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민간인학살을 자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자체 조사했던 기록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기록은 지난 1968년 베트남 파병부대가 퐁니·퐁넛마을 주민 수십명을 살해했다는 의혹을 당시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조사한 보고서에 관한 것이다.
국정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측이 이 기록을 공개하라며 서울행정법원에 낸 정보공개 청구소송에 대해 "소송을 각하하거나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최근 밝혔다.
지난해 10월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가 해당 보고서의 '목록'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던 데 이어 비공개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의견서에 따르면 국정원 소송대리인은 "공개 청구된 '목록'은 만들지도 않았고, 현재 갖고 있지도 않다"고 했다.
베트남전 퐁니퐁넛 사건 생존자 응우옌티탄 씨등이 1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그러면서 "앞서 담당 공무원이 문서 목록이 아니라 문서 자체가 정보공개 청구된 것으로 착각했다"며 "그래서 '부존재'가 아닌 '비공개'로 잘못 처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국정원은 "목록이 없다"는 주장이 재판부에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이 사건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언론보도를 인용하며 "베트남정부가 내부 분열 등을 우려하고 우리정부의 사과를 거부하는 것이 입장인 이상 어떤 방식이든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외교관계를 고려할 때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공식 확인이 이뤄진다면 향후 베트남정부의 입장이 바뀌어 대한민국에 사과, 배상 등을 요구하면 외교적 협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민변 측은 "해당 보고서가 기록된 시점의 규정을 보면 공문서를 보관할 때 문서의 목록을 편철해 보관하게 돼 있다"면서 "이런 규정이 없었더라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해 중앙정보부가 조사한 기록에 목록을 만들지 않았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 사건 정보는 50년 전 역사적 사실에 관한 것이지 현재 외교적 사안에 관한 정보가 아니다"라며 "역사적 사실에 관한 정보를 은폐하는 것이 오히려 대한민국의 국익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968년 2월 12일 해병대 청룡부대 1대대 1중대가 베트남 중부 퐁니·퐁넛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뒤 주민 7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주월 미군사령부가 한국군이 학살을 자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한국군은 자체 조사결과 '베트콩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며 부인했다.
최모 중위 등 1중대 소속 소대장 3명은 다음 해 11월 중앙정보부 조사를 받았다고 지난 2000년 언론에 증언했다.
민변 측은 목록에 대한 공개가 이뤄진다면 목록에 기재된 개별 정보, 즉 당시에 어떤 조사가 이뤄졌는지 등에 대해서도 공개를 요청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