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청와대
'김기식 사태'가 블랙홀이 된 정국 한가운데서 갑작스럽게 성사된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간의 회동에서 특별한 합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강 대 강 대치 국면의 전환점이 될 성과가 나오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있었지만, 표면적으로는 두 사람이 서로의 할 말을 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에 "만남 자체 외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지만, 문 대통령과 홍 대표 입장에서는 나름의 성과가 있는 회동이었다. 두 사람 간 처음 이뤄진 일대일 만남의 의미는 뭘까.
◇ 文, 꽁꽁 얼어붙은 정국에서 최악은 넘겨
문 대통령은 이번 회동을 통해 여권을 코너에 몰아넣은 김기식 금감원장 사태에 대한 돌파구를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가 '해임할 정도의 잘못이 없다'며 김 원장을 옹호할 때마다 야당은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의 수위를 갈수록 높여 왔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나서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이뤄진 회동은 숨통을 틔우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남북 간 긴장이 양측의 실질적인 만남으로 누그러졌듯이 청와대와 제1 야당의 간의 긴장 수위도 대면으로 한 단계 낮아진 것이다.
복수의 여당 의원들은 "정치는 타이밍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면서 "질식해 버릴 거 같은 정국에서 숨통이 열렸다"고 전했다.
이번 회동이 남북 문제가 주요 현안이었지만, 김 원장에 대한 해임 요구에 문 대통령이 경청을 한 것은 '퇴로' 수순을 명확히 한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검찰이 전격적인 강제 수사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청와대 공격에 앞장섰던 한국당 장제원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제1야당과 실질적 소통의 장이 마련된 데 대해 평가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인사 검증 시스템을 문제 삼으며 청와대를 겨눴던 야당의 공세도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박범계 대변인은 "가장 중요한 남북문제를 놓고 소통의 첫 단추를 뀄다"면서 "다른 현안을 놓고 확전의 분위기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 洪, 선거 앞두고 여야 1대1구도 부각
이번 회동이 홍 대표에게는 제1야당 대표로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자리가 됐다.
홍 대표는 자신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문 대통령과의 단독 회동에서 할 말을 다하면서 여야 1대1구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대통령 개헌안을 철회하고, 남북회담과 관련해선 일괄 북핵 폐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등의 8가지 요구사항을 강한 어조로 밝혔다.
특히, 회동 자체가 문 대통령의 요청으로 이뤄진 점에서도 체면이 살게 됐다.
지금까지 홍 대표는 116석을 거느린 거대 야당의 대표였지만, 입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황이었다
문 대통령의 70%를 넘나드는 높은 지지율 속에서 홍 대표는 공천과정에서 당내 반발을 사며 궁지에 몰렸다.
여기에다 김문수 전 지사(서울), 이인제 전 최고위원(충남) 등 '올드보이' 논란을 일으키는 등 공천 성적도 신통치 않아, 6월 지방선거가 홍 대표에게는 최대 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홍 대표는 6월 지방선거가 낭떠러지가 될 뻔했는데 회동을 해서 손해 볼 게 전혀 없다"고 전했다.
회동 이후 김 원장의 거취가 결정되면 홍 대표는 자신의 성과로 가져갈 수도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임명 철회 요청에 (문 대통령의) 즉답은 없었지만, 김 원장은 집에 보내는 게 아닌가 느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