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릭'만 신경 쓰다가 실패한 신태용 감독. (로스토프=박종민 기자)
신태용 감독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네 차례 평가전에서 전력을 감추고, 또 감췄다.
훈련은 몸 푸는 모습만 15분 공개한 뒤 전술 훈련은 철저한 비공개로 진행했다. 평가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평가전은 월드컵에 나설 전술을 시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만, 신태용 감독은 시험이 아닌 실험을 했다.
5월28일 온두라스전은 4-4-2, 6월1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은 3-5-2를 가동했다. 투톱은 손흥민(토트넘 핫스퍼)과 황희찬(레드불 잘츠부르크)이었다. 월드컵 직전 부상으로 빠진 권창훈(디종FCO)과 국내 평가전 출전이 어려웠던 장현수(FC도쿄) 등으로 인해 몇몇 포지션은 테스트 차원에서 선수들을 돌렸다.
그리고 전지훈련지인 오스트리아로 출국하기 전 23명 최종명단을 확정했다.
남은 평가전은 두 차례. 플랜A로 구상하는 전술을 맞춰보기에도 다소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신태용 감독은 전술, 전략의 극대화가 아닌 감추기에 집중했다. 신태용 감독은 "하고자하는 전술을 숨기면서 가져가야한다"고 말했다.
6월7일 볼리비아전은 4-4-2와 함께 황희찬-김신욱(전북) 투톱을 세웠다. 경기 후에는 "황희찬-김신욱 투톱은 트릭이라고 보면 되겠다. 더 깊이 있는 이야기는 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세네갈전도 베스트로 맞서지 않았다. 4-4-2 포메이션을 썼지만, 이번에는 손흥민-김신욱 투톱 조합이었다. 전면 비공개임에도 스웨덴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쓴 탓이다.
네 차례 평가전을 같은 멤버로 치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신태용 감독은 "훈련을 15분 공개한 다음부터 나머지 1시간 정도 훈련은 사실 조직 훈련 등 모든 것을 한다"면서 "그런 것을 밖에서 못 보기에 준비하고 있지 않은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가상의 스웨덴을 만들어 놓고 계속 담금질을 하고 있으니 지켜봐달라"고 자신했다.
이어 "내 머리에 이미 구상이 있는데 밖에서는 내 구상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실험이라고 한다. 무턱대고 실험하는 것이 아니다. 실험이 아닌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18일 스웨덴전에서 꺼내든 카드는 4-3-3이었다. 월드컵 직전 평가전은 물론 신태용 감독 부임 후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포메이션이다.
수비에 치중하다가 역습을 노린다는 복안이었지만, 선수들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공격의 핵심 손흥민이 슈팅조차 때리지 못했으니 결과는 완벽한 실패. 모든 초점을 맞춘 스웨덴전 0대1 패배로 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월드컵에서 포메이션을 바꾸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도 스웨덴전이 끝난 뒤 "월드컵을 준비할 때 각 팀마다 대응해 포메이션을 준비하지는 않는다"면서 "모든 팀이 매 경기마다 쪼개서 포메이션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태용 감독은 24일 멕시코전에서 다시 4-4-2로 돌아왔다. 측면에만 섰던 이재성(전북)을 투톱으로 올리고, 투톱에만 섰던 황희찬을 측면으로 돌리는 탓에 끌려다녔다. 하지만 둘이 제 포지션을 찾은 뒤 흐름을 찾았다. 손흥민의 골도 터졌다.해법은 평가전에서 가장 많이 쓴 4-4-2였다.
마지막 독일전은 멕시코전과 마찬가지로 4-4-2로 나갔다. 물론 선수 변화는 있었지만, 앞선 스웨덴, 멕시코전을 생각하면 정면 승부였다. 그 승부수는 통했다. 독일을 상대로 우리가 잘하는 축구를 했다. 그래서 특히 아쉬움이 남는 스웨덴전이다.
김환 JTBC 해설위원은 "스웨덴전은 준비가 잘못됐다. 결과적으로 이 경기를 잘했더라면 더 쉽게 나머지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멕시코전부터 준비한 것이 어느 정도 나왔기에 더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숨기는 건 좋지만, 선수들에게까지 혼란이 왔던 것 같다. 평가전때 연습한 포메이션을 바꾸는 등은 아쉬운 결정"이라면서 "인터뷰에서도 다소 논란이 될만한 단어를 쓴 것도 아쉽다. 뜻이 와전될 수 있는 단어 선택으로 인해 선수단이 큰 비판에 시달렸다. 선수단 사기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실수를 만회할 만한 독일전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은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