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사진=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제공)
"작년에 20주년이라 살짝 들떠있었는데 얼마 전 조용필 선생님이 50주년인 걸 보고 나대지 말아야겠다고 느꼈어요. 하하. 그래도 20년 정도 해보니 이제 밴드음악을 좀 알 것 같네요"
1997년 데뷔해 올해로 데뷔 21주년을 맞은 밴드 자우림(紫雨林) 멤버들의 말이다.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뜻의 독특한 팀명처럼 자신들만의 확실한 정체성을 가진 음악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은 이들은 9집 '굿바이, 그리프.(Goodbye, grief.)' 이후 5년 만에 새 정규 음반을 들고 팬들 곁을 찾았다.
"이전 회사와의 계약 종료 이후 새 회사로 옮기는데 시간이 걸렸다. 개인 앨범을 작업하기도 했다. 그래도 작년 말 싱글을 내고 페스티벌을 비롯한 각종 공연 무대를 많이 했다. 숫자로는 5년만이지만 체감상으로는 9집이 재작년쯤 나왔던 것 같다" (보컬 김윤아)
"멤버들 모두 게으른 모범생이다. 그래서 날짜가 밀리는 일도 없고 미리 하는 일도 없다. (미소)"(베이스 김진만)
김윤아
5년이라는 긴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자우림은 자신들만의 특유의 색을 잃지 않았다. 멤버들은 전작 9집에서 자우림만의 사운드가 완성됐다고 입을 모았다. 10집은 그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한층 발전한 앨범이라고 했다. 앨범 제목을 아예 '자우림'으로 정했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1,2,3집은 아무것도 몰랐던 채로 만든 희한한 앨범이었다. 4집부터는 밴드 사운드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그 뒤 8집까지 즉흥적인 에너지를 담는 데 중점을 뒀다. 9집이 자우림만의 밴드 사운드가 완성된 분기점이다. 이번 10집은 거기서 조금 더 확장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자우림만이 할 있는 사운드와 세계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데 10집이 바로 자우림 그 자체인 앨범이다" (김윤아)
"예전 앨범들이 라이브 하는 맛이 있는 앨범이었다면, 9집부터는 스튜디오 앨범으로 지향점이 바뀌었다. 앨범의 퀄리티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때부터 우리만의 사운드가 만들어 졌다고 생각한다" (기타 이선규)
이선규
10집 '자우림'에는 지난해 말 선공개된 'XOXO'와 타이틀곡 '영원히 영원히'를 비롯해 '광견시대(狂犬時代)', '아는 아이', '슬리핑 뷰티(Sleeping Beauty)', '있지', '기브 미 원 리즌(Give me one reason)', '사이코 해븐(Psycho heaven)', '아더 원스 아이(Other one's eye)',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등 총 10곡이 수록됐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는 피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작중 화자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청년인 어떤 사람이도록 했다. 데뷔 때부터 항상 자우림 앨범의 주제는 같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도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구성적인 측면에서는 한 편의 단편소설집 같다는 느낌을 받게끔 했다" (김윤아)
"뉴스를 보며 많은 영감을 얻는다"는 자우림. 멤버들은 현 시대상이 잘 반영돼 있는 곡을 꼽아달라고 하자 1번 트랙 '광견시대'와 4번 트랙 '있지'를 꼽았다.
"요즘 2,30대 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쓸쓸함을 달랠 수 있는 곡은 4번 트랙 '있지'가 아닐까 한다. 1번 트랙 '광견시대'에는 사회 전체에 팽배해있는 분노, 억눌림, 부당한 일을 겪을 때의 마음이 담겨있다" (김윤아)
김진만
위와 같은 같은 물음에 김진만은 12년 전 발매된 6집의 타이틀곡 '샤이닝'을 언급했다.
"'샤이닝'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곡이 나올 당시의 2, 30대 분들보다 요즘 2,30대 분들이 오히려 더 공감을 많이 하시더라. 연주하는 입장에선 좋지만 답답한 지점이 있다.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가 가사의 내용인데 요즘 젊은 친구들이 참 힘들구나 하고 느낀다. 나라가 걱정되기도 하고" (김진만)
그러자 이선규는 "20년이 지나도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 자우림이 가진 힘"이라고 말을 보탰다. "1집 당시 '일탈'이라는 곡을 만들며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 역시 '일탈'이라는 단어를 던지면 비슷한 예를 떠올리더라. 자우림 노래가 원래 그렇다" (이선규)
그런가 하면, 10집의 타이틀곡 '영원히 영원히'도 남다른 사연이 있는 곡이다.
"주변에 젊은 나이에 병이 생겨서 세상을 떠난 분들, 심각한 질병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분들이 이상하게도 많아졌다. '영원히 영원히'는 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쓰게 된 곡이다. 너와 영원히 행복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오늘, 지금 당장 행복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이고"(김윤아)
자우림은 이번 10집을 색깔로 표현하며 '진한 녹색', '어두운 자주색', '어두운 피색'을 언급했다. 또 그러한 앨범의 색깔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 앨범 재킷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재킷 디자이너분께 색깔은 '진한 녹색' '어두운 자주색' '어두운 피색'이고 질감은 벨벳처럼 촘촘하다'고 설명해 드렸더니 지금의 결과물이 완성됐다. 또 단편 소설, 어른용 동화같은 흐름의 앨범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동화책 같은 앨범 표지가 구성됐다. 아, 재킷 속에서 내가 들고 있는 보라색 꽃은 도라지꽃이다. 도라지꽃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인데 노래들은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 아이러니컬한 면이 자우림과 잘 맞지 않을까 싶어 택했다" (김윤아)
10집 '자우림' 커버
"언젠가 우리 이름으로 된 앨범 한 장 내면 정말 신기하겠다"는 생각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는 자우림은 어느덧 데뷔 21주년을 맞았고, 10번째 정규 음반을 내는 중견 밴드가 됐다. 멤버들은 "날이 갈수록 퀄리티 있는 음악과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커진다"고 입을 모았다.
"멤버들 모두 서로에게 감사한 지점이 있다, 누군가 더 많은 명예와 금전을 위해 엇나갔거나 '혼자할 거야'라고 주장했으면 팀이 유지되지 않았을 거다. 무엇보다도 팬들에게 감사하다. 저희끼리 아무리 재밌게 해도 저희 음악을 이해하고 들어주는 팬들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지 않나. 한 곡이 히트하는 건 운이 따르면 가능하다. 하지만 같은 색깔의 음악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은 그걸 원하는 청자들이 없으면 불가능 하다. 해가 갈수록 그런 면에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