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원대 횡령 등의 혐의로 피소된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이장석 전 대표가 2016년 8월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는 모습. 현재 이 전 대표는 횡령 등의 혐의가 인정돼 복역 중이다.(자료사진=박종민 기자)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뒷돈 거래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한국 프로야구를 주관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로서는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뒷돈 거래를 주도한 구단 수뇌부, 즉 환부만을 도려내느냐, 아예 구단 자체를 매각하느냐다. 물론 당장은 어렵더라도 리그를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다.
KBO는 30일 8개 구단으로부터 자체 조사 결과, 과거 히어로즈 구단과 현금 포함 트레이드 계약 중 신고하지 않거나 발표와는 다른 계약이 있었음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롯데와 LG, 두산, 삼성, KIA, 한화, NC, kt 등이 총 131억 원이 넘는 돈을 신고하지 않고 넥센과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SK만이 이런 거래에서 떳떳했다.
이는 양도·양수와 관련한 허위 보고에 해당된다. 야구 규약을 어긴 것이다.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트레이드가 결국 뒷돈이 끼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향후 KBO의 특별조사위원회 정밀 확인 작업에 따라 액수가 더 커질 수도 있다.
결국 '빌리 장석'으로 불리던 이장석 전 히어로즈 구단 대표의 신화는 불법적 선수 팔기 위에 쓰여진 허구였던 셈이다. 이 전 대표는 2008년 경영난을 겪던 현대 야구단을 흡수해 히어로즈 구단을 창단했다. KBO 가입금조차 내기 어려웠던 상황을 극복하고 2013년부터 4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강팀으로 히어로즈 구단을 키웠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선수 뒷돈 거래의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히어로즈 구단의 이같은 행태는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모기업이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은 히어로즈로서는 모그룹으로부터 수백억 원이 넘는 구단 운영비를 지원받는 다른 대기업 구단과 달리 항상 자금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상황이 극심하게 어려웠던 히어로즈 구단 초창기 최소 12억5000만 원에서 38억 원까지 대형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2007년 해체 위기를 맞은 현대 야구단의 인수 기업 찾기에 실패한 KBO로서도 궁지에 몰린 끝에 구원자로 나선 히어로즈 구단의 파이어 세일을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돈이 많았던 다른 구단들도 전력 보강의 손쉬운 수단으로 히어로즈를 이용하는 등 리그 전체가 어떻게 보면 공범이었다.
넥센 히어로즈는 2012년 전 메이저리거 김병현(오른쪽)을 전격 영입했지만 KIA로부터 5억 원의 뒷돈을 받으면서 결과적으로 남는 장사를 했다. 사진은 2012년 당시 히어로즈 입단 회견 때 이장석 전 구단 대표가 함께 한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하지만 히어로즈 구단의 선수 팔기는 도를 넘었다. 구단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시기에도 뒷돈 거래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KBO 발표에 따르면 히어로즈와 각 구단들의 뒷돈 거래는 지난해만도 3번, 총액 8억 원에 이르렀다. 금액이 크지 않다고 해도 클린 베이스볼을 지향하는 KBO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다.
더군다나 히어로즈는 이장석 전 대표가 수십억 원대의 횡령과 배임으로 구속된 상황이다. 개인 비자금과 인센티브 등 80억 원에 이르는 돈이 불법적으로 쓰였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알토란 같은 선수들을 팔아 개인의 배를 부르게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KBO로서는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2008년 히어로즈 구단 창단 당시만 해도 8구단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전 대표의 '봉이 김선달' 같은 경영을 어느 정도 묵인해야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더 이상 히어로즈 구단의 불법적 행태를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히어로즈 구단의 환부, 즉 이장석 전 대표만을 도려낼 것이냐, 아예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히어로즈 구단 자체를 매각하는 것이냐다. 전자는 이 전 대표의 KBO 리그 영구제명이고, 후자는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대기업 구단 물색이다.
후자의 경우는 '제 2의 이장석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국민 스포츠'로 각광받는 프로야구이기에 실제로 구단 운영 의사를 보이는 대기업은 있다. KBO로서도 골치 아픈 일 없이 리그를 운영할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다만 현재 히어로즈 구단의 시스템이 사라지는 점은 아까운 일이다. 모기업 후원 의존도가 큰 기존 구단과 달리 자생의 기틀을 마련한 히어로즈는 KBO 역사에 새 모델을 제시한 점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히어로즈는 구단 운영에 큰 어려움은 없다. 연간 100억 원대의 후원을 받는 넥센 타이어 등 안정적인 스폰서가 있고, 광고와 입장 수익 등 다각적인 수입원이 있다. 창단 이후 10여 년 동안 숱하게 선수들을 팔아치웠음에도 여전히 강호로서 전력을 갖추고 있다. 히어로즈에 밀렸던 재벌 구단으로서는 사실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구단 수뇌부다. 이 전 대표와 남궁종환 전 부사장 등이 횡령 등으로 구단 돈을 물쓰듯 썼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법원으로부터 철퇴를 받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을 배제하면 될 일이다. 이 전 대표는 아직도 구단 경영권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미 패소 판결을 받아 구단 지분 40%를 넘겨야 함에도 이를 주지 않고 버티는 것도 모자라 유상 증자로 경영권 방어에 나설 태세다. KBO의 징계로 직무정지 상태임에도 구단을 옥중에서 경영한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이 전 대표 세력을 뺀 나머지 구단 주주들은 투명하게 히어로즈를 운영할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와 지분 분쟁에서 승소한 홍성은 레이니어 그룹 회장과 박지환 씨 등 히어로즈 주주들은 이장석 전 대표 세력들을 배제한 가운데 한국 프로야구와 팬들을 위해 구단을 운영할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히어로즈 사태에 대해 KBO도 고민이 많다. 우선 KBO가 엄연한 회원사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재적 위험성이 다분했던 히어로즈 구단을 승인해 문제를 키운 것도 KBO다. 결자해지라고, 리그의 도덕성에 심각한 훼손 행위를 한 히어로즈 구단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도 KBO다.
KBO는 일단 리그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신중한 입장이다. KBO 관계자는 "만약 히어로즈 구단의 파행 운영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면 시즌 후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 시즌 뒤에는 어떻게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 KBO 관계자는 "현재 상황으로서는 KBO 규약에 따라 이장석 전 대표에 대한 영구제명과 회원사 자격 박탈 등의 논의는 검토할 수 있다"면서 "다만 지분 문제 등 복잡한 상황이고, KBO가 구단 매각 등을 진행할 권한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