의 의원 시절 행위를 불법으로 해석할 경우, 한국당이 김 원장을 검찰에 이미 고발한 만큼 곧바로 수사기관에 이첩되는 부담감을 청와대가 미리 알았을텐데도 유권해석을 의뢰한 것은 '적법' 판단이 나올 것이란 자신감이 이미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사진=이한형 기자)
◇ 관행이란 이름으로 김기식 감싸기…야당과 확전 불사청와대가 19대, 20대 국회의원들이 16곳의 피감기관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에 나선 사례를 공개한 것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청와대는 피감기관 수천 곳에 대한 전수조사는 아니지만 무작위 답변을 통해 민주당 65건, 한국당 94건에 대한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건수를 공개하면서 김 원장에 대한 자질 공세를 펴고 있는 한국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조사 결과를 볼 때 김 원장이 자신의 업무를 이행하지 못할 정도로 도덕성이 훼손되었거나 일반적인 국회의원의 평균적 도덕감각을 밑돌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김 원장에게 제기된 의혹의 경우에는 특정인의 문제만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지만 여야 의원들의 해외출장 자체가 '관행'이었던 만큼, 김 원장만의 문제로 환원해 공직수행 적격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며 사실상 한국당을 상대로 확전(擴戰)을 선언한 셈이다.
하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건수 산정에 대한 자료를 공개할 수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없다"고 답했다.
한국당이 물타기 시도를 그만하라며 반발하고 있는데도 굳이 자료를 공개한 이유가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의원들의 해외출장 사례를 공개하는 것은 고위공직자 임명의 새로운 잣대를 만드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지만,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자체 조사에 의존한데다 원자료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인위적 통계라는 논란도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은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입법부에 대한 폭거이자 헌법 유린 행위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고,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국회의원의 해외출장 사례를 전수조사했다는 것은 독재로 가기 위해 대한민국 입법부 전체를 재갈 물리려는 추악한 음모이자 야당 말살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김 원장의 거취문제와 관련해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하는 것을 넘어 조국 민정수석 등의 검증라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