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릴레이=""> 44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도넛맨이 지목한 뱃사공입니다.힙합>
내공을 쌓다보면 언젠가 '빵' 하고 터지는 날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대타로 나선 타자가 통쾌한 역전 홈런을 때려내는 것처럼 말이다. 뮤지션들에게는 그러한 순간이 완성도 높은 앨범을 선보였을 때 찾아오는 편인데, 래퍼 뱃사공(본명 김진우)은 최근 3년 만에 내놓은 새 정규앨범 '탕아'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평단과 대중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묵묵히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해온 뱃사공은 밴드 사운드와 힙합을 적절히 혼합, 대체 불가한 음악 스타일을 완성했고, 그 위에 진심을 녹여낸 가사를 얹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최근 소속사 슈퍼잼레코드 인근 카페에서 만난 뱃사공은 "새 앨범에 대한 좋은 피드백이 많아서 자신감이 생겼다"면서도 "아직 홈런을 쳤다고 할 수는 없다. 가야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항상 '여기까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음악을 한다. 거창한 꿈 같은 건 없다. 지치지 않고 지금처럼 즐겁게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 해나가는 것이 목표다"
▷근황을 들려 달라.
=9월 1일 열릴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단독 콘서트는 처음인데 아직은 감흥이 없다. 무대에 오르면 느낌이 올 것 같다. 곡 작업 진행은 못 하고 있다. 비트는 받아놨지만, 풀어낼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상황이다.
▷최근 2집 '탕아'를 냈다.
=1집 '출항사'보다 사운드적으로 조금 더 발전시키려고 노력한 앨범이다. 한국 밴드 사운드를 담기 위해 힙합 프로듀서가 아닌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나잠수 형에게 곡을 받기도 했다. 원래는 파라솔과 카더가든에게도 곡을 받았는데 생각만큼 곡이 쉽게 풀리지 않아서 앨범에 담진 못했다"
▷한국 밴드 사운드를 담으려 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산울림, 장기하와 얼굴들, 파라솔, 원더버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등의 음악을 자주 듣는다. 밴드는 아니지만 검정치마 음악도 좋아한다. 한국 밴드 음악을 들어보면, 외국에서 들여온 장르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정서가 담겨있지 않나. 그게 왜 힙합에서는 안 되는지가 저에게는 의아한 부분이었고, 그래서 해보고 싶었다. 보통 좋아하는 걸 하고 싶게 되지 않나. 또, 그런 음악이 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스윙스, 장기하, 딥플로우, 블랭타임 등이 앨범 한줄평을 남겨줬더라.
=나잠수 형만 유일하게 음악 얘기를 해준 것 같다. (나잠수 - "래퍼보다 뮤지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뱃사공 어떤 기류에도 흔들리지않고 뱃사공이라는 장르를 이루다") 나머지는 음악 듣고 적어준 건지 저란 사람을 보고 적어준 건지 잘 모르겠다. 특히 슬리퍼 이야기는 왜...(웃음) (딥플로우 - "한껏 멋있어졌는데 여전히 쓰레빠는 끌고 나왔다")
▷앨범에 대한 반응이 좋은 편이다. 예상했나.
=지금까지 만든 작업물 중에서는 제가 원했던 사운드를 가장 잘 해낸 앨범이다. 물론, 만족은 안 한다. 제가 추구하는 밴드 사운드를 약간 흉내 낸 정도의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완벽한 밴드 사운드가 아니어서 제 색깔이 잘 드러났을 수도 있다고 본다. 어쨌든 진심을 담아 만들었다. 좋은 피드백이 많아서 자신감이 생긴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겸손이 아니고 진심이다.
▷초도물량이 '완판'됐다고 들었다.
=회사에서 몇 장 팔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어봐서 500장이라고 했다. 제 기준에서 여유 있게 찍은 건데 다 팔렸다고 들었고, 그래서 500장을 다시 찍었다고 들었다.
▷타이틀곡을 '축하해'로 정한 이유가 있나.
=이번 앨범에서 하고 싶었던 사운드가 제일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 트랙이다. 어떻게 보면 힙합 장르의 범주 안에 있는 곡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데, 들을 때 마다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타이틀곡으로 택하게 됐다. 힙합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편하게 들으실 수 있는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대타로 출전한 타자가 홈런을 치는 뮤직비디오 스토리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다.
=힘든 시절을 겪은 뒤 무언가를 해내는 뻔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마치 권투영화처럼 말이다. 뮤직비디오 스토리가 저의 상황을 1차원적으로 비유한 걸 수도 있다. 물론 제가 아직 홈런을 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고 싶다는 희망을 담고 싶었다.
▷앨범에 슬픈 분위기의 곡들이 꽤 있다.
='돈이 없어도', '우리 집', '진심' 같은 트랙들을 말하는 걸 텐데, 사실 슬픈 트랙들은 아니다. '돈이 없어도'는 돈이 없고 구질구질하지만 마음만은 다주겠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긴 곡이고, '우리집'은 가장 편안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 따뜻한 곡이다. 그런데 '노래를 들고 울었다'는 다이렉트 메시지를 정말 많이 받았다. 곡이 너무 따뜻했나? (미소). 물론 '진심'이라는 노래를 듣고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슬프게 만들 거야' 하고 만든 건 아니지만, 제 진심을 얘기한 트랙이다. 물론 100% 진심을 애기하진 못했다. 그게 음악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 같다. 가장 편안한 사람을 만나도 100% 진심을 이야기하지 못할 때가 많지 않나. 아무튼 결론이 있는 노래는 아니고 최대한 진심을 담고자 한 곡인데, 사운드 스타일 때문에 울컥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곡이 있나.
=사실 공연 준비하면서 곡들이 거의 다 질려서...(미소). 굳이 꼽자면 가장 나중에 만든 노래인 '부재중'으로 하겠다. 핸드폰 중독에 대한 곡이다. 진짜 파라다이스는 액정 뒤에 있고,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담긴 곡이다. 어떻게 보면 저 스스로에게 하는 얘기다. 2년 전부터 일부러 LTE를 끊고 살고 있는데 속도가 느려도 폰을 계속 보게 되더라.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이 핸드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커버 아트 관련 질문을 안 할 수 없다. 1집에 이어 속옷을 노출한 이유가 있나.
=많은 분들이 팬티에 관심을 두시는데...(웃음) 그걸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앨범에 듣기 편안한 곡도 있고 터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저의 모습이 담긴 곡도 있는데 그 두 가지를 모두 표현하고자 팬티차림에 가죽재킷을 걸치고 기타를 치는 모습을 담았다. 집에서는 원하는 무엇이든 다 될 수 있지 않나. 가장 편한 차림으로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을 흉내 내는 걸 우연히 찍힌 상황을 표현하고 싶었다.
▷커버 아트 못지않게 활동명이 독특하다.
=한글로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그러다가 여유롭고 흘러가는 듯한 이미지가 좋아서 뱃사공이라는 이름을 택하게 됐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계신데 그건 한 힙합 관련 방송에서 웃기려고 했던 말이다. 그런데 그게 오픈백과 같은 곳에 진지하게 정리돼 있어 당황했다.
▷래퍼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한국 힙합을 정말 엄청나게 사랑했다. 가리온, CB MASS, 일 스킬즈, 양동근, 조 PD, 팔로알토, 스윙스, 비프리 등 좋아했던 래퍼들이 너무 많다. 한국 힙합의 시작점부터 관심을 가지고 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사를 쓰게 됐던 것 같고, 특정 뮤지션이나 특정 곡이 계기가 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슈퍼잼레코드에 둥지를 튼 이유가 있나.
=2~3년 전 쯤 리짓군즈 크루에 함께 속해있는 블랭타임이 (이)하늘이 형에게 제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소개해줬고, 그 이후 하늘이 형이 저에게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해주셨다. 당시 개인적으로 하늘이 형을 힙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인간적으로도 제가 좋아하는 성향의 형이라서 함께하게 됐다. 계약 전 약속했던 그대로 터치 없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고.
▷리짓군즈 크루와는 언제부터 함께 했나.
=크루에 들어간 건 2013년쯤이다. 사실 처음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뭔가 피곤해질 것 같아서 거절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크루원들보다 제가 더 자주 모임에 끼게 되고 오히려 그들이 저를 피곤해하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웃음). 저희 크루원들은 개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무식하고 나약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그런 애들이 모여 있으면 또 무섭지 않나. 그래서 우린 무서울 게 없다. 음악 만들 때도 어떤 특별한 기준을 두지 않고 만들어서 작업이 재밌다. 그래서 잘 안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미소). 중요한 건 저희는 크루이기 이전에 친구 같은 사이라는 점이다. 음악과 멀어져도 계속 만나게 될 친구들이라고 할까.
▷'투잡'을 뛰는 래퍼로 알려져 있다.
=요즘엔 청소 알바를 하나 하고 있다. 아직 음악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공연이 가끔씩 들어오긴 하지만 대부분 '쇼미더머니' 출신 친구들이 큰 공연을 많이 하는 게 사실이니까. 또, 아이돌이 아닌 이상 음원사이트에서 많은 수익을 얻기가 힘들지 않나. 그래서 요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지쳐버릴지도 모르니까.
▷구상해 놓은 게 있나.
=최근 친분이 있는 PD 분과 술을 마셨는데 같이 유튜브를 해보자고 하더라. 살짝 설득 당한 상태다. (미소). 물론 구체화된 이야기는 아니다.
▷'쇼미더미니'에 단 한 번도 참가자지 않은 걸로 안다.
=그렇다. 소신일수도 있고 고집일 수도 있다. 사실 '쇼미더머니가 왜 싫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길게 하는 것은 감정소비인 것 같아서 더 이상 길게 하고 싶지 않다. 그 대신 김태균(테이크원)의 '암전'이라는 노래가 제 마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 노래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90% 정도가 담겨있다.
▷힙합씬에서 확고한 캐릭터를 구축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제가 특이한 게 아니라 비슷비슷한 래퍼들이 너무 많아서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도 된 경우인 것 같다.
▷장기적으로 어떤 목표를 세우고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나.
=목표나 계획을 잘 못 세우는 편이다. 1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도 많은데, 저는 그렇게 잘 안 된다. 음악이랑 상관없는 계획은 잘 지킨다. 예를 들어 운동은 하면 되는 거고 놀고 싶으면 놀러 가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음악은 해도 안 나올 때가 있으니까 목표나 계획을 잡기가 어렵다. 특히 저는 기복이 좀 있는 편이라 더욱 그렇다. 올해 바람이 있다면 싱글 형태 정도의 작업물을 하나 더 내는 것이다.
▷그래도 이루고 싶은 꿈을 있을 텐데.
='여기까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고, 갑자기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콘서트하고 싶다 같은 거창한 꿈은 없다. 그냥 세 번째 정규앨범이 나오면 꿈이 하나 이뤄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음악하면서 가장 행복하고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리짓군즈 크루의 2집 '캠프'(Camp)를 만들 때 정말 행복했다. 그때 앨범을 작업하면서 '음악 만드는 게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 하는 걸 처음 느낀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나중에 무뎌질 수도 있으니 더욱 집중해서 행복감을 느끼려고 했었고.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던 순간도 있나.
=솔로 앨범을 만들 때는 리짓군즈 앨범을 만들 때와 비교해 온도가 완전 다르다. 리짓군즈 친구들과 모여서 작업할 때는 무드 자체가 유쾌하다. 그런데 혼자서 작업할 때는 아무래도 우울해지고 다운되는 측면이 있다. 그럴 땐 문득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기도 하더라.
▷기분 전환 하고 싶을 땐 어떤 걸 하나.
=취미 생활이 아예 없다. 집에서 '코시'(애완견)와 아무 것도 안하면서 함께 있거나 술을 마시러 가거나 둘 중 하나다.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나.
=요즘 들어 갇혀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군다나 전 프로듀서가 아니라 래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금전적인 부분까지 포기하면서 음악을 계속하는 이유는 즐겁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동안 틀 안에 저를 가두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한동안 붐뱁 스타일 랩이 아니면 아예 안 하려고 했던 적도 있는데 미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하고 싶은 스타일의 음악이 있으면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다음 앨범이 트랩 장르의 곡들로 채워질 수도 있고, 그러다가 다시 밴드 사운드를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즐겁게 음악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생각이다. 작업을 해볼 생각이다, 물론 아직 시작한 건 없다.
▷뱃사공에게 힙합이란 어떤 의미인가.
=어렸을 때는 저를 특별하게, 남들과 다른 사람처럼 구분 지어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좋아해서 듣는 건 당연했고, 힙합을 들으면서 내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 힙합을 들었고, 힙합이 저의 사상이나 가치관에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힙합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게 됐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도넛맨의 지목으로 인터뷰에 참여했다. (관련기사 : [힙합릴레이] 도넛맨 "가사가 너무 잘 들려? 그래야 랩이지")
=좋아하는 래퍼고, 곡 작업을 함께한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 도넛맨의 랩을 엄청나게 좋아하고, 두 말할 필요 없는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다음 인터뷰 주인공을 지목해달라.
=많이 알려지지 않은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다. 쿤디판다와 디젤을 동시에 지목하겠다. 최근 합작 앨범을 발표했는데 앨범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